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이은하

"처음 생리를 했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와 남동생 몰래 저를 방으로 데려가 몸조심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완전한 여자가 되었다나요? 하지만 저는 생리하는 제 몸이 무척 싫었습니다. 불편하고 불결했어요. 생리대 사는 것은 또 어떻고요. 슈퍼에 들어섰을 때 주인이 남자면 아무 소리도 못하고 그냥 나오는 일이 다반사에요. 그리고 여자 주인이 있는 슈퍼를 찾아 온 동네를 빙빙 돕니다. 그리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사오라고 했어요' 라고 말하곤 했지요. 왜 생리대를 사면 까만 봉지에 담아 주잖아요. 그것도 두 겹으로.  제게 생리는 늘 드러낼 수 없는 부끄러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임기 여성이라면 매 달 한 번씩 경험하는 월경. 여성이라면 자연스럽게 하는 생리 현상이지만 많은 여성들은 월경을 귀찮고 부끄러운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9년도에 발행된 서울여성의전화 성교육 자료집에 따르면, 여중생 4명 중 3명이 월경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로 답했다. 여중생들의 대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더럽고' '야하게 느껴지고' '고통스러워서' 싫다는 것이다. 고통스럽다는 대답을 제외하면 모두 월경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렇듯 월경에 대한 부정적 경험은 '여성임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한국 사회의 성사회화 과정이 여성들이 당면한 문제의 절반'(성신여대 이수자 교수)임을 잘 드러낸다. 교육적 측면에서 딸과 아들을 차별하지 않는 부모 세대의 의식 변화로 인해 이젠 여성 스스로가 여성이란 이유로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월경처럼 여성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가 존재하는 한 여성은 건강한 인간으로서 정체성을 형성하기 힘들다.

월경에 대한 부정적 담론을 유포하는 데는 단연 종교를 빼 놓을 수 없다. 종교는 '오염신화'를 들어 오랜 기간 여성의 월경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해 왔다. 물론 변화의 긍정적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월경을 '더러운 것'으로 보는 인식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고 싶어 12세 때 복사(服事)를 하고 싶다고 신부님께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이 있다는 이 아무개(27세) 씨도 월경에 대한 교회의 부정적 인식을 지적했다. 그녀는 "생리를 하기 때문에 여자는 복사를 할 수 없대요" 라고 답했다. 또 이어 "세상이 조금 나아져 요즘은 여자아이도 복사를 하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리하기 전의 어린 여자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한 뒤 "하고 싶은 것을 못한 것은 분했는데 월경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졌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이씨에게는 월경을 성적인 것으로 이데올로기화하고 여성이 성을 말하는 것을 정숙하게 보지 않는 사회의 시선을 스스로 체화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씨는 여성이라고 차별 받는 것이 싫어 무엇이든 열심히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적인 것과 관련된 표현에는 유난히 인색하고 월경도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말하기가 쑥스럽다고 했다. "중· 고등학교를 미션 스쿨에서 마쳤고 성당 사무장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종교적 분위기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말에서 성차별적인 교육의 흔적이 느껴졌다.

노지은 씨가 1995년에 제출한 '월경 경험과 문화적 금기'라는 석사논문에서는 월경을 부끄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요인을 비기독교인은 부모(85%)를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기독교인은 종교(55%)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종교학자 현경 씨는 종교 특히 기독교가 월경에 대해 갖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일목요연하게 지적한다. "한국의 기독교인 중 일부는 율법서에 나오는 월경에 대한 터부를 들어 여성의 목사안수를 반대하고 여성의 몸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구약시대에 월경하는 여성을 공동체에서 떨어뜨려 성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한 것은 당시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아 여성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여성의 월경은 생명 탄생을 위해 필수적이고, 이것이 없었다면 오염 운운하는 남자 목사들도 세상에 없었을텐데, 월경이 제단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며 교회 성직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결국 교회의 남성 중심적 사고를 보여주는 단면에 불과하다."

종교가 월경하는 여성의 몸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건 지나친 말이 아니다. 원불교 이혜화 교무는 "성직자가 된 이상 결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몸이라는 것을 가능한 잊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월경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고 고백한다. '영(靈)과 육(肉)', '성(聖)과 속(俗)' 이라는 이분법적 문화가 여성인 자신이 어떤 몸을 가졌는지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몸이 존재하는 일상으로 내려와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여성 종교인들이 자신의 몸을 종교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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