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상황> 1월호에서 정정훈 편집위원은 한국 복음주의 운동의 근본 원인으로 '87년 체제'를 꼽고 다양한 분석을 내놓았다(한국 복음주의, 혁신 없이 미래는 없다). 이 글을 읽으며 한국교회, 복음주의 운동권,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현 위기의 원인은 더 근본적임을 밝히고자 한다. 복상이나 복음주의 운동권의 위기라는 데에는 인식을 같이 하지만 그 원인이 1세대 운동 리더들의 소멸이나 그 밖의 원인 분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 문제는 한국교회의 근본적인 뿌리에 접합된 문제이다.

90년대쯤에 등장한 선교한국이나 성서한국 등의 운동들도 사실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라 신사참배 체제의 수익자들이 벌인 운동으로서의 한계 속에 있다. 한국교회에 근본 원인으로서 독특한 지형으로 형성된 일제-미 군정 군국주의 국가 동원 체제에 적응되고 포섭된 유사 기독교 국가 체제인 '신사참배 체제'의 문제 틀을 제기한다.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체제는 초기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기독교 국가 체제와 유사하다. 로마제국의 국가 종교가 된 초기 기독교는 제국의 체제에 순응하고 그 체제의 일부가 되면서 급격한 타락을 경험하게 된다. 한국교회는 국가 종교화의 과정이 제국적 불일치와 제국적 일치라고 하는 독특한 역사적 지평에서 진행되었다.

로마의 초기 기독교와는 달리 일제라는 군국주의 군사 동원 체제인 식민지 지배 제국과 선교 제국이 분리되는 '제국적 불일치'가 전개된다. 이 상황에서 기독교는 귀신을 섬기는 일제 때문에 노골적으로 국가 종교가 되지는 못하지만, 신사참배를 통해 군국주의적 군사 동원 체제에 순응하고 일제의 살아 있는 국가 신을 모신 신사에 참배함으로써 국가 종교화하면서 기독교 국가 체제-국가주의의 한 측면을 획득하게 된다.

해방 공간에서 한반도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하나 실질적으로는 기독교 국가였다. 일제에게 부일 했던 한국교회는 이제 친미주의자로 변신하면서 기독교 국가 체제의 다른 측면을 완성한다. 한국 기독교는 실질적으로 기독교 제국인 미국의 영향으로 국가 권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국가 종교화한다.

이런 현상의 대표가 기독교(감리교)도였던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다. 기독교도를 자처했던 이승만은 친일 세력들에게 면죄부를 주었고, 이 과정에서 북에서 내려온 신사참배 세력들은 친일의 면죄부와 적산을 접수하는 특혜를 받으면서 미 군정의 한반도 지배에 협조한다. 그야말로 이제는 선교 국가와 지배국이 일치하는 '제국적 일치'를 통해 로마의 기독교 국가 체제와 같이 국가주의-기독교 국가 체제에 한국교회가 순응되고 포섭되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한국교회의 신앙 왜곡 '구조'는 신사참배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금기시되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지속하고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먼저 '제국적 불일치' 구조 속에서 군국주의 군사 동원 체제인 일제에 교회가 협조하면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를 실천하고 말하는 것이 제한된 신앙의 이원론 구조가 깊숙이 교회 안에 체질화되고 내면화되었다. 한국교회의 이원론은 역사적으로 구조화된 것으로 단지 서구에서 수입된 기독교 세계관이나 이론들로만 극복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신사참배 체제'의 이해와 극복 과정이 필요하다.

두 번째로 제국적 일치의 구조 속에서 국가 권력과 노골적으로 결합한 교회의 교권주의자들을 중심으로 국가주의에 순응한 대가로 국가 권력이라는 외부의 힘으로 교회 내의 특권적 지위를 보장받는 '힘을 추구하는 권력의 악순환'이 형성되었다.

세 번째로 제국적 불일치와 일치 속에서 국가주의와 타협해 신앙의 동력을 상실한 한국교회의 신앙은 개인의 입신양명과 물질 추구를 합리화하는 체계로 변질한다. 특히 미국제 천민자본주의의 종교판인 미국제 복음주의의 영향으로 철저히 한국교회는 종교 시장화되면서 성장주의, 맘몬주의가 노골적으로 추구된다.

네 번째로 신사참배에 참여했던 교단들과 달리 저항했던 무리는 점차 '신사참배 체제'에 반성 없이 물들면서 서서히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보존했던 신앙 동력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고 있다. 이는 일부는 신앙적 우월주의와 분리주의적 색채 때문이기도 하고, 신사참배에 관철된 역사적인 구조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성찰, 대안 제시가 부족했던 탓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로 국가주의와 타협한 기독교 국가 체제 종교로서 한국교회는 반공 이념, 개발 독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면서 한국에서 자본이 성장하는 방식과 똑같이 성장한다. 하나님께 빚진 교회가 아니라 자본에 빚진 교회는 토지와 건물에 투자하고 더 큰 건물과 더 넓은 토지를 찾아 이전하는 십일조와 헌금으로 대출 빚을 열심히 갚는 자본 회전 체계의 충직한 일부가 되었다.

여섯 번째로 국가 권력과 밀착된 한국교회는 기득권화하면서 대중적인 공감대를 상실하고 있다. 이는 직접적으로 90년대 이후의 선교 위기로 찾아왔다. 대중 동원 운동의 한계는 새로운 형태의 선교한국이나 복상이나 성서한국 등의 대응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신사참배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국교회는 '한경직'을 신사참배 체제로 다시 읽어야 한다.

민주화 이후 더는 동원 체제로서 국가 종교인 기독교의 매력은 사라졌으며 국가 권력 이후에 자본 권력과 시민 권력의 대립이라는 지평 속에서 한국교회는 국가 권력에 순응한 대로 자본 권력에 친화된 모습을 그대로 노정하면서 시민사회의 깨어 있고 의식 있는 시민, 노동자, 농민, 서민들의 외면을 초래하고 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