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아무개 씨(55)310일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종교를 강요한 아내 전 아무개 씨(50)를 목 졸라 죽였다. 허 씨는 곧바로 경찰에 자수했고 구속 수감됐다. 고인이 된 전 씨는 144000명이 모이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영생을 얻는다는 교리를 따른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총회장 이만희) 교인이었고, 남편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화를 당했다.

▲ 유가족은 4월 17일 오금동 한 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신천지 문제로 더는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정재원
하루아침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구치소에 보낸 허윤아(30)·허윤지(28) 자매(가명)는 큰 충격을 받았다. 평소 화목하고 돈독했던 가정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하지만 부모의 갈등에 종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문제 수습을 위해 신천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를 알게 됐고, 신현욱 상담소장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끝에 417일 오금동 한 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두 자매는 회견 내내 북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나서게 된 이유는 수감 중인 아버지를 위해서였다. 이들은 "우리와 같은 피해자가 더는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추가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 자매의 말에 따르면, 부부는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신천지라는 종교 문제로 이들은 자주 다투었다. 아내 전 씨는 18년간 정통 기독교 교회를 다니던 중 같은 교회 구 아무개 집사의 권유로 신천지에 나가기 시작했다. 20008월 요한 지파 소속 00교회에 입교한 전 씨는 20051월 집사로 사령을 받았다. 남들보다 매우 늦은 편이었다. 전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천지는 교주 이만희 어록을 통해 '전도 못 한 사람은 만고에 창피한 일이다. 남의 면류관은 이만한데(큰데) 자기 면류관은 요만하면(작으면)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라며 전도를 종용했다.

전 씨는 가족을 전도하기 위해 집요하게 매달렸다. "교회 나가야 한다. 안 가면 너희 죽는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고, 그럴수록 다른 가족의 반감은 커졌다. 큰딸 윤아 씨는 전 씨를 위해 1개월간 성경 공부에 나간 적이 있다. 가정의 불화를 막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막내딸 윤지 씨는 신천지에 관한 대화 자체를 거부했다.

▲ 남편 허 씨가 아내의 요구에 따라 작성한 각서. (사진 제공 전 씨 유가족)
전 씨는 '교회에 같이 다니지 않으려면 이혼해 달라'며 남편을 압박했다. 식당일을 함께 하면서도 '교회에 가겠다'며 가게를 비웠다. 남편 허 씨는 아내를 교회에 데려다 주고 끝나면 데이트를 하는 등 전 씨에게 최대한 자상하게 대하여 마음을 돌이키려고 했다. 전 씨가 원하는 대로 각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144천 명이 모두 채워지고 신인합일이 이뤄져 '어느 날 갑자기 (전 씨의 육체가) 변화하면, 미련 없이 이유 없이 아내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전 씨는 남편을 전도하려고만 했다. 참다못한 허 씨가 교주 이만희를 욕해 아내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허 씨는 무릎을 다쳐 목발 신세를 졌고 자기 목숨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 신천지 교인이 살인 사건 발생 하루 이틀 전에 전 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사진 제공 전 씨 유가족)
교인들은 전 씨를 도와 남편 허 씨를 전도하려 했다. 한 신천지 교인은 허 씨가 소유주로 있는 건물 2층에 세를 들어와 교인들에게 신천지 교리를 가르치는 '복음방'으로 사용했다. 허 씨는 이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아내가 완강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두고 볼 수밖에 없었다. 교인들은 두 사람이 운영하는 식당에도 수시로 찾아와 허 씨에게 교리를 전했다.

전 씨가 살해되기 전날에도 교인들이 집으로 왔다. 무릎을 다쳐 거동이 불편한 허 씨는 문을 잠그고 안방에 있었지만, 교인들은 허 씨를 데리고 나와 1시간가량 설교를 했다. 그날 교회를 다녀온 전 씨는 "때가 왔다. 왜 그렇게 태평하냐. 당신보다 더 큰 사람이 와서 당신을 해하면 어떻게 할 거냐"며 다시 한 번 허 씨를 다그쳤다. 만취한 상태였던 허 씨는 순간적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자수한 허 씨는 "왜 그랬냐"는 두 딸의 질문에 대해 "아빠가 너무 힘들었다.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답했다.

▲ 신현욱 소장은 "신천지의 과도한 전도 강조가 화를 불렀다"고 말했다. 사진은 전 씨의 유품 내용을 소개하는 장면. ⓒ뉴스앤조이 정재원
신현욱 소장은 과도한 전도 강조가 화를 불렀다고 진단했다. 신 소장은 "올해 신천지는 15만 명을 목표로 12지파를 완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족을 사랑했던 전 씨가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하는 과정에서 이런 화를 부른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신 소장은 "허 씨도, 전 씨도 모두 피해자"라며 "재판부가 사회 일반적인 시각이 아니라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고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고 했다.

허 씨의 재판은 국민 참여 재판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두 딸은 배심원이 종교 문제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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