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 / 나벽수 지음 / 포이에마 펴냄 / 226쪽 / 1만 1000원

서점에서 만나는 '교회 이야기'는 보통 교회 안팎에서 두루 쌓아 온 교회의 '치적'을 겸손한 말투로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교회가 다르고 저자가 달라도 결론은 언제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여기까지 이런 사역을 해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귀결된다. 그런데 이 책은 그 고정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참 이상한 책이다.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포이에마).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하하, 실실, 쿡쿡 웃게 되지만, 다 읽고 나서는 왠지 수가 한참 높은 벽수 씨의 의도에 말려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벽수 씨는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머리에 남는 건 '나들목교회'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니 말이다.

교회 원정에 나선 인물은 벽수 씨. 그는 자신의 신앙 이력에 대해 바울의 말투를 빌어 "신앙 경력으로는 모태 신앙이며, 목사를 서넛씩 배출한 집안의 핏줄을 물려받았고, 철들기도 전에 세례를 받았으며, 그 가운데서도 침례를 받은 기독교인 중의 기독교인"이라고 밝힌다. 대학 때는 선교 단체가, 졸업하고는 기독교 잡지사와 출판사가 그의 주 활동 무대였다. 그런데도 그는 10년이 넘도록 교회 바깥사람처럼 살았다고 밝힌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덴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다. 그러던 벽수 씨가 얼마 전 교회 밖에서의 유목 생활을 정리하고 짐을 풀었다.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는 그 정착의 과정을 담은 책이다. 교회 알레르기를 보이던 그가 선택한 교회는 서울 신설동에 있는 나들목교회. 벽수 씨를 만나 '원정'을 둘러싼 여담을 들었다.

1. 요즘 이름 좀 있다는 교회는 지나온 시간을 정리해 책을 내는 게 보통입니다. <벽수 씨의 교회 원정기> 또한 나들목교회 10주년을 기념해서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그렇다면 이 책 역시 또 하나의 교회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까.

기본적인 틀은 그렇다고 해야겠지요. 하지만 거기에 초점이 있었더라면 아무개교회 이야기라는 식의 제목을 붙였을 겁니다. 저로서는 나들목교회를 재료로 그냥 교회, 더 좁게는 한국 교회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덩치가 큰 교회의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중소형 교회가 어떻게든 제대로 된 공동체를 꾸려 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꼴을 정리해 보자고요.

2. 한 교회의 10년을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어떻게 이 작업을 맡게 되셨습니까.

나들목교회 내에 교회의 콘텐츠를 출판물로 옮기는 일을 돕는 위원회라는 게 있었어요. 거기서 교회의 10주년을 식구들끼리 축하하는 것도 좋지만, 교회 안에 있는 우수한 DNA를 세상에 소개해 복제할 길을 여는 게 더 뜻깊은 일이라는 데 의견이 모아졌어요. 그러자면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도록 좀 쉽고 가볍게 쓰는 게 필요했는데 당장 그런 필자를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제가 낙점을 받은 거죠. 평소에 보여 주었던 경박한 말투와 처신이 크게 참작된 게 아닌가 싶어요.

3. 나들목교회에 대해 속속들이 아시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 이것만큼은 참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예배당 건물이 있느냐 없느냐, 헌금 통이 어디에 있느냐,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느냐 같은 이슈는 중요하지만 본질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핵심은 무얼 바라보고 있느냐 하는 점인데, 찾는 이들에게 집착하고 영혼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며 그 열매로 공동체와 변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었습니다. 책에서도 밝혔지만 아직 완성되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그런 뜻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습니다.

4.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가장 좋았던 점, 그 두 가지가 궁금합니다.

단기간에 교회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표목사님을 비롯해서 여러 리더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은혜를 받았고요. 낯가림이 심해서 절대로 누구한테 먼저 다가가는 성품이 아닌데 덕분에 수많은 이들과 얼굴을 익혔어요. 이런 특권을 누리면서 교회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 몇 안 될 겁니다.

