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방 아이들과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IVF회원들. ⓒ뉴스앤조이 주재일

8월4일 오후 2시. '한국' 젊은이 23명이 동두천 미2사단 앞을 걸어가고 있다. 이곳은  한국인 10명만 함께 걸어가도 시위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민감한 지역. 주말을 즐기는 미군들과 기지 주변에서 경계근무 중인 한국 경찰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걷고 있는 이들은 한국기독학생회(IVF) 회원들이다. 공동체 다비타(대표 전우섭 목사)에서 1주일간의 '기지촌 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다. 이들의 발걸음에 왠지 무게가 실려 보인다. 강 건너 불같던  미군 피해자들의 처지를 눈으로 확인한 후로는 남의 일 같지 않다. 또 매춘여성,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과 나눈 진솔한 이야기들은 이들을 정죄하기만 했던 과거를 깊이 반성하게 했다.

IVF는 올해 '여름방학 의미 있는 땀 흘리기'라는 주제로 농촌 활동과 빈민촌 활동을 펼쳤다. 특히 빈민촌 활동(빈활)은 올해 처음 시행하는 프로그램으로 주위의 관심을 모았다. 보수적인 학생선교단체로 알려진 IVF가 진보적 학생운동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빈활을 감행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여겨진다. IVF는 1990년대 초반 사회참여 문제로 분열의 아픔을 경험한 이후 사회참여 활동을 기피해왔다. 10년 넘게 사회 문제에 대해 침묵해오던 IVF가 빈활, 그것도 기지촌 활동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낮에는 노동, 밤에는 토론

▲몸은 피곤해도 열띤 토론에 빠질 수는 없다. ⓒ뉴스앤조이 주재일

IVF 사회부 박찬주 간사는 IVF가 사회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전제한 뒤 "그동안 사회 참여는 간헐적이긴 하지만 지부를 통해 실천해왔다"며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사회 참여의 열의를 적극 받아 안기 위해 올해 초 사회부를 신설했다"라고 말했다. 빈활은 IVF 사회부가 정성을 쏟아 준비한 사업 가운데 하나였다. 반응도 좋았다. '낮고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을 찾는다는 빈활 광고를 내자 하루에 10건이 넘는 전화가 걸려 왔다. 20명으로 참가 인원을 제한한 터라  대학교 3·4학년 중심으로 참가자를 선정해야 할 정도였다.

▲김혜림 씨와 은비. ⓒ뉴스앤조이 주재일

IVF 회원들은 다비타에서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세미나와 토론을 하며 1주일을 보냈다. 4개 조로 나누어 3개 조는 놀이방·공부방·밭 등에서 일하고, 나머지 조는 회원들과 다비타 식구들을 위해 식사와 간식을 차렸다. 놀이방과 공부방은 기지촌 근처 아이들 30∼40명이 모이는데, 결손 가정에서 자라면서 깊은 상처를 지니고 있던 터라 사랑에 목말라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힘은 들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김혜림 씨(이화여대 3년)는 은비와 떨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웠던지 한참이나 껴안은 채 걱정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 아이들이 받는 고통에는 우리 민족의 현실이 담겨 있다. 아이의 상처가 아물어 가는 만큼 세상이 바뀌고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이들뿐 아니라 고추, 호박, 참외, 옥수수 등을 재배하고 있는 밭도 사람의 손길을 많이 필요로 했다. 1천5백여 평의 밭은 에이즈 환자들의 쉼터인 '희망나눔터' 주변에 펼쳐져 있다. 다비타 사람들에게 이 밭은 신선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지체들이 맘놓고 자활할 수 있는 전원 마을을 소망하며 밭을 구했기 때문이다. 희망이 담긴 밭이지만, IVF 회원들에게는 그저 고랑을 돋우고 김을 매느라 한판 씨름을 벌여야 하는 고생덩어리에 불과했다. 적어도 첫날은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땀 흘리는 것도 익숙해지고 왜 다비타가 전원공동체를 꿈꾸는 지도 이해할 것 같다. 식사와 간식을 준비하는 팀도 불평 한번 하지 않았다. 저마다 자신의 은사에 맞게 일하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활에 참여한 IVF회원들. 숙소로 사용했던 희망나눔터 앞에서. ⓒ뉴스앤조이 주재일

