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공동체는 농촌의 미래를 실험하는 목적 공동체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그는 지금 노가다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노가다래요. 하고 싶은 일이요? 그것도 노가다라고 대답해요." 한마음공동체에서 기획 일을 맡고 있는 오창국 목사는 남상도 목사(45)를 이렇게 소개했다. '뭐 그런 목사가 있느냐'는 말투지만 속내는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는 듯 하다.

오 목사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남 목사의 과거와 한마음공동체 그리고 백운교회를 설명했다. 배추밭 지나며 풍년을 기도했지만 결국 풍년이 농가에게는 큰 손해가 되었던 사건을 계기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던 일, 백운교회를 짓는데 인근 마을 사람들 모두가 참여했던 일, 죽으면 무덤 대신 마을에 나무 심어달라는 유언장을 썼던 일까지. 남 목사의 18년 농촌선교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남 목사의 목회는 크게 세 번 바뀐다. 처음 장성에 왔을 때는 열심히 심방 다니고 말씀 전하는 일만 전념했다. 하루는 마을 배추밭을 지나며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남 목사의 기도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 해는 정말 대풍년이었다. 문제는 전국이 풍년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배추 값은 폭락하고 농민들은 흉년보다 못한 한해를 보내야 했다.

남 목사는 자신의 기도가 농민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피상적인 읊조림이었다고 반성했다. 그리고 농촌을 둘러싼 사회구조에 눈뜨기 시작했다. 마을 청년들과 교회에 모여 농촌의 현실을 분석하고 사회 문제를 공부했다. 또 각종 농민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농민운동이 아직 조직되지 않았던 80년대, 백운교회는 농민의 소리를 대변하는 공간이었다. 농민들과 함께 하는 동안 마을 사람들도 교회 일을 자기 일처럼 거들었다. 백운교회를 다시 지었을 때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참여했다.

농민운동이 점차 조직화되던 90년대. 남 목사는 유기농업으로 눈을 돌려 '한마음공동체'를 결성했다. 함께 운동하던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농민들에게 의심을 받았지만, 농민운동이 이제는 스스로 대안을 마련할 때라는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생산자로 참여했고, 광주지역 판매망을 구축하는데는 호남신학교 교수들이 도와주기도 했다. 이곳에서 생산되지 않는 유기농산물은 신뢰를 쌓아오던 다른 지역 생협과 연대하면서 확보했다.

▲남상도 목사 ⓒ뉴스앤조이 신철민
10년이 지난 지금 한마음공동체는 60여 농가와 광주지역 3,000여 가정의 소비자모임과 직매점 10곳을 갖추고 있다. 연 매출액도 20억을 넘어서는 견실한 유통공동체로 성장했다.

2000년부터 남 목사와 한마음공동체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먹거리로만 묶이는 공동체가 아니라 대안적인 평생교육을 실현하고 축제를 즐기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우선 폐교를 인수해 황토로 한마음자연학교를 지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모내기, 채소 가꾸기 등 농사 체험과 황토집 짓기, 새끼 꼬기, 천연염색 옷 만들기 등 다양한 생태 생활 실습은 도시 생활에 찌든 이들에게 고향 같은 쉼을 제공했다. 벌써 2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고 한다. 이외에도 한마음자연학교는 생태유치원을 운영하고 있다. 인근 아이들 20여 명 외에도 광주에서 120여 명이 다니고 있을 정도로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한마음공동체는 100년 후의 농촌을 상상한다. 100년이 넘는 나무들이 즐비한 공원 같은 마을이다. 나무 그늘 아래 쉬고 있는 어른들과 뛰노는 아이들, 틈나는 대로 찾아와 함께 어울리는 도시 사람들의 모습을 꿈꾸며 우선 묘 문화를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농토를 잠식하고 혈통주의만 조장하는 지금의 묘 대신, 나무로 무덤을 삼는다면 마을도 자연공원이 되고 '내 조상' '네 조상' 편가를 일도 없다는 것이다. 남 목사는 유언장을 만들어 먼저 실천했다. "죽으면 마을 어귀에 팽나무 한 그루 심고 재를 뿌려 달라."

백운교회 추수감사절에는 1,000명 이상이 북적거린다. 유통공동체로 묶인 사람들과 인근 마을 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신명나는 축제가 벌어진다. 정월대보름날엔 교회가 매개가 돼 농민들이 서로의 소원을 나누고 축복해준다. 남 목사는 그 동안 교회는 '저곳'을 강조한 나머지 '이곳'에서 맛봐야 할 하나님 나라의 풍성함과 행복에는 눈이 어두웠다고 말한다. "이제 교회가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법을 실천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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