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성관계에 대한 20대 여성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이들은 상당 부분 전통적인 기독교 성윤리와 사회 성윤리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하고 있다 신앙과 현실의 괴리.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가.
ⓒ뉴스앤조이 김승범
"여성주의와 종교적 믿음 모두 자아와 함께 자라난 내 의식의 큰 부분이야. 일정 정도 상충되는 두 가지 요소는 나이가 들수록 서로 맞부딪쳤지. 스스로 성행위 자체를 죄라고 시인하지는 않지만 기도를 할 때면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어. 그래서 교만, 사랑 없음 등 모든 죄를 한꺼번에 뭉뚱그려서 '하나님, 죄인입니다. 모자랍니다. 저의 죄된 속성을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를 해." (김효선·가명·27)

"처음 성관계를 가진 대학 시절을 가끔 생각해. 그 때는 교회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성이 싫어서 의도적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았어. 기독교 윤리 때문에 성관계를 거부하지도 않았어.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어, 이거 성경에서는 죄라고 했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갈등이 생겨. 성경에 나오는 말과 현대인들의 생활은 너무 동떨어져 있어. 술 취하는 것도 성경에서는 죄라고 하잖아." (나민정·가명·29)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하니까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알고 싶었어요. 하나가 되고 싶은 욕망. 그런게 죄라는 것은 알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하고 싶어하니까 강하게 안 된다고 말을 못했어요. 가끔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관계가 깨지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좋았지요. 하지만 관계가 깨지고 집안에 우환(憂患)이 생기니까 나도 모르게 '벌받나 보다. 하나님이 벌을 주셨나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송시연·가명·25)

혼전성관계에 대한 20대 기독 여성들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혼인 이외의 모든 성생활을 금지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여성들이 최근 혼전성관계에 대해 관대한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무엇보다 사회의 성윤리가 급변함에 따라 기독 여성들의 의식도 달라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혼전성관계를 받아들인 여성들은 상당 부분 전통적인 기독교 성윤리와 사회 성윤리 사이에서 끝없는 갈등을 하고 있다. 두 가지 성윤리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들. 시대에 따라 점차적으로 변해 가는 혼전성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과 이들에 대한 종교적 태도는 어떨까.

여성들의 혼전성관계에 대한 변화의 모습은 기독교 단체의 실태 조사를 통해 잘 드러난다. 지난 99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총무 한국염)가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기독교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독교인 성·성평등 의식 실태조사’에 따르면 '혼전에 성관계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여성의 경우 54.3%(남성42.4%)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혼전성관계를 해도 좋다'고 응답해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설문을 실시한 주관 단체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뀌기도 한다. 지난 2월 15일부터 18일 동안 기독교방송(CBS)이 위성TV 개국을 맞아 전국의 만 20세 이상 기독교인 500명을 전화면접 조사한 결과는 혼전성관계를‘해선 안 된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89.8%에 달해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러나 대체로 젊은 기독교인들의 성의식이 개방적으로 변하고 있음은 사실인 듯하다. 천안대학교 학생생활연구소가 2001년 신입생들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독교학부 신입생 응답자의 약 40%(358명 중 142명)가 '사랑한다'면 혹은 '결혼을 약속했다'면 결혼 전이라도 성행위가 가능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일련의 조사결과들은 교회가 추구하는 금욕적인 삶과 실생활의 격차가 무척 크다는 현실을 드러낸다.

기독교여성상담소 홍보현 부장은 이에 대해 "교회 성윤리와 사회 성윤리의 격차가 심한 탓에 기독교인, 특히 여성들이 성행동을 결정하는데 큰 혼란을 겪는다"며 "성과 관련해 소신을 갖도록 격려하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독 여성들이 성관계에 대비한 육체적·정신적 준비는 등한시 한 채 무조건 '혼전성관계를 가지면 안 된다'거나 '사회의 가부장성에 도전해 혼전성관계를 갖는 것이 해방'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여성들의 경우는 특히 주체적인 성행위에 대한 요구가 절실한데, 사랑의 감정에 빠져 상대가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성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다. 주체적인 성관계가 아닐 경우, 결국 한국 사회의 이중적 성규범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은 여성일 수밖에 없으므로, 성행동 결정에 대한 주체적 사고는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우환(憂患)이 드는 것을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인식하게 만드는 잘못된 교회 교육으로 인해 여성들은 더더욱 큰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렇다면 기독 여성들에게 이중적 고통을 주는 혼전성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기독교윤리학자 헤르베르트 하크와 카타리나 엘리거가 공동으로 저술한 『사랑을 방해하지들 말아다오- 성서로 본 인간의 성생활』에 따르면, 율법은 결혼과의 연관 속에서만 남녀의 성적 태도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을 뿐 미혼자들의 성에 대해서는 어떤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아가서를 보면 젊은 두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자주 나타나는데 소녀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우리의 보금자리는 온통 녹음에 묻혀 있고 우리집 들보들은 송백나무요, 천장은 전나무라네"(아 1:16-17) 또한 사랑하는 사람을 초대하는 장면에 이르러서는, "사랑하는 임이여, 어서 들로 나갑시다. 거기서 나의 사랑을 당신께 드리리다"(7:12-13) 남편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아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기독교윤리학자인 이인경 교수(37, 연세대·영남신학대 강사)는 "성을 말할 때 그 의미를 포괄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삽입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만 판단한다"며 "이런 성기 중심적 사고를 유독 여성에게만 적용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기 중심적 사고로 성행동을 판단하기보다는 성이 지닌 의미에 대해 교회 내에서 진지한 토론을 전개해, 각 개인이 성에 대해 자기 결정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교인이 교회 내 성교육을 찬성하지는 않는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크리스천 네티즌은 성교육은 세상에서 하는 일이지 경건해야 할 교회에서까지 이를 담당할 필요가 있냐고 되물었다. 그러나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한국염 총무는 "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데 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자체가 불경한 일이다"라고 단호히 말한다. 'Holy is Whole'이라는 말이 기독교윤리학자들 사이에서 흔히 통용되듯이 인간을 둘러싼 모든 문제가 경건한 것이고 교회는 이 모든 문제를 다뤄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교회의 성규범과 기독교인들이 살아가는 실생활과의 차이로 인해 현대를 살아가는 기독 여성들은 혼란스럽다. 그 과정에서 교회를 떠나는 여성들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결혼 전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유로 교회는 이들을 단죄할 수 있을 것인가?  한국 교회는 이 격차의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리하여 순결서약선언서와 세족식 같이 순결서약을 강요하는 일방향의 성교육에서 벗어나 개인의 성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져야 한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를 떠나 한가지 방식으로만 유통되는 성담론은 분명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지속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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