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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에 생각하는 예수
예수를 신격화하지 말라
  • 정연복 (pkom5453@hanmail.net)
  • 승인 2012.05.18 13:01

상원아 내가 왔다 남주가 왔다

상윤이도 같이 왔다 나와 나란히 두 손 모으고
네 앞에 내 무덤 앞에 서 있다

왜 이제 왔느냐고? 그래 그렇게 됐다
한 십 년 나도 너처럼 무덤처럼 캄캄한 곳에 있다 왔다
왜 맨주먹에 빈손으로 왔느냐고?
그래 그래 내 손에는 꽃다발도 없고
네가 좋아하던 오징어발에 소주병도 없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나는 오지 않았다 상원아
쓰러져 누운 오월 곁으로 네 곁으로
나는 그렇게는 올 수 없었다
승리와 패배의 절정에서 웃을 수 있었던
오 나의 자랑 상원아
나는 오지 않았다 그런 내 앞에 오월의 영웅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십자가를 긋기 위하여
허리 굽혀 꽃다발이나 바치기 위하여
나는 네 주검 앞에 올 수가 없었다
그따위 짓은 네가 용납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왔다 상원아 맨주먹 빈손으로
네가 쓰러진 곳 자유의 최전선에서 바로 그곳에서
네가 두고 간 무기 바로 그 무기를 들고
네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기 위해서 나는 왔다

그러니 다오 나에게 너의 희생 너의 용기를
그러니 다오 나에게 들불을 밝힐 밤의 노동자를
그러니 다오 나에게 민중에 대한 너의 한없는 애정을
압제에 대한 투쟁의 무기 그것을 나에게 다오
('무덤 앞에서', 김남주 시인)

1980년 5월 남도(南道) 빛고을 광주를 피로 물들인 독재 권력에 맞서, 자유와 민주를 외쳤던 광주 민중 항쟁의 한 지도적 인물로서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에서 산화한 윤상원. '남민전' 사건으로 십 년을 복역하고 나온 시인은 사랑하는 벗의 묘지를 찾아 사자(死者)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눈다.

"왜 맨주먹에 빈손으로 왔느냐고? 그래, 그래. 내 손에는 꽃다발도 없고 네가 좋아하던 오징어 발에 소주병도 없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직."

시인이 '오, 나의 자랑 상원'의 무덤 앞에 서는 것은 오월의 영웅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에 십자가를 긋기 위하여, 혹은 허리 굽혀 꽃다발이나 바치기 위하여가 아니다. 시인이 맨주먹 빈손으로 벗의 무덤 앞에 서는 것은 네가 두고 간 무기, 바로 그 무기를 들고 네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기 위해서다.

시인은 벗에게 나지막이 부탁한다. "너의 희생 너의 용기를, 들불을 밤의 노동자를, 그리고 압제에 대한 투쟁의 무기인 민중에 대한 너의 한없는 애정을 나에게 다오."

시인의 이러한 자세는 기독교인들의 태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달라져야 하는지에 관해 많은 암시를 준다. 예수 운동은 아직 진행 중에 있다. 하느님나라가 이 땅에 실현되기까지 우리가 달려가야 할 길은 아직 너무도 멀다. 하느님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아직 이 땅의 민중들의 아픔과 절망이 너무 깊다.

그러므로 '오, 나의 자랑' 예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가슴에 십자가를 긋는다거나 허리 굽혀 꽃다발이나 바치고 예수를 신격화시켜 찬양하는 것으로 예수에 대해 예의를 다 갖췄다고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오산이다. 예수는 그따위 짓, 예수가 걸었던 그 길의 대열에 서지 않고 다만 예수와 그가 걸었던 길을 신격화하는 걸로 만족하는 우리를 보면서 기막힐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 신자라면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예수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겠다는 결의를 다져야 할 것이다. 공손히 두 손 모아 기도하기보다는 오히려 맨주먹 빈손을 불끈 쥐고 압제에 대한 투쟁의 결의를 맹세해야 할 것이다.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제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이 사람들이 진리를 위하여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내가 이 사람들을 위하여 이 몸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이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기 몸을 바치게 하려는 것입니다(요 17:17~19)."

그렇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으로 만사가 해결되리라는 식의 허황한 생각을 한 적이 결코 없다. 예수는 자신의 역사적 실천을 그 자체로서 완성된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길'(요한 14:6)로 이해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원했던 것은 그들도 자기처럼 민중 해방 실천에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었다.

예수는 제자들이 자신을 신격화된 그리스도로 대상화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는 제자들에게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일도 하게 될 것이다(요 14:12)"라는 유언을 남겼다. 무슨 뜻인가? 예수를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따른다는 것, 예수보다 '더 큰일'을 한다는 것, 예수로 예수를 넘어선다는 뜻이 아닌가?

오늘 이 땅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자들은 많다. 그러나 예수의 역사적 발자취를 따르는 신자들은 너무도 적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이 땅의 교회들에 걸려 있는 십자가는 너무도 많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교회들은 너무도 적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교회가 역사 발전의 걸림돌로 역기능을 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다.

예수! 민중에 대한 예수의 한없는 애정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나의 삶을 참회한다. 하지만 예수가 걸었던 길 바로 그 길을 나도 걷기까지는, 예수 운동에 합류하여 민중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까지는, 아직도 나는 진정한 예수쟁이는 아니다. 참된 인간은 못 된다.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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