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개인 연락처를 몰라서 이렇게 투고의 형태를 빌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작년 여름부터 강정마을에 살고 있는 유가일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저를 모르시겠지요. 하지만, 2003년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만났던 유은하라고 하면 기억하실 것입니다.

강정바다와 구럼비는 영광스러운 창조물

존경하는 목사님, 긴 이야기를 어떻게 한정된 지면 안에 다 드릴 수 있을까요? 강정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계신지 잘 모르겠지만,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금 마구 파헤쳐지고 있는 강정 앞바다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호구역, 절대보전지역, 세계지질공원 등으로 선정된 곳이구요. 정말 작고 아름다운 생물들이 바다와 1.2km 용암 통바위인 구럼비에 옹기종기 살고 있답니다.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제7올레길에 자리잡은 구럼비로 가는 마지막 길이 천여 명 무장경찰에 의해 막히기 전에 오셨다면, 그 생명력 넘치는 곳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해 보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 바위 틈에서 용천수가 솟아 동식물도 살아갈 수 있는 신비한 구럼비바위. (사진 제공 유가일)
그런 작은 생명들엔 관심이 없으시다구요? 그럼 마을 사람들 얘기는 어떠세요? 이 마을 성인 인구가 1000여 명인데요, 작년부터 올해 2월 말까지 총 연행자 수가 330명이 넘습니다. 딱 3분의 1이지요. 공사장에 접근하거나, 조금이라도 업무에 방해가 된다 싶으면, 맞고, 끌려가고, 조사받고,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받고, 벌금형 받거나 구속되고…. 이게 이 마을의 '일상'입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해군과 경찰, 공사 업체와 충돌로 비상 사이렌이 울리는 마을, 상상이 가세요?

벼랑 끝에 몰린 강정마을 사람들

저는 목사님을, 오랫동안 한국에 공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애써 오셨고, 국내의 조선족 노동자들을 섬기시며, 최근에는 탈북자 북한강제소환에 반대하는 데 앞장서고 계신, 누구보다도 소외받고 탄압받는 이들의 입장에서 싸우며, 노력하시는 분으로 알고 있답니다. 그런데, 목사님, 그런 사람들이 여기 있어요. 이 강정마을 사람들이 너무나 아파요.

이 마을은,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가 마을 주민의 의견 수렴 과정 전혀 없이 기지 공사를 강행하고 있답니다.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말은 하지만, 이미 2중 계약서, 심각한 설계 오류, 올해 해군기지 공사 예산 96% 삭감 등으로 국회조차 사업의 부당성을 인정했는데, 미성년자, 노인, 종교인, 평화활동가, 외국인, 기자 가리지 않고 막가파 연행을 하면서 무지막지하게 공사를 진행하고 있답니다. 굳이 '찬성집회'를 하러 오지 않으셔도 될 만큼 정부와 해군, 경찰, 언론, 도정에 이르기까지 하나되어 이 마을을 고립시키고 몰아붙이고 있어요.

▲ 지난 10월, 공유수면인 구럼비 주위에 높은 장벽을 세우고 경찰들이 출입을 통제한 상황에서 시범 발파가 진행되었습니다. (사진 제공 유가일)
제주 일강정을 기지촌으로 만들려고요?

혹시 해군기지가 생기면 경제가 발전될 거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제가 알기로 군사기지는 한번 지어지면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습니다. 해군이 들어오면 그를 보호하기 위해 공군이 들어오고요, 마을 안에는 군인 아파트와 유흥 시설이 지어지게 됩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400년 간 지키며 살아온 삶의 터전을 떠나야겠지요.

