▲ 방송에 비친 목사는 '사이비 교주' 같았지만, 실제로 만나 보니 평범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습니다. (SBS '궁금한 이야기 Y’ 갈무리)
'최진실 지옥의 소리'라는 음성 파일을 만든 어떤 목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기자가 된 지 석 달째. 논란의 주인공을 만난다고 하니 긴장이 되더군요.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지옥을 보는 목사라니.

편집장의 취재 지시에 태연한 척 알았다고 말해 버렸습니다. 걱정을 안고 도착한 교회는 여느 예배당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상하더군요. 교회를 둘러보니 열심히 기도하는 분들이 보였습니다. 대낮에 들리는 통성기도 소리에 순간 오싹했습니다.

그 목사는 도착한 저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저는 경계심을 들키지 않으려 웃으며 손을 잡았죠. 그는 '밥 먹으러 가자'며 저를 옆 건물 닭갈비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내 환심을 사려는 건 아닐까.' 저는 경계했습니다. 어디선가 읽었던 '기자 정신'을 떠올리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대화가 시작됐고, '지옥의 소리'를 만든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목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맹목적인 믿음이 상식을 넘어선 것 같았죠. '하나님의 영광'을 부르짖다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잊은 듯 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가졌던 경계심이 사라진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그 목사는 우리 아버지 또래였고, 휑한 머리가 옆 동네 세탁소 아저씨 같았습니다. 평범한 목사였죠. 처음 짐작했던 모습과는 달랐습니다. 모자이크에 가려 방송에 비친 그의 모습은 지옥을 외치는 '사이비 교주' 같았거든요.

물론 지옥을 봤다며, 고인의 가족에게 상처를 준 그 목사를 변호할 생각은 없습니다.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순박해서 교조적인 사람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평범한 사람도 눈먼 믿음 앞에서 '악마'가 되는 것 같았죠.

그 목사는 제가 경계하던 '나쁜 놈'은 아니었습니다. 맞은편에 앉아 닭갈비를 맛있게 씹는 모습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에서 그의 순수하다 못해 맹목으로 흐르는 신앙이 느껴졌습니다. 그 목사가 한 '일'은 분명 나빴습니다. 그렇다면 그 목사는 '나쁜 놈'일까요. 저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방송과 기사 너머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았거든요.

기자가 되고 대화를 나눠 본 사람들이 아직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난 사람들을 저는 '선과 악'으로 딱 잘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선한 일도, 악한 일도 할 수 있지만, 그 사람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목사가 그랬습니다.

'기자가 되자'는 생각이 들었을 때, <미래의 저널리스트에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세상은 선과 악의 대결장이 아니다"는 말이 있었죠.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짧은 기자 생활이지만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과 교회가 '착한 놈과 나쁜 놈'으로 딱 떨어지면 얼마나 편할까요. '나쁜 놈'은 맘껏 욕하고, '착한 놈'은 띄워 주기만 하면 될 테니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습 시절부터 느끼는 이런 애매함이 기자 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자주 틀려 혼이 많이 납니다. 저를 '기자'라고 소개하는 것도 아직 어색하기만 하죠. 그래도 조금씩 배워 나가고 있습니다. 아리송한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싶은 것이죠. 짧은 수습 기간 동안 느낀 것입니다. 현장에서 맡은 사람 냄새. 그 속에 '진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진실에 담긴 하나님 마음을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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