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서 지탄받는 세습이 유독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상식이 된 것 같다. 전 총회장, 노회장, 선교단체 대표 등 대형 교회를 기반으로 한 교계 지도자들의 세습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습 안 하면 바보, 못 하면 등신'이라는 말이 목사들 사이에서 나돈다고 한다. 목사가 교회를 사유화한다는 지적이 지겨울 정도로 한국교회의 세습은 편만하다.

교인들도 세습에 대해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목사들이 설교에서 당위성을 피력하는 것은 물론 합법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세습 청빙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교인들은 △공동의회 등의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교인들의 동의로 청빙했다 △찾았던 후임 후보 중 아들·사위가 가장 뛰어나다는 등의 이유로 세습을 찬성한다. 또한 내·외부에서 세습을 비판하면, 교회를 공격하는 세력으로 규정한다.

최근 제일성도교회 세습 기사에도 위와 같은 이유로 진웅희 목사 청빙을 옹호하는 교인들이 댓글을 달았다. 오랫동안 제일성도교회 교인이었다는 김 아무개 집사는 "모든 사람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강제로 진행하는" 세습이 문제라며, 제일성도교회의 경우는 "민주적인 선택으로 청빙이 이뤄졌다"고 했다. 김 집사는 "제일성도교회가 바보들이 모인 곳이 아니며, 자신의 선택을 믿는다"고 확신했다.

다른 교인은 후임 목사의 자질론을 내세웠다. 양 아무개 집사는 "교회도 다른 목사를 청빙하려고 노력했다. 진 목사가 자질이 부족한 삯군이었다면 교인들이 들고일어났을 것"이라고 했다. 진 목사는 온유한 인격을 지녔고, 설교에는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이다.

대다수 교인들이 이렇게 생각하거나 세습이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공동의회에서 90%가 넘는 찬성표가 나왔다. 일부 교인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했지만, 쉽게 잠잠해졌고 상당수의 교인은 "설렘으로 새로운 목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교인들의 태도에 대해 구교형 사무총장(성서한국)은 "세습 그 자체가 큰 문제다"며, "세습의 성공은 교인들이 세습의 정당성을 인정하도록 길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제일성도교회는 성공적으로 세습했다.

▲ 사회에서 지탄받는 세습이 유독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는 상식이 된 것 같다. 대형 교회를 기반으로 한 교계 지도자들의 세습이 끊이지 않는다. 구교형 사무총장은 "세습의 성공은 교인들이 세습의 정당성을 인정하도록 길들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제일성도교회는 성공적으로 세습했다. 세습의 밑바탕에는 인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개혁연대는 세습 반대 성명에서 교회 세습이 인본주의와 유교적 잔재라고 비판했다. 사진은 제일성도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유영
"세습, 민주적 절차 밟아도 문제"

최근 세습 교회들은 교인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세습의 당위성을 알리는 것뿐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을 거친다. 설교 등을 통해 담임목사의 친인척이 후임으로 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길들이고, 절차도 투표라는 민주적인 과정을 거친다. 물론 반대 목소리는 미리 설득하고 잠재운 상태에서. 나중에 세습을 비판하면 '민주적 절차'를 제시하며 정당성을 주장한다.

"교회 개혁을 말하면서 민주주의는 무시하는가. 교인들과 그를 따르는 많은 목사가 원하고 있는데 왜 외부에서 물러나라고 요구하는가."

지난해 4월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박종운·백종국·오세택·정은숙)가 조용기 원로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가 퇴진하기로 한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젊은 목사의 발언이다. 세습과 독재를 지지하는 발언이 닮았다. 대중이 민주적으로 세습과 독재를 원한다는 의미이다.

세습 기사에 댓글을 단 전 아무개 장로는 교회사와 교회론에 무지한 교인들이 목사의 가르침만 받고 자란 '예스 부대'로 전락했다고 개탄했다. 전 장로는 "민주주의적 결정은 다수결이기 때문에 대중적 사회를 지향한다는 맹점을 지니고 있다"며, 교회 내 절차적인 민주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능력이 아니라 특권 물려받는 것"

물론 많은 사람이 지적하듯 모든 세습을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아무도 가지 않으려고 하는 시골이나 오지에서 평생 섬긴 교회를 아버지의 뒤를 이어 그 아들이 섬긴다고 할 때 그것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라, 감동 그 자체다."

지난 2008년 김홍도 원로목사(금란교회)의 교회 세습을 비판하는 개혁연대 성명의 일부분이다. 이런 세습을 누가 비판하겠는가. 비판을 받는 세습은 대부분 중·대형 교회 담임목사직을 두고 이뤄진다. 중·대형 교회들은 대부분 안정적이다 못해 넘치는 사례비와 재정 지원을 보장한다. 명예와 지위도 물려받는다. 중·대형 교회 목사들이 "목회는 고난의 길"이라고 설교하지만, 세습이 이뤄지는 교회 목사가 고난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기란 쉽지 않다.

세습에는 부와 명예, 지위만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부모 세대에 맺은 인맥도 물려받는다. 제일성도교회의 경우, 세습 청빙에 박규갑 노회장과 황진수 목사의 친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황 목사는 세계현지협력선교회 이사장이고, 박 노회장은 부이사장이다. 한 서경노회원은 "둘이 죽고 없어서 못사는 사이"라고 했다. 진 목사는 황 목사가 다져놓은 노회에서의 인맥과 영향력도 이어받을 수 있다. 안해용 목사(너머서교회)는 "시쳇말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목사들"이라고 지적했다.

진 목사는 제일성도교회 교인들에게 실력과 겸손한 인격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교인들은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진 목사를 기다리겠지만, 미국에 있는 샘터선교교회 교인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사역하던 많은 목사가 한국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 부르면 교인들을 남겨두고 들어온다. 샘터선교교회 교인들이 목사가 환경이 좋은 교회로 가는 것이 달갑기만 할지 의문이다.

제일성도교회 세습 기사 댓글에서 세습을 비판한 진 아무개 장로도 이 부분에서 실력과 인격을 겸비했다는 진 목사를 비판한다. 진 장로는 "평소에는 주님이 자신에게 맡긴 양 떼라며, 간이라도 빼어 줄 것같이 말한다. 하지만 좋은 자리가 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것은 누가 가르친 것"인지 물었다.

"심각한 신학적 오류"

세습의 밑바탕에는 인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 개혁연대는 세습 반대 성명에서 교회 세습이 인본주의와 유교적 잔재라고 비판했다. 자녀 세대가 편하게 목회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부모의 마음과 오랜 기간 쌓아올린 교회를 물려줘 안정적인 연속성을 취하려는 창립자의 마음이 겹치는 지점이 세습이다. 개혁연대는 "교회가 사람에 의해 세워지고, 유지될 수 있다는 심각한 신학적 오류가 낳은 결과"라고 지적했다.

구 사무총장은 한국교회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서 벗어나려면 교인들이 각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교인들이 비판 없이 따르면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교회다, 주님의 교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도 그건 목사의 교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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