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이지만 저는 '창조 과학'과 '지적 설계론'을 각각 시차를 두고 다른 경로를 통해 접했었습니다. 유신 진화론을 소개하기에 앞서 오늘은 잠깐 그 얘기를 해 보고자 합니다.

창조 과학과의 만남

제가 '창조 과학'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창조과학회가 출간한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을 통해서였다고 기억됩니다. 이 책을 저는 1980년대 중반에 읽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굉장한 흥미를 느끼고 그 후 창조과학회에서 나오는 자료들을 빼놓지 않고 열심히 탐독하게 됩니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권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했던 것이지요. 또 자발적으로 주변에 창조 과학 책들을 추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과는 달리 당시에는 수준 있는 과학 교양서적들이 많이 번역되어 있지 않았고, 따라서 그런 책들을 통해 현대 과학을 설명 듣지 못했던 저에게 '창조 과학'은 성경의 확실성을 뒷받침하는 좋은 증거이자 신천지였습니다. 창조 과학에서 제시하는 과학적 증거들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1990년대에 제가 신학 공부를 하는 초기까지도 이어져서 학생들 앞에서 기독교를 변증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러 철학적 논증들과 함께 꼭 약방의 감초 격으로 창조 과학의 주장들을 끼워 넣곤 했습니다(그 당시 저를 UC Irvine과 UCLA 등 여러 곳에 불러 주셨던 안상현 목사님, 혹시 이 글 보고 계신지요. 감사와 사과를 함께 드립니다. 당시 저의 강의 아닌 강의를 들었던, 아마도 지금은 결혼해서 아이들이 제법 컸을, 학생들께도 사과드립니다).

대중 홍보로 과학이 될 수 있을까

그러나 점차 저에게도 상식적인 의문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만약 창조 과학에서 주장하는 것이 옳다면 전 세계의 그 수많은 과학자가 다 틀렸다는 것인가?" "왜 신학자들은 성경의 문자적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들의 경이로운 주장에 별 주의를 쏟지 않는 것일까?" 창조 과학의 주장이 옳다면 결국은 전 세계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이들보다 무지하거나 아니면 비양심적이라는 말이 되는데, 정말 그럴까 하는 회의가 들었던 것이지요.

제가 창조 과학을 의심스럽게 생각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창조 과학이 계속 자신들의 주장을 정상적인 과학의 통로가 아니라 대중들을 상대로 한 서적이나 강연을 통해서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창조 과학의 주장이 옳다면 생물학뿐만 아니라 천문학과 우주물리학, 해양학, 지질학 등 과학의 전 분야에 그야말로 경천동지할 혁명이 일어날 것이 분명한데도, 창조 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과학적 증거들(?)이나 주장을 세계적 학술지나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는 얘기는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이런 것들을 도저히 정상적인 과학의 방법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자각이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과연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찾아서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이러한 과정이 하나의 지나온 사다리요 아련한 추억이지만, 아직도 창조 과학 사이트에서 얻은 과학 지식(?)을 가지고 분기탱천해서 사방을 찌르고 다니며 '정신 승리'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여전히 한국교회에 남아 있는 창조 과학의 어두운 그림자를 느끼곤 합니다.

신학교에서 만난 지적 설계론

스스로 빠졌다가 스스로 빠져나온 창조 과학의 경우와는 달리 '지적 설계론'은 제가 1990년대에 신학교를 다니는 과정을 통해서 접하고 배우게 된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신학을 공부한 대학원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는데 (그 학교를 못마땅해하는 사람들은 '세대주의 보수 꼴통 신학교'라고 빈정대기도 했습니다), 이 학교에는 지적 설계론의 입장에 서 있는 교수들이 여러분 있었습니다. 저는 이분들 중 일부의 강의를 직접 듣기도 했고, 또 신학대학원이 속해 있는 대학 전체가 지적 설계론에 우호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에 여러 지적 설계론 서적들도 나오자마자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전의 글에서 소개해 드린 지적 설계론 책들과 함께 'Mere Creation (윌리엄 뎀스키 편저)', 'The Creation Hypothesis (제임스 모어랜드 편저)' 등을 학교 책방에서 구입해 읽고 지적 설계론이 과학과 성경을 이어 주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이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전과는 달리 함부로 속단하거나 들뜨지는 않았습니다. 제기된 주장에 대한 전문 학자들의 반응이나 반론을 먼저 봐야 하고 또 거기에 대한 재반론이 어떤가를 보기 전에는 함부로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과거의 학습 경험을 통해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 신학교를 마친 이후에도 새로 나오는 관련 서적이나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웹사이트를 살펴보곤 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지적 설계론 쪽에서는 새로운 진전이라고 내놓는 것도 제가 보기에는 '동어 반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지적 사고 (Intelligent Thought)' 등 여러 경로를 통한 학자들의 반론에 대한 지적 설계론 쪽의 반응도 저에게는 설득력 있는 재반론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시카고대학교 생태진화학부 교수인 제리 코인(Jerry Coyne)이 '지적 사고'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1973년 이래 동료 과학자의 검토를 받은 신다윈주의 진화에 관한 논문이 10만 부가 넘게 발표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몇 년 전에 쓰인 글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지금은 최소한 11만 부가 넘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우리는 이러한 과학계에서 지적 설계론이 지난 20년간 동료 과학자의 검토를 받은 논문을 과연 몇 부나 발표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과학자로서 과학 연구에 몰두하기보다는 (창조 과학의 전철을 밟아) 대중 홍보에 더 열을 올리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 저의 솔직한 느낌입니다. 부디 저의 이러한 느낌이 잘못된 판단이기를 바랍니다.

황윤관 / 작은자교회 목사, School of Intercultural Studies, Biola Univ.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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