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호텔 모임에서 모 인사가 안주머니에 든 봉투(여비)를 꺼내려 하고 있다. 앉아
있는 사람이 선관위원이다 @목회자신문 제공

손이 안주머니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돈 봉투가 오고간다. 하지만 절대 '뇌물'은 아니다. 이른바 '떡 값'인 차비다. 호텔의 비싼 식사도 절대 '향응'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넉넉한 우리네 인심이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부총회장 선거를 둘러싸고 차비와 식사접대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부정선거'로 인식하는 총대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석에서 부총회장 후보 4명 모두에게서 차비를 챙겼다는 말을 던지는 이는 있어도 선거관리위원회에 고발하거나 '양심선언'을 하는 총대는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특정 후보와 관련되었을지도 모르는 성격이 뚜렷하지 않은 총대 모임이 버젓이 호텔에서 연이어 개최되고 있다. 교단 선거관리위원들은 일단 '부정선거 운동'이라는 혐의를 갖고 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건수'를 올리지는 못했다.

<첫번째 모임>
▲세종호텔 백합관 모임은 그저 '전국장로님들의 모임'이라는 명칭아래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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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5일 장로총대 70여명이 서울 세종호텔에 모였다. 이날 모임의 명칭은 '전국장로님들의 모임'. 일단 제목에서 모임의 주제나 목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선관위원 2명은 이 모임이 부총회장 선거운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의심'아래 세종호텔로 향했다.

예상대로 이들은 불청객이었다. 참석자들은 위원들을 향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며 '나가라'고 요구했다. 자신들의 모임은 선거운동과는 상관없기 때문에 감시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

선관위원들도 호락호락하게 물러서지 않았다. '정말 순수한 모임이라면 선관위원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 아니냐' 혹은 '선거철에 총대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어디나 선관위가 갈 수 있다'고 맞섰다.

한동안 고성이 오고간 끝에 결국 선관위의 주장을 더 이상 반박할 명분을 찾지 못하자 그대로 진행됐다. 하지만 '분위기가 이 정도 됐으면 알아서 나가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는 볼멘 소리는 한구석에서 여전히 이어졌다.

▲선관위원 참석을 놓고 고성이 오고갔다. 전면 보이는 이가 선관위원 중 한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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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여비 문제. 모임을 주선한 한완옥 장로(전국남선교회연합회 전회장, 시온영광교회)와 김병무 장로(전국장로연합회 회계, 남가좌교회) 등은 관례대로 '서울 5만원 지방 10만원'의 여비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너무 너무 부족해서 미안하다'며 '부족분은 사비로 충당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부족해 보이지 않는 차비와 3만원대 호텔 식사를 제공하고도 주최측은 무척이나 미안해했다. 당시 모임을 취재한 모 기자는 이 모임이 여비를 많이 주어야 하는 어떤 의무라도 있는 것 같이 보였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전국장로님들의 모임'은 어떤 목적을 갖고 70여명이 넘는 장로총대들을 모았을까. 한완옥 장로는 "10년전부터 총회를 앞두고 연례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올해는 장로부총회장 제도가 신설의 부당성을 장로들에게 주지시키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이 제도가 생길 경우 장로가 총회장이 될 길이 막히기 때문에 장로들이 단결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리고 또 남자의 경우 40살부터 장로가 되는 것은 여성장로에 비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 장로는 결국 이 모임이 '장로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 일뿐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다'고 강변하고 있다.

▲한완석 장로가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목회자신문 제공

그러나 당초 이 모임은 4명 후보 중 특정인사와 관련되어있다는 소문이 일부 언론사에 퍼져있었다. 예장통합측 내부 소식에 가장 민감한 <한국기독공보>와 <목회자신문>을 비롯해 <기독교신문> 등 3개 신문사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다. 또 선관위 역시 이런 낌새 때문에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굳이 이 모임을 지켜보게 됐다.

