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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설계론과 유신 진화론 (4)
현대 과학과 기독교 신앙 (19)
  • 황윤관 (irenephwang@yahoo.com)
  • 승인 2012.04.10 06:24

현대 과학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을 소개할 때,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하나의 연속된 운동으로 보고 한 덩어리로 묶어서 소개하는 경우도 있고, 저처럼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따로 언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이 두 운동을 지난번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따로 따로 접해서가 아니고) 이 둘 사이에 분명히 차이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첫째, 지적 설계론은 성경 해석에 있어 창조 과학처럼 교조적이지 않고 과학 전반에 대해서도 창조 과학보다는 열린 모습을 보여 줍니다. 두 번째로, 비록 과학계의 강력한 반론에 부딪치기는 했지만 미이클 베히나 윌리엄 뎀스키 등 지적 설계론의 접근 방식은 기존의 창조 과학과는 달리 학문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창조 과학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과학계가 지적 설계론에는 대응을 했던 것도 이런 이유들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적 설계론의 선택

그러나 창조 과학과는 다른 접근 방법을 지향하고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적 설계론의 앞날이 밝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국 다음의 두 가지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 첫 번째 길은 가능성이 있을지 의문이고 두 번째 길은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지적 설계론이 과학계에서 새로운 방법론으로 인정받는 길입니다. 지적 설계론은 자신들의 주장을 과학계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즉 과학 작업에서 초자연적인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태도 때문에, 과학계가 설계자를 인정하는 '유신론적 과학(결국 기독교적 과학)'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이 자연적 원인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깨는 이러한 주장에 대해 비종교인이나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기독교 학자들도 비판적입니다. 우종학 교수가 그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한 줄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자연현상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과학의 범주를 정하는 것은 그것이 과학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 창조주가 자연계에 개입해서 뭔가 작용을 했다면 그것을 어떻게 과학으로 다룰 수 있을까?"

지적 설계론은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비판하면서 초자연적인 설계자를 인정하는 과학을 하라고 요구하지만, 과학이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사용하기 때문에 힌두교 과학자나 불교 과학자나 기독교 과학자가 다 같이 인정하는 과학 작업이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적 과학'이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다른 종교에서 '힌두교적 과학'이나 '불교적 과학'을 들고 나온다면 인정하시겠습니까? 저는 과학의 방법론에 관한 한 지적 설계론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두 번째로는, 지적 설계론이 과학계와 상관없이 교회에서 대중 홍보를 통해 일종의 기독인 동호회로서 생존하는 길이 있습니다. 과학을 표방하면서 어떻게 과학계와 상관없이 존속할 수 있느냐고 하실 분도 있을 것 같은데, 창조 과학도('과학'이라는 말이 붙기는 했지만) 실제 과학계와는 별 상관없이 교회에서 생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창조 과학을 부정하면 마치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는 것처럼 몰아가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창조 과학'을 부정하는 것이 '창조'를 부정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지요. 물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지만, 지적 설계론도 창조 과학과 유사한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적 설계론의 선택에 관계없이 창조 과학은 존속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만큼 창조 과학이 근본주의 교인들의 생각에 깊이 자리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에 대한 신앙이 아니라 '창조 과학'에 대한 신앙이 많은 교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현실에서, 과학계가 아무리 창조 과학의 주장이 틀렸다고 해도 '하나님의 진리는 세상에서 미련하게 보이기 마련이지' 하는 자기방어 심리를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것입니다.

유신 진화론

유신 진화론은 (1990년대에 대두된 지적 설계론은 물론이고) 1960년대에 들어서서 창조 과학이 틀을 잡기 전부터 있었던 꽤 오래된 견해인데, 창조 과학이 지배적인 한국교회에서는 아직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입장입니다. 실정이 이렇다 보니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 안티이거나를 막론하고 창조 과학이 기독교의 과학관과 신학의 주류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 주류 신학계에서는 현대의 자연과학을 수용하면서 여러 신학적 논의를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이나 미국 보수 교회의 상황을 전체 신학계의 일반적 상황으로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같은 지적 설계론의 입장에 있어도 마이클 베히의 접근 방식과 윌리엄 뎀스키의 접근 방식이 다른 것처럼, 유신 진화론 안에도 여러 다양한 접근 방식 내지는 설명 방식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보통 유신 진화론을 '진화론을 비롯한 과학의 발견들을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 구현의 한 방법으로 보는 견해'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것은 상당히 단순화된 표현이고, 실제 이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의 논의는 과학과 종교의 관계 전반을 포괄하는 틀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런 학자들의 견해를 살펴보기에 앞서 20세기 전반의 인물이라 할 수 있는 C. S. 루이스를 잠깐 언급하고 지나가겠습니다.

