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에서 도가니가 화제다. 소의 무릎 연골 부위로 만든 도가니탕이 유명한 식당 때문도 아니고 멋진 도가니 항아리를 만드는 도공 때문도 아니다.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때문이다. 이 영화가 사람들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은 영화가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둔 것이며 바로 그 사건이 한국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임을 여실히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광주 인화학교(영화에서는 무진시에 있는 자애학원으로 표현되었다)는 기독교적 정신에 따라 사회적 약자인 장애 학생들을 가르치고 삶을 가르치기 위해 설립되었다. 그런데 다른 곳이 아닌 바로 그곳에서 악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는 현재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병폐를 처절하도록 드러내고 있다. 그 학교에 새로 부임한 미술 선생인 전응섭 선생(영화 속에서는 강인호)은 12살 어린 아이가 학교 행정실장에게서 단순한 성추행 정도가 아닌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지만 학교 측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죄를 지은 사람을 응징하기보다 정의를 바로잡기 원하는 자를 오히려 비난하였다.

당시 가해자들은 실제로 실형으로 복무한 사람은 단 한 명에 불과하고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뿐 아니라 버젓이 학교로 돌아갔다는 점이 놀랍다. 그 사립학교는 가족들의 기업이었던 것이다. 5년 동안 학교가 국가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연평균 38억 원이다. 장애 학생 1인당 2,000만 원의 교육 비용과 1,000만 원의 생활 비용까지 받아갔는데 이 기간에 재단 전입금은 0원이었다고 한다. 가해자들이 미미한 처벌을 받고 다시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학교로 돌아갈 수 있는 데에는 힘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서로 돕는 침묵의 카르텔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뿐이다.

이 침묵의 카르텔 속에 기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쉽다. 영화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학교 편에 서서 정의를 절규하는 아이들을 향해 사탄의 무리라고 해 대는 장면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어째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재정 비리나 성적인 범죄를 저지른 목사의 잘못을 바로잡아 달라고 노회에 고소하면 이상하리만큼 노회가 목사의 편을 들어주는 현상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 장로라는 타이틀만 가지고 있으면 그 정치인이 풍수지리를 보든 절에 가서 합장하든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서 운세를 보든 그의 신앙적 모습에 진정성이 있는지 여부와는 아무 상관없이 더 나아가 그의 정책이 성경적 가치관에 입각한 것인지 조차 따지지 않고 무조건 밀어주는 모습이 우리에게 있다.

물론 영화 속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장애 학생들의 편에 서서 진리를 밝히려고 노력했던 사람들도 크리스천들이었다. 그러니까 도가니를 보면서 함께 분노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악한 모습과 이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것이어야지 어떤 특정 그룹에 대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경찰과 재판관이 침묵의 카르텔 속에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그중에는 정의를 갈망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소위 자신을 기독교인이라 밝히는 사람 중에서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에게 이중적인 고통을 주려는 자들도 있지만 거룩한 삶을 살려는 자들이 있었을 것이기에 광주에서 그 일이 발생했다 해서 지역 사람들을 모두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교회라는 보호막을 이용해 자신의 범죄와 악을 숨기고 싶어 하는 자들이 초대교회 시절부터 지금까지 항상 존재해 왔다. 그런데 단순히 우리 편이냐 우리 편이 아니냐, 즉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가지고 무조건 보호막을 치거나 혹은 무조건 적대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우리를 그들이 범한 죄에 동참하게 하는 것이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 왕이 죄를 범했을 때 다윗을 우리 편이라 해서 감싸지 않았다. 그는 다윗을 찾아가서 그 잘못을 지적했다. 그리고 거기서 다윗이 살아났다. 죄를 범한 자를 살리는 길은 그 범죄를 덮어 두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바로잡게 하고 회개할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그리고 만일 회개하지 않는다면 교회 내에서 제거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 시대와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던 고린도교회를 향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 밖에 있는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야 내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마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너희가 판단하지 아니하랴?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전 5:11~13)."

우리는 흔히 "목사님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니, 우리가 나설 일이 아니다"고 말하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성경은 반대로 말한다. 불신자들의 악행은 하나님이 심판하게 놔두라. 하지만 교인이라 말하는 자들의 범죄는 교회에서 철저하게 다루어서 교회의 거룩성을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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