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젊은 지성 총신대학교.' 이 학교 홈페이지에 쓰여 있는 홍보 문구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독교 지도자 및 도덕적 전문인 양성.' 이 학교의 목표다. 사당동과 양지 캠퍼스에는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는 글자를 음각한 비석이 있다. 좋은 말 다 갖고 있는 학교다.

"개혁주의 신학을 충실히 따르겠다." 예장합동 교단의 총회장이 되는 이마다 빼먹지 않고 뱉는 첫 번째 일성이다. 총회 현장에서는 '성(聖) 총회', '장자(長子) 교단'이라는 단어가 끊임없이 튀어나온다. 좋은 말 다 갖고 있는 교단이다.

교인들은 목사 명함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 일반 사회에서도 자기 사진을 명함에 넣는 경우는 영업 사원 아니면 드물다. 하물며 목사가 컬러 사진을 박고 프로필로 앞뒤 면을 꽉 채운 명함을 갖고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명함을 건네는 목사는 일단 의심하는 것이 안전하다. 컬러풀한 명함은 부실한 내면을 가리기 위한 어설픈 포장술에 불과하다. 아름다운 표현을 긁어모아 치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사람이나 훌륭한 단체임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총신과 합동이 귀에 듣기 좋은 표현들은 독식했는지 몰라도, 이들의 행태는 한 편의 3류 막장 엽기 드라마에 불과하다.

총신대에서는 학교 책임자들과 승진 대상 직원 사이에 금품이 오고 간 것이 얼마 전 들통 났다. 제보자들이 <뉴스앤조이>에 찾아온 이유는 내부에서 바로잡히리라고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비관적 전망은 금세 사실로 입증되었다. <뉴스앤조이> 기사를 읽은 총신대 학생·직원·교수들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사퇴를 요구하며 시위했다. 하지만 때마침 열린 재단 이사회와 운영 이사회는 이 사건을 다루지 않았다. 설사 이들이 자체 조사를 한다 해도 기대할 것이 없으리라는 점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돈과 그림을 준 직원은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는데, 왜 나만 갖고 그러느냐'고 억울해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교 구성원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올 것이 지금 왔다', '빙산의 일각'이라고 자조적으로 반응했다. 그만큼 인사 비리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퍼져 있는 것이다. 브로커가 시간강사에게 교수 채용을 조건으로 2억 원을 요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제안을 받은 당사자에게 사실 여부를 물었다. 신원 보호를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었다. 우리에게는 강하게 거부해 놓고는, <뉴스앤조이>가 자신을 취재했다는 사실을 바로 다음 날 한 보직 교수에게 보고했다.

이번에는 이미 세간에서 유명세를 타는 목사들을 보자. 수십억 원의 교회 재정을 빼돌린 횡령 목사는 재판을 받고 있으면서도 온갖 감투는 다 쓰고 있다. 교인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성추행 목사는 범죄 사실이 드러난 지 1년 남짓 되었는데 교회 개척 준비 모임을 하고 있다. 금권 선거로 한기총 회장직을 따낸 돈 회장 목사는 가뜩이나 누더기인 한기총을 폐기물로 만들고 있다. 한국교회 원조 세습 목사는 교회 부동산을 개인 재산으로 빼돌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름을 떨치는 이들은 모두 예장합동 소속이다.

마태복음 15장을 보면, 예수님은 이사야 29장 13절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라는 말씀을 인용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그냥 두어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했다. 학생 숫자 가장 많은 신학교, 교인 숫자 가장 많은 교단이라고 자랑하는 총신대와 합동 교단은, 예수님 말씀처럼 맹인을 인도하는 맹인이고, 이들이 함께 갈 곳은 깊은 구덩이뿐이다.

일찌감치 구덩이에 떨어져서 사라져 준다면 한국교회 정화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텐데, 그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부패는 하는데 썩지는 않는다. 방부제를 하도 많이 들이켠 덕이다. 나희덕 시인이 쓴 '부패의 힘'에서 가장 지독하게 부패한 이들의 모습을 발견한다.

벌겋게 녹슬어 있는 철문을 보며
나는 안심한다
녹슬 수 있음에 대하여

냄비 속에서 금세 곰팡이가 피어오르는 음식에
나는 안심한다
썩을 수 있음에 대하여

썩을 수 있다는 것은
아직 덜 썩었다는 얘기도 된다
가장 지독한 부패는 썩지 않는 것

부패는
자기 한계에 대한 고백이다
일종의 무릎 꿇음이다

그러나 잠시도 녹슬지 못하고
제대로 썩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방부제를 삼키는 나여
가장 안심이 안 되는 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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