5. 대표목사님을 제외하고는 책에는 실존 인물이 모두 가명으로 나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글을 쓰기 시작할 때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한결같은 기도 제목은 '이 작업을 통해 오로지 하나님만 반짝반짝 빛나게 해 주세요'입니다. 필자도 묻히고, 훌륭한 사역자도 묻히고, 나들목교회도 묻히고 오직 주님의 이름만 잘 드러나면 대만족이에요. 가식의 끝을 보여 주신다고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어요. 제 마음가짐은 분명히 그러니까요. 그럼 대표목사님 이름은 왜 넣었냐고요? 모두 가명이면 마치 우화처럼 들릴 우려가 있잖아요. 이름을 밝혀서 하늘나라에서 받을 보너스를 삭감시켜야 할 사람을 고르라면 당연히 대표목사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미 하늘에 쌓아 둔 게 많을 테니 그쯤 깎인들 뭐 티나 나겠어요?

7. 나들목교회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나벽수 씨의 '점수'는 끝내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통 크게 공개해 주신다면.

62.4점 정도 주고 싶어요. 낙제는 면했지만 분수령에 선 점수죠. 열심히 뜻을 구하고 찾으면 치고 올라갈 수 있지만, 잠깐이라도 딴전을 피웠다간 곧장 낙제의 구렁텅이에 처박힐 수 있는 성적이란 말씀입니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내내 스스로 섰다고 선언하는 글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나들목은 잘 자란 아이일 뿐, 아직 완전히 선 어른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점수가 짜다고요? 그럴 거면 뭐 하러 물으셨어요? 직접 매기시면 그만이지.

8. 이 책은 어떤 분들에게 필독서가 될 수 있을까요.

성경과 상관없는 말씀을 가르치는 목회자에게 데고, 서로 사랑하기보다 상처를 입히는 데 골몰하는 공동체에 질리고, 날이 갈수록 부패의 끝을 보여 주는 한국교회의 실상에 넌덜머리를 내지만, 그래도 그 난장판을 떠나지 못한 채 언저리를 맴도는 벽수과(科) 크리스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들목교회가 가진 장점들은 그런 이들의 목마름을 채워 줄만 하니까요.

9. 나벽수라는 이름은 필명이시죠? 에필로그에 밝힌 본명 최종훈은 기독교 출판계에서 번역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번역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글도 쓰셨나 봅니다.

책 만드는 작업과 관련해서 돈이 되는 일은 다 합니다. 번역도 하고, 여기저기 부탁을 받아서 취재 글도 씁니다. 가끔은 삽화도 그리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요. 이번처럼 글을 쓰기도 해요. 이것저것 한다고 했을 때 짐작하셨겠지만, 재주가 다양하다는 뜻이 아니라 뭐 하나 뾰족하게 잘하는 게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서글프진 않아요. 하나같이 좋아서 하는 일이거든요. 책 만드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은 무슨 재미로 사는지 모르겠어요.

10. '산속 허름한 집'을 작업실로 쓰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가 본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부분이 좀 동의가 안 된다"는 분들도 있던데요.

큰길에서 500미터쯤 떨어진 외딴집을 세내서 쓰고 있어요. 조립식 패널로 지은 가벼운 집이죠. 겨울엔 춥고 여름엔 따듯해서 살기 참 좋아요. 툭 하면 펌프가 고장 나서 물이 나오지 않죠. 하지만 괜찮아요. 100터쯤 떨어진 우물에 가서 스위치를 다시 올리면 되니까요. 고라니, 들고양이, 다람쥐, 거미, 개구리 천지에요. 다녀가시는 분들은 "참 좋아요"를 연발하지만 다시는 안 오세요. 저요? 풀 냄새, 시냇물 소리, 마당에 빗물 떨어지는 꼴이 좋아서 여기서 지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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