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성 목사는 농민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에 관심을 갖고 고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고흥 매곡교회 정도성 목사(49)는 무공해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파는 사람으로 유명인사가 됐다. 여러 매체를 통해 그가 하는 일들이 소개되면서 판매 걱정은 덜었지만 일의 양이 갈수록 늘어간다. 목회자의 본분이 말씀 전하고 교인 양육하는 일로 제한된 한국교회의 현실에 비추자면 외도가 분명하다.

된장과 간장을 만들게 된 사연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 목사는 농민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에 관심을 갖고 고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좋은 콩을 수확하고도 중간 상인들에게 떼이고, 항상 늦고 불규칙하게 수매하는 정부 때문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한참을 정부와 싸우다 정부가 못한다면 교회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농민들에게 콩 값 제대로 받게 해주자는 의도에서 콩을 수매해 된장과 간장을 빚기 시작했다. 시가 보다 30% 이상 비싼 값으로 콩을 수매해 다른 제품보다 3분의 2 가격으로 팔았다. 콩 수매도 농협에서 대출 받아 겨우 할 수 있었다. 때로는 사채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이익금이 30% 이상 남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벌어들인 1억 원이 넘는 돈을 지역을 위해 그대로 환원했다. 독거 노인 37명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고, 소년소녀가장 20여 명을 돌보는 일에 썼다. 최근에는 갈수록 늘어나는 농촌의 독거 노인들을 위해 복지관을 건립했다. 시골에 혼자 사는 노인들은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우선 교회 뒤에 30여 평 규모의 복지관을 짓고 따로 부지 500여 평을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인건비만 겨우 남기고 농민들에게 이익금을 돌리는 된장·간장 장사로는 턱없이 부족한 사업이지만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질 않는다.

▲정도성 목사ⓒ뉴스앤조이 주재일
정 목사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 참여했다. 80년대 농민운동이 한참이던 때 그는 농민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벼 200가마를 면사무소에 놓고 시위하던 중 면사무소 직원들이 벼를 전부 쓰레기장에 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동강면 뿐 아니라 고흥군 전체가 들썩거렸다. 정 목사는 농민대표로 협상에 참여해 벼 전량 수매와 버린 200가마도 보상받았다. 그러나 협상을 끝내고 회의장을 나오면서 경찰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하고 병원에 두 달 이상 입원했다. 고흥 지역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출범할 때는 갈 곳 없는 교사들에게 교회를 내줬다. 이 소식을 접한 경찰들이 들이닥쳤을 때 그는 단신으로 교회 문을 막아 교사들을 보호했다.

80, 90년대 매곡교회는 벌교에서도 많이 떨어져 있고, 고흥읍에서도 멀리 떨어진 시골교회지만 약자를 위한 도피성 역할을 감당했다. 그리고 마을의 사랑방과 축제 장소로도 사용됐다. 마을 사람들도 큰 행사는 당연히 매곡교회에서 치르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정 목사의 이런 행보에 가장 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은 지역 목회자들과 장로들이었다. 그것도 가장 친한 사람들이 자신을 몰아내려 했을 때는 "십자가를 지던 예수님 같은 심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농민들은 언제나 그를 환영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농민들도 콩을 수매하면 그 자리에서 십일조를 교회에 내기도 하고 추수감사절에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해요. 한번은 마을회관을 지나가는데 화투치던 주민들이 십일조를 떼 주는 거예요. 친하지 않으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매곡교회에 출석하는 교인 수는 150명 남짓이지만 자신은 1천 명 이상을 목회하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정 목사에게 올해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정부에서 쌀 대신 콩을 심으라고 권유하는 바람에 콩 생산량이 대폭 늘어날 것 같기 때문이다. 대책 없이 "올해는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마라"고 다그치기만 하는 정부가 한심스럽지만 언제나 전량 수매하겠다던 약속을 지킬 참이다. 이것이 그의 계산법이다. 돈이 되는 길이 아니라 농민을 위한 길을 따르는 것이다.

정 목사가 예수를 전하는 방식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제 예수 이름 몰라서 교회 나오지 않는 경우는 없어요. 단지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고, 그들의 염려를 함께 걱정하지 않아 마음을 못 얻는 것뿐이죠. 교회와 마을 사이에 담을 트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전도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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