C. S. 루이스의 견해

이전에는 유신 진화론자로 간주되던 사람이 (지적 설계론이 등장한 이후에는) 과연 유신 진화론자냐 아니면 지적 설계론자로 간주되어야 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갈라지기도 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등으로 한국 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C. S. 루이스입니다.

지적 설계론 쪽에서는 C. S. 루이스가 지금 살아 있어서 지적 설계론의 설명을 들었다면 지적 설계론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반면, 유신 진화론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지금 살아서 그동안 축적된 진화의 증거들을 보면 당연히 유신 진화론의 입장에 섰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C. S. 루이스의 글을 직접 읽어 보고 각자 판단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참고삼아 루이스의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 한국어 번역본의 127~128쪽에서 몇 줄을 옮겨 보겠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과 인간성의 매체가 될 동물의 형태를 완성시키셨습니다. 그는 엄지손가락이 각 손가락에 닿을 수 있는 손과 언어를 발음할 수 있는 턱, 치아, 목, 그리고 이성적인 사고를 구체화하는 물리적 동작을 전부 수행할 수 있을 만큼 복잡한 뇌를 그 형태에 부여하셨습니다. 그 피조물은 인간이 되기 전 오랫동안 이런 상태로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 피조물은 현대의 고고학자가 인간성의 증거로 받아들일 만한 물건들을 만들 만큼 똑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조물이 여전히 동물에 불과했던 이유는, 그의 모든 육체적, 심리적 작용이 순전히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목적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이 유기체의 심리적, 생리적 기능에 새로운 종류의 의식, 즉 '나'라고 말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수 있으며, 하나님을 알고 진선미를 판단할 뿐 아니라, 시간 너머에서 시간이 흘러 지나가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의식이 임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다음 글에서는 유신 진화론의 기본적 견해를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황윤관 / 작은자교회 목사,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 Biola Univ.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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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
  • 황창일 2012-04-17 10:15:10

    저는 황윤관님이 지적설계론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보다 지적설계론가들이 주장하는 지적설계론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포인트라 생각합니다. 설계론가들이 설계론이 기독교의 변증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마당에 굳이 그러한 비판을 해야하는 건지요. 설계 탐지 자체가 기독교 변증이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설계의 판정에서 설계의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은 과학으로서의 설계론을 넘어서는 질문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설계론이 형이상학적 함의 (metaphysical implication), 혹은 유신론적 함의 (theistic implication)가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 이론 자체와 그 이론이 함의하는 바를 구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는 마치 빅뱅 이론이 나왔을 때 우주의 시작이 있었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함의와 유신론적 함의와 유사합니다. 빅뱅이론이 말하는 최초의 폭발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창조를 함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누구도 빅뱅이론을 그 이론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혹은 유신론적 함의때문에 종교이론으로 취급하진 않습니다. 저는 지적설계론 입장이 가지고 있는 형이상학적, 혹은 유신론적 함의에도 관심이 많은 크리스천입니다만, 설계론 자체를 과학으로서 대하지, 종교적 주장 혹은 기독교 변증의 일부로 보지 않습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가 ‘과학계’가 얘기하는 과학의 기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reference를 요구하고 싶습니다. 도버 재판에서 증언했던 Robert Pennock이 아무래도 이에 관한 대표격인 사람이겠지만, 무신론자 과학철학자인 Bradley Monton의 반론도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Monton은 무신론자이면서 지적설계론의 지지자는 아니지만, 최소한 지적설계론을 방법론적 자연주의로 비과학 취급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설계론을 변호하는 입장입니다. Demarcation criteria로서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적절하지도 않을뿐더러 현재 과학으로 행해지는 많은 것들을 비과학으로 잘라내야할 것입니다. 설계론이 과학계를 설득하면 그 입장을 따르시겠다고 하셨지만, 실상은 설계론이 과학계를 설득할 것이 아니라, 설계론을 몰아내려고 방법론적 자연주의를 들이대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기준이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demarcation criteria로서 성공적임을 먼저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삭제

