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에 나온 회남교회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교회를 생각해본다.

지역 내에서 연합성회가 있어서 참석하면 나는 매번 우리 교우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힘차고 역동적으로 울려퍼지는 찬양과 박수는 정말 내 마음의 찌든 때까지도 씻겨 버릴 듯하며, 아름다운 성가대의 찬양은 천상의 소리 그 자체이고, 목사님의 주옥같은 설교는 충분히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우리 교회는 어떤가? 우리 교회도 어찌보면 캐나다판 회남교회가 아닐까 싶다. 어떤 교우는 좀더 체계적인 교회에 가고 싶다고 떠나고, 어떤 교인은 예배에 무엇인가가 부족하다고 말하고... 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은 아닐까?

1박 2일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그저 우리 집을 기점으로 그동안 가보지 않았던 산골 오지를 다녀보았다. 정말 자연이 아름다운 캐나다답게 그런 비경을 이렇게 쉽게 만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그림 같은 계곡과 호수를 등지고 만년설을 이고 우뚝 솟은 산 밑에 정말 그림 같은 집 한 채가 있다. 족히 100KM는 더 가야 인가가 나오는 곳인데도 사람이 산다니 신기하기조차 하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저런 집에서 세상 다 잊고 살고 싶다."
아내가 말한다. "무서워서 저기서 어떻게 살아요. 짐승들도 많을테구."
아이가 말한다. "저기 살면 아무개네는 어떻게 놀러가요. 배 타고 가요? 물에서 뜨는 비행기 타고 가면 신나겠다."
나의 결론이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가자 집으로~~."

우리는 너무 멀리왔다. 이제 돌아가고자 하나 그 길이 쉽지는 않다. 우리는 교회의 개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참된 예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다시 회남교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낡은 피아노가 있지만 무반주에 늘어지는 찬송가(연로하신 어른들과 충청도라니 눈에 선하다. 나도 충청도가 고향이기에 안다) 어른 아이 모두 합쳐 20여명이지만 10여명이 모이는 예배, 예배 중에도 장에 갔던 이야기, 옆집 이야기, 그리고 설교 중간에 끼어드는 설교자 외의 다른 목소리...

정감이 있고 아직도 그런 교회가 있다니 반갑다든지 살아있는 예배라느니 그런 교회 소개해준 기자분께 감사하다느니 하는 리플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미 웅장한 성가대와 역동적인 찬양단과 엄숙하고 일사불란하고 빈틈없는 예배에 익숙한 내 자신이 그런 교회에 교인으로 참석할 수 있을까? 설령 참석한다 해도 그런 분위기를, 그런 예배를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을까?

막약 회남교회가 아름답고 참된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라고 생각되어서 전국에서 주말이면 그 교회로 사람들이 모여든다면 그 교회는 바뀌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참된 예배와 교회의 개혁을 이야기하지만 개혁을 시도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멀리 온 것이 아닐까? 아니 차라리 멀리 온 길이라면 되돌아가기라도 하련만, 아예 잘 못 들어온 길인데 이제 그 길들은 다 무너져 내려서 되돌아갈 수 없고 오직 앞만 보고 갈 수밖에 없는 그런 길을 가고 있는 건 아닌가?

그림은 그림 속에서만 충분히 아름다울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눈물 뚝뚝 흘리며 어깨동무하고 불러대지만, 막상 통일의 경제적 정칙적 부담을 고려하면 전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고, 막상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를 이야기하지만 지금 이대로가 너무 좋은 그런 사람들처럼 우리 교회도 지금 이대로이기를 바라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지는 않은건지...

누가 주님의 십자가를 메고 갈 것인가?
누가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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