저는 1년 넘게 동두천 미 2사단 옆에 살았던 적이 있어요. 마을엔 미군 클럽과 매춘 시설이 즐비하고, 미군 범죄에 알코올과 마약 중독, 에이즈 환자에 가출 청소년들까지 그렇게 황폐할 수가 없었습니다. 산업이라곤 미군을 대상으로 한 것만 가능한, 전형적인 '기지촌'이 되는 거죠. 이런 동네에서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하고, 건강한 경제 발전이 가능할까요? 저는 詩처럼 아름다운 제주의 보석 같은 이 마을이 '기지촌'으로 변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서경석 목사님과 함께 2천여 명이 '해군기지 건설 촉구집회'를 하러 오신다구요? 설마 제주기독교연합 목회자분들과 '찬성예배' 드리는 건 아니죠? 저는 예배는 창조주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함께 오신다는 성도분들은 국가를, 군대를 믿고 예배하시나요? 아니면 정의와 평화의 하나님, 로마군에 끌려가 재판받고 처형당하신 예수님을 믿으시나요?

▲ 지난 9월, 기장교단 성도들이 마을을 기도하며 행진하다가 전경들에게 둘러싸였습니다. 강정에선 기도도 불법입니다. (사진 제공 유가일)
국가는 정의와 국민들의 신뢰로 지키는 것

저는 평화를 원하지만 비무장을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분명치 않은 '가상의 적'을 막으려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을 탄압하는 것은, 변명할 여지 없는 불의가 아닌가요? 국가의 안보는 더 많은 무기가 아니라 정의로운 정부에 대한 신뢰를 통한 애국심으로 가능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시다 젊은 시절 옥고를 치르신 목사님이라면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이곳의 주민과 활동가들이 애국심도 없고, 불법으로 공사 방해를 하고 있다고 들으셨나요? 저는 이라크에서도 행여나 한국 실정법을 어겼을 까봐 노심초사했고, 일생 경찰서 근처에도 가 본 적이 없던, 강정에서도 '투명 인간'에 가까울 정도로 현장에 나간 적이 거의 없는 제가 이곳에서 벌써 두 번 연행되고, 공사장 근처에서 춤추던 어린 학생들도 유치장에 들어가고, 공유수면에 들어갔다가 경범죄 스티커를 받고, 기소와 재판까지 준비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제 상황이 '미니멈(minimum)'이니 다른 분들은 오죽하실까요.

국가의 죄악을 방관하면 교회가 핏값을 치를 것

만일, 한국교회가 국가의 이토록 극명하고 크나큰 죄악을 방관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죽임과 파괴의 사업'에 동참하고 부추긴다면, 가뜩이나 욕을 먹고 있는 교회를 망신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강정은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구원하시고 마지막 날에 폭압적 국가권력이 주의 심판을 받겠지만(저와 이곳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습니다), "악인은 그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내가 그 핏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라(에스겔 3:18~20)" 하신 주님의 엄중한 경고의 말씀에서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부디 정신을 차리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오셔서 '찬성 집회'를 하신다면, 저를 비롯한 이곳의 그리스도인들, 주민들과 충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가슴 찢어지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합니다.

▲ 지난 성탄절 다음날 아침 기지 공사장 앞에서 연행된 평화활동가들이 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석방된 후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서울 나들목교회 성도 6명도 함께였습니다. (사진 제공 유가일)
침묵으로 죄악에 동참하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작은 마을에서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무 상관없이 신앙생활하고 계신 그리스도인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하는 때입니다. 제발 제발 제발, 신학이니, 기독교 세계관이니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 방식이 어떠니 하는 논의는 필요하지만, 여기, 몇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보내놓고, 마치 복음주의 교회로서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우리도 저런 사람 있어' 하며 자위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찬반 양쪽의 의견을 균형 있게 들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이미 지났습니다.

예, 지금은 강정에 방해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선전포고'를 한 상황이고, 이곳의 자연과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될 위험에 처해 있답니다. 막을 수 있을 때 주저하고만 있다가 나중에 마을 사람들에게 위로물품 보내실 건가요? 설마 마을이 사라져 버린 후에 추억하실 건가요? 아니, 이 일로 누군가 죽어나간 다음에 추모예배라도 드리실 건가요? 여러분이 지금 침묵하면, 국가는 더욱 흉포해지고, 제2의 광주사태, 용산사태가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 마을 어디서나 보이는 해군기지 반대 깃발인데, 요즘에는 '결사'라는 단어가 계속 마음에 남습니다. 무엇을 결정해야 할까요. (사진 제공 유가일)
누군가 죽어야 이 광기가 멈춰질까요

며칠 전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기자회견 이후, 한줌도 안 되는 이곳 활동가들은 '올 것이 왔다'고 느끼고 있답니다. 1월에 20여 명 수녀님들과 함께 연행된 한 활동가는 '순간적으로 가방에 들어있던 문구칼로 몸을 그을까 생각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나마 이 마을에서 가장 멀쩡해 보이는 활동가는 어제 제게 조용히 묻더군요. "혹시, 자해하면 법적으로 죄가 될까?"라고요.