    • 조민수 2012-04-17 00:04:28

      지적설계론은 성경해석에 관한 이론이 아닙니다. 성경해석이 창조과학보다는 교조적이지 않다는 둥 하는 비판은 설계론이 받아야할 비판이 아닌데, 이는 Intelligent Design 관련 웹페이지 FAQ에만 봐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지적설계론은 과학으로서 설계를 탐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지적설계론은 설계의 주체가 초자연적 존재이어야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에 비판적인 이유는 지적요인 (Intellgent agent)에 의한 간섭을 적법한 설명으로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여러 과학 프로그램 (SETI, 범죄학, 암호학 등)에서는 지적요인에 의한 간섭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라는 방법론으로 과학과 비과학을 나누시려는 계획이었다면, 그러한 기준은 성공적이지도 않고, 과학 철학적으로도 근거가 부족함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뿐만아니라, 언급하신 것과는 정반대로 지적설계론 진영에는 불가지론자, 기독교, 천주교, 유태인, 무슬림까지 다양한 종교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물론, 설계의 주체에 관한 의문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이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신인지 아닌지 등등), 지적설계론은 이에 대해 그 이상의 어떠한 답도 제공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적설계론 진영은 과학 이론으로서 지닌 논증의 한계에 대해 솔직한 편입니다.

      몇편에 걸친 지적설계론에 대한 평가를 흥미있게 읽었지만, 계속되는 오해들을 답습하고 있다는 면에서 아쉬움을 표합니다. 진화를 받아들인다고 다 유신 진화론자로 분류되지 않는 요즘의 논증의 구도를 제대로 이해하신다면, 유신 진화론에 대해서는 보다 면밀한 평가를 해주시리라 기대해봅니다. 한가지 첨언하면, C.S. Lewis는 ‘고통의 문제’에서 인용하신 부분은 그 책을 쓸 당시 C.S. Lewis의 입장에 관한 정확한 인용이긴 합니다만, 그가 훗날 다윈주의 진화론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으로 바꾸었다는 것과 그것을 공개적으로 사람들에게 알리기를 주저했다는 일은 알만한 사람들은 아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그의 글중 한부분 떼어주고 독자들보고 알아서 생각하라는 것보다는 정확한 정보들을 다 알려주시고 판단은 독자 몫으로 남겨두시는게 나을 것 같습니다.   삭제

      • 이옥점 2012-04-14 08:03:13

        자세한 설명은 시간이 없기에 생략합니다.

        아무튼 저는 황윤관씨의 글을 싫어합니다.   삭제

        • SOO IL HYUN 2012-04-11 04:25:44

          진화론자들의 허위주장(Evolution is a Winner-for Breakthroughs and Prizes 칼럼비판)
          진화론자들이야말로 “과학이 아니다”(pseudoscience). 그럼에도 그들은 “지적설계”(Intelligent Design: ID)를 pseudoscience(허위과학)이라고 매도하고 있다.(James McCarter 칼럼의 3번째 문단 중에서) 그리고 진화론을 solid science(진성과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칼럼 4번째 문단 중에서)
          James McCarter의 칼럼에서 많은 잘못된 주장과 논리(logic)를 발견하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한가지만 지적하겠다. 그것은 6번째 문단 마지막 문장이다. Transposable Elements(TEs, parasitic DNA)가 mutation(돌연변이)와 natural selection(자연선택)을 가능하게 했다는 진화론자들의 주장이다. McCarter는 자신있게 “show”라는 단어를 쓴다. 그러나 양심적인 과학자들은 항상 “may”라는 단어를 붙인다. 즉 “may show”인 것이다. 그런데 “may”가지고는 진화를 주장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자들은 양심적인 과학자들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어떤 면에서는 과학자들이 아니다.
          McCarter의 칼럼은 2005년에 쓰여졌다. 이 칼럼의 (비과학적인) 핵심주장은 분자생물학, 유전학에서 중요한 issue(논쟁)이 되는 것이였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진화론자들의 핵심주장이 되는 핵심근거가 거짓(false)임이 들어난 것이다. 그 논문들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http://www.icr.org/article/evolutions-best-argument-has-become/
          http://carnegiescience.edu/news/%E2%80%9Cjumping_gene%E2%80%99s%E2%80%9D_preferred_targets_may_influence_genome_evolution
          미국 카네기 대학교의 연구결과와 그에 따른 논문이 허위과학이라고 우기면 안될 것이다.
          나는 ICR(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위의 두 웹사이트는 ICR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ICR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결코 pseudoscience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대화하고 논리적인 논쟁(logical arguing)을 한다. 오히려 진화론자들이 논리적 공백을 진화라는 잘못된 가설과 허위과학으로 매꾸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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