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투표할 것인가?> / 김선욱 외 8인 지음 / IVP 펴냄 / 276면 / 1만 2000원
한국 사회의 중요한 문제들을 복음주의적 지성을 가지고 제대로 다루어 주는 책. 마음속에 늘 품고 있던 바람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과 IVP가 함께 <어떻게 투표할 것인가?>라는 책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책 제목은 투표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이 책이 담고자 하는 목표는 더 원대하다.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한국 사회의 현실을 품고 더 치열하게 생각하게 하자는 것이다.

정치적 사고에 관하여

현실의 문제에 대해, 특히 정치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의견의 각축장에 뛰어들어 기존의 축적된 논의를 따라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신중한 연구와 자료 검토를 할 시간도 없이 입장을 정하도록 요구받는 경우도 있고, 아예 판단을 위한 기초 자료가 공개되어 있지 않은 경우도 빈번하다. 때로 좌파와 우파의 의견이 격렬하게 대립하는 핫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전문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어떤 입장의 전문가인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런데 정치적 사고가 어려운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정치적 사고는 언제나 과거에 한 번도 없었던 문제에 대한 사고이며, 그러므로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사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편집자인 김선욱 교수가 여러 번 강조하는 말이다(p. 59 이하 참고). 우리 사회는 대립하는 두 편이 함께 논쟁하면서 길을 찾아나가는 사고를 해 본 경험이 거의 전무하기에, 더욱 정치적 사고가 어렵게 느껴진다. 그런데 진정한 정치적 사고가 결여되면 소통은 단절되고 사회는 양분된다. 그리고 그러한 양분을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기꾼들이 진짜 정치가들이 서야 할 자리에 꼬인다.

그러나 정치적 사고에 정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공동의 가치를 생각하고, 현실을 철저히 분석하며, 현실 속에서 그 가치를 구현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들이 취하는 방법도 그런 길을 따른다. 이들은 각자 자기 분야에서 현실의 문제를 오래 연구해 온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성경적인 원리로부터 혹은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근거로부터 생각을 시작하여, 현실의 문제를 분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다.

같은 복음주의자라고 해도, 성경적 가치와 원리를 공유한다고 해도, 현실 속에서 그것을 구현하는 전략은 서로 다를 수 있다. 그런데 이 다름은 결코 소거될 수 없는 정치의 본질에 속한 것이다. 불편하지만, 창조적으로 소화해야 할 다름이다. 좌파나 우파로 간단히 낙인찍힐 수 있기에, 자기 생각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은 위험하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정치적 사고에서 발전은 불가능할 것이다.

김선욱 교수는 애초부터 저자들에게 자신들의 주장을 가감 없이 과감하게 펼치라고 요청했다. 적당히 중간에 서서 양쪽을 저울질 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리는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자들이 복음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자신의 영역에서 치열하게 사고하는 것을 보면서 배운다. 지식을 얻을 뿐 아니라, 생각을 시작하는 원리와 방법도 배우고, 제기된 주장에 대한 근거도 따져보게 된다.

한국 사회를 파악하는 내러티브

정치학자 백종국 교수는(1장) 체제 변동의 관점에서 최근 한국 사회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내러티브를 제시한다(pp. 26~31). 그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 체제 변동에 대한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현재의 한국 사회 체제를 파악하는 개념으로서 '천민자본주의 지배연합'의 존재와 작용을 제시한다. 5공화국 시기부터 등장한 한국 사회의 지배층은 '외세 의존과 천민자본주의적 약탈'을 추구하는 지배연합이다. 백종국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신중상주의적 지배연합'의 외피는 유지하였으나 성격에는 커다란 변이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도, 이 시기 이후로 한국 사회는 눈에 띄게 공동체적 가치를(애국심, 한민족 의식 등) 상실했다고 느끼고 있고, 부동산 투기 등 비도덕적 불로소득으로 자본력을 확장한 반칙적인 천민적 지배 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사회를 주물럭거린다는 분석에 공감할 수 있었다. 이후 정치권이 천민자본주의 지배연합에 포섭되거나 공격을 받으면서 변화해 온 흐름을 설명하는 부분도 설득력이 있었다. 개인의 자유, 경쟁, 자본주의라는 말은 그 자체로는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반칙적인 지배 세력의 권력 유지를 위한 수사로 이용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백종국 교수는, 새뮤얼 헌팅톤의 <정치발전론>을 인용하며 정치 발전이 사회의 선한 축적물의 파괴를 가져오는 혁명이나 쿠데타가 아닌 개혁을 통해 진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개혁은 피지배층에게는 너무 온건해 보이고, 지배층에게는 너무 과격해 보인다는 딜레마가 있다. 이 딜레마를 잘 극복하는 것이 정치 발전의 핵심이며, 그 과정에서 민주적 선거를 통한 개혁적 사회 전환을 이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MB 정권의 신뢰성을 바닥낸 환경 정책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개인적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해 지녔던 최소한의 기대마저 뒤집어진 분야는 환경 분야였다(4대강 사업, 원전 건설 등). 김정욱 교수의 글(5장)은 이명박 정권의 환경 정책이 얼마나 시대를 역행하는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폭로하고 있다.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4대강 사업이다. 정치적인 이슈들 가운데는 관련된 현실이 복잡하여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것들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중고등학교 때 배운 과학 상식과도 맞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구상이 어떻게 지식인들의 검증 없이 정책으로 채택되었는지 의문이다. 강바닥을 파고 물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일은 결코 하천 회복 사업(이 사업의 영어 이름이 '회복' 사업이다)이 아니다. 수천 년 흘러 온 물길에 손을 댐으로써 생겨날 것으로 예견되는 재앙들(예를 들어, 상류의 지천 침식으로 추가 발생하는 보수 비용이 최소 15조 원!)은 끔찍한 수준이다. 김정욱 교수는 가장 유지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은 공사해 놓은 것을 하루빨리 다 뜯어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 교수의 주장이 너무도 극단적인 것으로 보이는 만큼(처음 들을 때는 귀가 의심스러웠다), 이명박 정권의 국토 정책은 극단적으로 잘못 나갔다. 그렇게 된 이유는 대통령이 듣는 귀가 멀든지, 아니면 그와 가까이 있는 기독 지성인들이 양심을 지키고 기독 지성인으로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비판적 역할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욕이나 권력욕에 이끌려 굽어진 지성은 최악의 지성이다.

이 책의 저자들은 각자 성경적인 가치로부터 출발하여 철저히 현실적인 사고를 추구한다. 그들이 내놓은 정책 대안은 하늘의 원칙을 땅 위 현실에 구현하려는 방안들이다.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라 오랜 분석과 연구 끝에 나온 것들이다. 그럼에도, 그 방안들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아니며, 더 나은 방안도 존재할 수 있고, 또 시간이 지나면 변화된 현실 속에서 그 빛이 바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그런 방안을 내놓는 수고와 위험을 무릅씀으로써, 기독 지성인은 자신의 소명을 수행한다. 그리고 독자가 그들의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독자들 속에 또 다른 기독교적 사고가 촉발된다. 그래서 이런 책이 소중하다.

노종문 / IVP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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