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첫 번째 세례 받다.

내가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지난 1983년 그러니까 대학 2학년때의 일이다.  당시 나는 주변의 권유와 분위기에 떠밀려서 강남의 어느 꽤  크고 유명한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내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냥 떠밀려서 다닌 것 뿐이고 매주 출석하기 보다는 한달에 한번이나 두 번 정도 주일예배에 출석할 뿐이었다.  당시 내가 주변의 권유와 분위기에 떠밀려 교회를 다녔듯, 세례도 역시 권유와 분위기에 떠밀려 받게 되었다.  즉 나는 행정상으로는 모 교회의 세례 교인이 되었지만, 냉정히 말해서 사도신경적인 신앙고백이나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은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다.


2. 두 번째 세례를 받을 뻔 하다.

이후 1986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국의 모 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대학원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역시 신앙 없는 교회 생활은 계속되었다. 성가대에도 섰지만 내 스스로 신앙인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어떤 수련회에 떠밀려 참석한 것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그 수련회를 계기로 나는 기독교 신앙와 그리스도의 깊은 은혜에 대한 체험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나의 인생행로는 크게 바뀌었고 현재는 매일선교소식 이라고 하는 선교소식지를 온라인 상으로 발행하는 선교정보사역자로, 선교운동가로 살아가고 있다.

어쨌든 믿음이라는 것을 사실상 처음으로 갖게 되면서 어린 마음에 3년 전에 형식적인 믿음으로 받았던 세례가 영 마음에 걸렸다. 믿음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받은 세례는 진짜 세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당돌하게 목사님을 찾아다 이제 믿음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으니 다시 세례를 받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게 되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사랑 없이 결혼을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하더라도, 뒤늦게 배우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서 다시 결혼식을 할 필요가 없듯이, 굳이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해 주셨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세례를 받을 뻔 하다가 말았다.

3. 결국 두 번째 세례를 받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1989년 4월에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에 입대하여 논산훈련소에서 6주간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훈련 중 어느날 소속 소대의 기간병(현역병)들이 진중 세례가 있다며 거의 명령조로 말했다.

"기독교인들 다 나와.  전원 세례식에 참석할 것"

이건 어디까지나 명령이었다.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 군대였기에, 또 당시만해도 하늘 같이 보이던 상병 일등병들의 서슬같은 명령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세례를 받기는 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기독교인 다나와서 세례식 참석"하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라 마음 속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면서도 내 생애 두 번째 세례를 받게 되었다. 물론 많은 동료 훈련병들이 영문도 모른채 두 번째 세례를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훈련소 퇴소를 얼마 남기지 않은 때에 현역 기간병들과 훈련병들이 2인 1조가 되어 야간에 경계근무하는 요령을 배우는 차원에서 함께 보초를 서는 시간이 있었다.  새벽에 현역병들과 함께 한 시간 동안 보초를 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물어 보았다.  

"이미 사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을 강제로 또 세례를 받게 한 이유가 뭡니까?"

퇴소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이라 꽤 인간적으로도 친해져 있었던 그 병사는 이렇게 훈련소의 행정시스템을 설명해 주었다.  훈련소에서 진중세례가 있으면 훈련소 군종실은 각 연대로 "몇월 몇일 몇시에 훈련소 진중세례식을 거행할 것이니 각 훈련 연대는 훈련병들의 일정을 잘 조절하여 세례를 원하는 훈련병들이 세례식에 참가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는 내용의 업무 협조전을 보낸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세례를 원하는 훈련병'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배려해달라는 협조전이다.

그러나 이 협조전을 접수한 각 연대의 입장은 다르다. 연대에서 대대로, 대대에서 중대로, 중대에서 소대로 이 협조전의 내용이 전달되면서 "별을 두 개 단 논산훈련소장이 참석하시는 진중세례식이 썰렁해서는 안된다. 특히 다른 연대 다 나오는데 우리 연대만 몇 명 안나와서 마치 우리 연대만 훈련병들의 세례를 못받게 한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도 안되고, 혹시라도 우리 연대 때문에 소장님이 참석하시는 세례식이 썰렁한 느낌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이런 분위기는 결국 "소대별 20명 차출" "소대별 30명 이상 의무적 참석"이라는 등의 명령이 되어 최하급 단위인 소대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소대장인 중사들은 아래의 조교들인 하사와 병사들에게 반드시 인원을 채워 내보내라고 명령하게 되고, 병사들은 급한 김에 기독교인들을 모두 선발해 내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군대 특유의 상급자에 대한 충성심은 간혹 이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하는 것이다.

4. 내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비록 훈련소에서 말도 안되는 세례를 받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13년 전의 일이다.  지금도 이렇게 하는지는 나로서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지난 주 나는 국민일보와 크리스찬투데이 등 몇몇 기독교계 신문에는 "논산훈련소에서 4천 몇백 명의 훈련병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았다. 논산훈련소를 거치는 훈련병들의 60%(이 숫자는 기억을 더듬은 것이기 때문에 정확지는 않다.) 이상이 해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다."는 내용의 기사가 일제히 보도되었다.

그러고보니 이같은 기사는 교계신문에 해마다 몇 차례씩은 단골로 보도되는 기사였다. 요즘 진중세례를 받는 훈련병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를 받는지는 알수 없다.  12년 전과 같은 해괴망칙한 세례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강한 의문과 의아함이 떠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이 정체되었고 오히려 퇴보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의 탈교회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심각하다.  그런데 유독 이 넓은 대한민국 땅에서 단 한곳, 훈련소에서는 사도행전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폭발적인 부흥이 그것도 탈교회 현상이 심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왜일까???  이런 부흥의 비결이 무엇일까???  참 이상도 하다."

김 재 서 - 매일선교소식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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