낮에는 다비타에게 도움을 주었다면 밤에는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다비타에게 배움을 얻는 시간이었다. 세미나 강사는 다비타 지체들이 돌아가면서 맡았다. 월요일에는 전우섭 목사가 미군 범죄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등을 강의하고 진 아무개 씨가 게이와 성전환자, 에이즈(AIDS)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화요일에는 이영희씨가 기지촌과 매매춘, 매춘 여성의 사회복귀 프로그램 등을 소개했다. 수요일에는 장 아무개씨가 동성애 문제를 강의했다. 목요일에는 전우섭 목사가 성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다같이 홍등가와 클럽을 방문했다. 하나같이 묵직한 주제들이었다.

IVF 회원들은 "평소 이런 문제를 대할 때 나와는 무관한 일로 치부하거나 죄라고 쉽게 규정해 왔다"라고 말했다. 게이·성전환자·매춘여성 등은 단지 죄인이고, 치료와 도움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동안 받아오던 성교육도 나만 혼전 순결을 서약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이번 세미나와 현장 탐방이 기존에 가졌던 태도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게 만들었다. 토요일 오전 빈활을 평가하는 자리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정죄하기 전에 이들의 고난에 귀를 기울였어야 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판단했던 것은 잘못이다"라고 쉽게 판단하고 정죄했던 자신을 반성했다.

세미나와 토론을 통해 청년들의 생각과 태도가 바뀐 것은 강사가 유명하거나 입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밖에서 비판하고 구경하던 자세를 바꾸어 소외된 자들의 현실에 동참하도록 도전을 준 것은 강사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이었다. 다비타에서 놀이방을 맡고 있는 이영희씨는 자원봉사자다. 진 아무개 씨는 자신이 성전환자이면서 에이즈 환자고, 장 아무개 씨도 동성애자다. 이들은 일반 교회에서는 특수한 존재들이고, 거부 대상이지만 당당하게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정상인과 비정상인을 편가르고, 정상인이 비정상인을 향해 정상이 되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라고 말했다. 강요하기 전에 비정상인이라고 배제하는 존재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다가서 보라고 권했다. 전 목사는 간음한 여인을 구해준 예수님을 언급하며 "우리는 순서가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전 목사에 따르면, 예수님은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기 이전에 죽이려는 자들로부터 여인을 보호하고 정죄함 없는 사랑을 주었지만 교회는 덮어놓고 죄를 짓지 말라고 강요만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전 목사는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교회는 약자를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정죄에 대한 깊은 반성 가져

▲정인곤 씨 ⓒ뉴스앤조이 주재일

1주일간의 프로그램이 모든 것을 바꾸지는 못한다. IVF 회원들은 "생각이 바뀐 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식성이 좋다고 자부하는 정인곤 씨(숭실대 3년)는 화요일 아침을 거르기도 했다. 평소 미숫가루를 즐겨 먹지만, 에이즈 환자인 진 아무개 씨가 타준 것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씨는 "편견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아 있다"라고 자책하면서도 "부딪쳐서 몸과 마음을 바꿔가야 새로운 신앙이 자리 잡을 것이다"라고 스스로 대안을 내놓는다.

여성에 대한 관심 때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허영미 씨(나사렛대 2년)는 "도전받는 것에 머물러선 안 된다"며 구체적인 실천을 이어갈 것을 다짐했다. 1주일간의 여정이 끝난 뒤 빈활팀 간사 최정윤 씨는 빈활의 목적을 "다비타 같은 곳에서 사역할 지체들이  많이 나오는 것"이라며 "참여한 지체들이 도전을 받고 이들과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소명을 키우는 계기가 됐다"라고 평가했다. IVF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빈활에서 얻은 도전을 사회적 실천으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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