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은 1981년 분산 정책으로 지금의 마을 부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주민들은 2009년까지 주민등록을 인정받지 못하는 등 행정 당국의 횡포를 당했다. (사진 제공 CBS 김동민 PD)
서울시 강남구 노른자위 땅 한 복판, 우뚝 솟은 타워팰리스를 배경으로 앉은뱅이 판자촌 마을이 있다. 이곳의 행정 주소는 개포동 1266번지이지만 주민들은 아직도 자신의 마을 주소를 '포이동 266번지'라고 말한다. 마을 이름에 담긴 주민들의 한과 눈물, 그리고 희망의 이야기가 [블로그다큐 예수와사람들] '포이동 266번지' 편을 통해 방송된다.

강제 이주 당했으나 불법 점유자가 된 사람들

1979년 박정희 정부는 넝마주의, 부랑인 등의 자활을 목적으로 '자활 근로대', 일명 '재건대'를 결성했고, 1981년 분산 정책으로 약 45명의 대원들에 의해 트럭에 실려 허허벌판 양재천 옆 지금의 마을 부지로 강제 이주당했다. 사람들은 장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진흙탕 속에서 땅을 개간하고 얼기설기 판자집을 지어 마을을 형성하고 '재건마을'이라 이름 붙였다.

주민들은 구청 공무원과 경찰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으며 살아왔다. 범죄 특별 단속 기간에는 실적을 세우고자 하는 형사들에 의해 무작위로 끌려가 난데없이 절도범으로 둔갑됐고, 88올림픽 때는 '국가의 수치'라며 정부에 의해 일체 마을 밖으로 나다니지 못했다.

▲ 포이동 266번지 마을은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해 있지만 상하수도 공사도 잘 돼있지 않은 등 열악한 환경 가운데 있다. (사진 제공 CBS 김동민 PD) 
이러한 인권 유린 속에 살아왔지만 정부가 1988년 '자활 근로대'를 해체한 뒤 강남구청은 바뀐 행정구역 '포이동 266번지'에 이들의 주민등록을 등재하지 않았다. 돌연 시유지 불법 점유자가 되어 버린 주민들에게 구청은 토지 변상금을 부과했고, "여기가 너희들이 영원히 살 곳이다"는 명령과 함께 강제 이주당했던 주민들은 억울한 마음에 서울시, 강남구청과 싸우기 시작했다. 긴 싸움 끝에 2009년, 주민들은 그토록 원하던 '포이동 266번지' 주민등록을 인정받게 되지만 각 가정마다 부과돼 밀린 토지 변상금은 1억 원에 가깝다.

화재, 강제 철거, 그리고 겨울

지난해 6월 12일, 한 아이의 불장난으로 포이동 재건마을의 비극은 반복됐다. 소방 당국의 초기 진화 실패로 커진 화마는 96가구 중 75가구를 전소시켰다. 맨몸으로 대피한 주민들에게 남은 것은 타다 만 사진 몇 장과 화염에 녹아 버린 동전들 뿐. 주민들은 강남구청에 주거 복구를 요청했지만 구청은 뿔뿔이 임대주택으로 흩어지라고만 했고, 시민사회 단체들의 도움을 받은 주민들이 스스로 세운 가건물은 구청이 동원한 용역들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

몇 달간의 협상 끝에 52채의 가건물을 구청이 인정하고 상하수도 공사를 해 주기로 했지만, 갑자기 '새로운 정비 계획 수립 시 주민들이 협조한다'라는 각서를 요구했고 주민들이 거부하자 하루 만에 공사는 중단됐다. 파헤쳐진 땅만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는 재건마을의 주민들은 화장실, 보일러도 마음대로 못 쓰며 혹한의 겨울을 나야 할 처지. 그야말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투쟁'인 포이동 사람들.

이들의 꿈, 포이동 266번지

자활 근로대 출신으로 31년 마을의 산 증인 유도관 할아버지, 토지 변상금의 압박 때문에 부모님이 한 달 간격으로 생을 마감했던 서른 살 청년 민제 씨, 용역의 방패에 찍혀 아직도 손을 제대로 못 쓰는 배동례 할머니 등 다큐의 등장인물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마을을 떠나기 싫어요. 여기를 떠나서는 살 수 없어요."
"가난하지만 서로 부대끼고 도우며 30년을 살아왔는데, 어디로 떠나라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삶을 강제당한 이들에게, 마을을 떠나라는 것은 또 다른 강제 이주. 자신들의 터를 지켜 내는 것이 유일한 꿈인 포이동 재건마을 사람들에게는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위대한 일이다. 카메라에 담긴 한, 눈물, 웃음, 희망은 이들의 역사이고 세상을 향한 외침이다. 한 편의 다큐 프로그램이 대안을 제시하는 못 한다. 하지만 주민들의 꿈이자 또 다른 이름인 '포이동 266번지'라는 공간 안에 싹트는 작은 희망의 기운을 시청자들과 함께 발견하고자 한다.

1월 8일과 9일 낮 12시에 각각 1부와 2부가 방송되고, 10, 11일 밤 12시에 재방송된다.

김동민 / C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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