어제 삼일절날 아침부터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눈을 뜨면서는 '정말 누군가 죽어야 이 광기가 멈춰지는 건가?'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오후에는 한 활동가가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바다에 투신하려 하기도 했지요. 1월에 해상에서 체포되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연행되면 안되겠다. 순서를 짜 보자. 내일 누가 연행될래?" 하고 의논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써도 아무 소용이 없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각자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제주 4·3평화공원을 둘러싼 3만여 명의 희생자 명단 비석. (사진 제공 유가일)
3월 8일이 아니라 4월 3일에 오십시오

목사님, 제주에 오지 마시라는 게 아닙니다. 오십시오. 단 4월 3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추모 행사에 와 보십시오. 47년부터 7년간, 당시 제주도민의 8분의 1인 3만 명 이상이 육지 경찰과 서북청년단, 미군에 의해 학살당한 엄청난 비극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떻게 큰 상처로 남아 있는지 보게 될 것입니다. 눈앞에서 가족이 몰살당하고, 84개의 마을이 불타 사라지고, 지금까지도 연좌제로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는 도민들 속에서 함께 통곡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주도에 '육지 응원 경찰'이 들어온다는 게 어느 정도의 충격인지, '종북좌파'라는 말이 도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게 되실 것입니다. 아, 강정에도 오십시오. 구럼비 바위 위에서 하는 평화학교 야외수업 강사로 모시겠습니다.

그리고, 천주교와 맞짱 뜨겠다니요. 지난 10월 1천여 명의 천주교인들이 강정포구에서 주민을 향해 불러 드렸던 노래 가사를 적는 것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을 대신하려 합니다. 저는 이 노래를 눈물로 들으면서 주님께서 교회를 통해 강정을 위로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너는 부서지고 깨어져도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
너의 슬픔, 너의 아픔, 너의 피눈물 고통과 함께 한단다"

▲ 지난 10월 강정포구에서 출범한 천주교연대가 주민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습니다. (사진 제공 유가일)
평화의 복음을 위해 피 흘리는 교회가 되길

마지막으로 저는, 생명 살상 외에 효용가치가 전혀 없는 전쟁 기지가 지어지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창조 세계가 찬란하게 아름다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주님께서 친히 싸우시도록 기도해 주시고, 목소리를 내주시고, 할 일을 찾아서 움직여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제발 살려 달라고 5년째 간청하고 있는 강정을 외면한다면, 나중에 주님께 "너희는 내가 고통 받을 때 돌아보지 않았다"는 말씀을 듣게 될지도 모릅니다.(마태복음 25: 41~45)

▲ 연행이나 경범죄 스티커 발부받는 것만 각오한다면 지금도 구럼비에 들어갈 수 있답니다. 서경석 목사님을 강정평화학교 구럼비야외수업 강사로 모십니다. (사진 제공 유가일)
지금 강정은 우리에게 평화의 복음이 값비싼 것임을 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국가권력을 비호하고 나설 때 세상 권력을 일시적으로 나눠 가질 수는 있겠지만, 세상 속에서 주님을 대변하지는 못합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전하셨던 평화의 복음을 지키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계산해야 할 때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면 갖고 있는 기득권을 내려놓고 많은 고난을 받겠지만, '하나님의 자녀'라 불리는 영예를 얻게 될 것입니다.(마태복음 5:9)

이상, 빨갱이 섬 범죄자 마을에서 종북좌파 양성소 강정평화학교를 운영하는 유가일이 드립니다. 건방진 말씀으로 들렸다면 용서해 주시되, 이 눈물의 호소를 들어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주님,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심판을 면케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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