선관위 한 관계자는 이 모임이 총회를 앞두고 장로들의 권익을 대변하겠다는 표면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수상쩍다는 의심을 사게된 것은 어쩌면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표면적으로 총회 정책을 위한 장로총대들의 모임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장로들의 모임'이라는 모호한 명칭에 취지를 알리는 안내문이나 성명서 채택도 없는 소홀한 사전준비, 참석자들이 대개 호남 출신이라는 점, 또 참석자들을 선별적인 방법으로 모은 부분 등이 수상하게 보였다는 것.

이 때문에 제3자들은 대충 추산해도 1000여 만원의 경비를 들여 개최한 모임치고는 너무 부실하지 않느냐고 평한다. 하지만 경비와 관련, 한 장로는 "장로들이 냈다"며 선거관련설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한 장로가 특정후보와 같은 호남출신이라는 점에서 관련성을 찾는 시각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장로는 "OO 목사를 존경한다"면서도 "이날 모임은 OO 목사와 어떤 관련성도 없고 선거운동도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다. 4명 후보 교회 장로를 초청하지 않은 것도 쓸데없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이 모임에 대한 소문과 심증은 '수상하다'는 것이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안 주머니에서 나간 돈은 차비일 뿐이며 호텔식사는 지방에서 오신 분들에게 '밥 한끼' 사주는 당연한 도리를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두번째 모임>
9월 7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는 약 25명 정도의 장로들이 모였다. 이 장소에도 역시 선관위원 1명이 출동했다. 당시 선관위원은 '혹시 부정선거 현장을 직접 목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무척 긴장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커힐 파인룸에서 점심식사를 하던 장로들은 선관위원이 나타나자마자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한끼 4만원의 식사를 채 다 먹지도 않고 자리를 떠난 이들도 있다. 부정선거를 적발하기 위해 나타난 선관위원을 보고 그 자리를 피한 것은 '도둑이 제발 저리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만든다.

▲식사하던 장로들이 선관위원이 나타나자 자리를 피하고 있다 @목회자신문 제공

이날 장로들이 어떤 목적 때문에 모였는지는 현재까지 제대로 규명되어 있지 않다. 단지 호텔 예약서류에 김덕증 장로와 이성곤이라는 이름으로 9월 5일 예약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비고란에는 '오도선교회'라는 단체명이 기록돼 있다. 또 직접 손으로 쓴 광성교회라는 글귀가 보인다.

예약서류 내용만 놓고 본다면 오도선교회 회장이 광성교회 담임인 김창인 목사라는 점에서 이날 모임이 오도선교회와 관련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이성곤'은 오도선교회 회계인 이성곤 목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옆에 기록된 핸드폰 번호와 집 전화번호까지 일치하고 있다.

통합측 후보 4인 중 굳이 오도선교회와 관련성을 찾는다면 과거 광성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낸 OO 목사가 있다. 선관위원도 OO 후보와 이 모임이 어떤 관련성이 있다는 심증을 갖고 있었다. 특히 OO 후보는 다른 후보에 비해 더 많은 금품을 살포한다는 소문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성곤 목사가 이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 이 목사는 "워커힐 호텔 예약을 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전혀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다"고 밝혔다. 또 이 목사는 오도선교회는 목사들만으로 이뤄져 있고 장로회원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날 모임과 오도선교회가 관련되어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호텔 예약서류에 오도선교회라는 명칭이 보이지만 실제 오도선교회와 관련성은 없
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목회자신문 제공

이 목사의 말은 곧 누군가 이 목사를 잘 아는 사람이 명의를 도용했다는 것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실제 이 목사는 이 모임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누가 무엇 때문에 이 목사의 명의를 도용했을까. 그리고 하필 오도선교회 명의로 예약된 이 정체불명의 모임은 도대체 누가 주최한 것일까. 그리고 참석자들은 왜 선관위원을 피했을까.  

이런 꼬리를 무는 의혹 속에서 선관위원들은 총회를 코앞에 두고 이어지는 호텔 모임을 보면서 내심 불편한 심경을 감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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