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교회 제공 사진)

3월 30일 충남 보령 동대동에 있는 작은 건물 3층에서 초대교회 창립예배가 열렸다. 30평이 채 안 되 보이는 좁은 공간을 200명 정도 되는 교인들이 빼곡이 채웠다. 개척 교인들 외에 충남노회 목사 장로들, 초대교회 교인들과 직·간접으로 친분이 있는 교인들이 함께 예배드리며 개척의 기쁨을 나눴다. 오전에 드린 주일예배에는 70명 정도가 모였다.

초대교회는 지난해 12월 담임목사 세습 사건이 터지면서, 이를 반대하다가 교회에서 강제로 쫓겨난 대흥교회 교인 30여 명이 모여서 만든 곳이다.

10년, 20년의 긴 세월을 믿음의 보금자리로 여기고 지내왔던 교회에서 한순간에 쫓겨나는 사건은 개인에게는 평생 치유하기 어려운 엄청난 사건일 수밖에 없다. 충격과 분노와 울분이 쉬 가시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것들을 이겨낸 힘은 기도였다.

비·눈 맞고 자란 들국화가 더 향기 나는 법

▲(초대교회 제공 사진)

작년 겨울 예배당 출입이 완전히 차단된 이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예배당 앞마당에 모여서 기도하고 절규했다. 손발을 꽁꽁 얼게 만드는 강추위가 이들을 괴롭혔지만,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모임은 한번도 중단되지 않았다. 시위에 가까운 기도회를 하고 나서 곧바로 기도원에 올라가서 늦은 밤까지 맘속의 한과 원망을 하나님께 털어놓았다. 그렇게 지낸 지도 그새 100일이 훌쩍 넘었다. 각자 직장이나 사업장에서 퇴근하자마자 모임에 참석, 밤 12시가 되어서야 귀가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길고 지루한 싸움의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시간이었지만, 그것은 새로운 믿음의 눈을 뜨게 만드는 연단의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기도했다"면서 "언제 또 이렇게 원도 한도 없이 기도하겠냐"고 고백하는 교인도 있었다. 교회개혁실천연대와 뉴스앤조이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내려가서 함께 예배를 드릴 때면 그 동안 쌓이고 맺힌 격정을 누르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서 우는 교인도 있었다.

하지만 이날 예배는 마치 혼인 잔칫집 분위기였다. 몇 달만에 성가대복을 다시 입고 성가대석에 섰는가. '불같은 성령'을 합창하는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초대교회에 임했던 성령이 보령의 초대교회에도 다시 임하길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그 합창 소리 안에 담겨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예배당 바닥에 상을 차리고, 국수와 떡과 과일을 나누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는데, 장로·권사·집사·남자·여자 구별이 없었다. 옛날의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모습은 사라졌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님 접대에 분주하지만, 얼굴 표정은 그렇게 밝을 수가 없다. 며칠 전에는 다같이 쑥을 캐러 갔다고 한다. 손님들에게 대접할 떡을 만들기 위해서였단다. 남녀 노소 직분을 가리지 않고 쑥을 캐면서 마음 깊이 맺혀 있는 분노도 캐냈다. 식사를 한 뒤 설거지를 하고 뒷정리를 하는 데 남자들이 나서는 것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자에게도 상을 차려주면서 "너무 좋아요, 너무 좋아요, 전에는 억울해서 울었는데, 이제는 좋아서 눈물이 나요" 잡은 손을 연신 흔들면서 눈물을 흘리는 교인도 있었다. "이젠 정말 좋은 교회 만들 거예요. 힘이 되어 주신 분들이 너무 많아요. 그분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더 잘 해야죠" 하며 또 눈물을 글썽이는 이도 있었다. 물론 "마음이 울적하다"며 허전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는 이도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

과거의 상처를 씻고 새롭게 첫걸음을 내디뎠지만, 진짜 어려운 과제는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잘못된 모습을 바로잡기 위해서 저항의 몸부림을 쳤으나 이제는 좋은 교회를 스스로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박성수 장로는 "세습을 반대하면서 하나님의 정의가 살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지치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 좋은 교회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우리는 날마다 변하고 개혁하는 교회가 될 것이다. 보령에서 한 알의 썩는 밀알이 되는 교회가 될 것이다"고 다짐했다.

이 교회의 첫 번째 과제는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일이다. 워낙 혼이 났다고 생각하는지, 목사 청빙 문제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고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또 교회 구조의 민주화를 위해서 교회정관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워낙 전통적인 교회생활에 익숙하기 때문에 체질 개선을 위해서 수많은 갈등의 시간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성수 장로는 "우리는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난초가 아니다. 눈 맞고 비 맞으면서 자란 야생화나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그렇게 연단하셨다. 들국화가 더 향기가 있는 것처럼, 이제는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교회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노회·총회, 축하와 격려…대흥교회 목사 자격정지

이날 창립예배에는 충남노회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했다. 한 노회원은 "노회 안에 교회를 개척하는데 노회원이 이렇게 많이 참석하는 사례가 없다"고 했다. 또 기장 총회장과 총무, 전국장로회가 축전을 보냈다. 노회와 총회가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대흥교회의 담임목사 세습과 교인 징계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날 기도 순서를 맡은 장항교회 윤여생 목사는 "바른 신앙생활 위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교회를 개척하게 해주신 것 감사"하면서 "어두운 세상 밝히는 빛과 소금의 사명 잘 감당하기를" 기도했다. 노회 원로인 장만용 목사는 "애굽의 노예생활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때 수많은 시련과 유혹이 있지만, 그 모든 걸 이겨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서 첫걸음을 떼는 초대교회 교인들을 격려했다.

노회는 대흥교회 원로목사와 담임목사의 목사 자격을 정지시키고 징계 자체를 원인무효로 결정했다. 쌍방간에 치열했던 일반 법정에서의 공방은 양쪽 모두 취하했다. 대흥교회는 초대교회에 개척자금 명목으로 1억 5천만 원을 지원했다. 초대교회는 대흥교회가 개혁되어서 앞으로 두 교회가 지난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형제교회로서 다시 만날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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