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대천덕 신부의 영정 ⓒ뉴스앤조이 김승범
8월 10일 오전 9시 서울 성공회대성당에서는 대천덕 신부를 영원히 우리 곁에서 떠나보내는 장례미사가 열렸다. 성공회 신부로 84년의 생애를 한결같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몸소 실천한 대 신부의 장례식에는 약 1000여명이 참석,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장례식은 시종일관 숙연한 분위기 가운데 진행됐으며, 고인의 생전의 모습과 남기고 간 발자취를 회상하는 조사가 낭독될 때는 참석자 모두 눈시울을 뜨겁게 물들였다.

성공회 전례에 따른 장례식은 홍영선 베드로 신부(서울주교좌 대성당 주임사제)의 시신입당 예절, 윤환 바우로 주교(관구장, 대전교구장)의 장례미사 집전, 정철범 마태오 주교(서울교구장)의 사도예절 등 순서로 진행됐다.

설교를 맡은 오대원 목사(본명:David Ross)는 “고인은 항상 궁핍한 사람 가운데 있었고 가장 잊을 수 없는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회상하고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이어 평소 대 신부로부터 깊은 감화를 받은 제자와 지인들인 성마가 신부와 정애주씨(홍성사 대표), 고왕인 박사(전 헨리조지협회 회장), 권요셉 장로(예수원) 등은 차례로 낭독한 조사에서 고인의 성자와 같은 삶을 진솔하게 그렸다.

성마가 신부는 “신부님이 꼭 이때에 우리 곁을 떠나셔야 했습니까”라며 “고인의 삶은 어떤 말로도 제대로 표현하기 부족하다”는 말로 커다란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드러냈다. 고인과 현재인 사모의 자서전을 집필한 정애주씨는 “신부님은 45년 동안 우리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의 삶을 수고스럽게 실천했고 우리가 그 분의 삶의 증인이다”고 밝혔다.

19년전 대 신부를 만난 이후 성경적 토지관에 눈을 뜨게 된 고왕인 박사는 역시 조사에서 “고인이 별세하기 전 흰 커텐을 사이에 두고 고인과 만나는 꿈을 꾸었다”는 개인적 체험을 얘기하고 이어 “역대 대통령과 장관 국회의원을 찾아다니며 뼈에 사무치도록 성경적 토지정의를 외치던 고인의 의지는 이제 우리들에게 남겨진 귀한 유산이다”고 강조했다.

예수원 초창기부터 대 신부와 함께 생활한 권요셉 장로의 조사는 지난 5월 고인이 쓰러진 상황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 담겨 있어서 특히 참석자들의 가슴을 두드렸다. 권 장로는 “예수원 창립 37주년 기념일인 19일 전 공동체 가족들이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강강수월래를 도는 것을 바라본 신부님이 ‘먼저 쉬러 가겠다’고 말하시고 일어나시다 사고를 당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은 고인이 이 땅에 마지막 남긴 “먼저 쉬러 가겠다”는 말처럼 대 신부는 그날 이후 80여일 동안 고요하게 잠을 자다 8월 6일 우리보다 먼저 영원한 나라에 들어갔다. 나이 70이 넘어서도 손톱이 갈라지도록 몸소 토지를 일궜을 만큼 수고스럽게 살았던 대 신부의 쉼은 곧 영원한 안식을 의미했던 셈이다.

고인의 아들 대영복 신부는 조문객들에게 “아버님은 얼마전부터 안식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셨지만 언제나 여러 가지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병으로 의식이 없을 경우를 제외하고 수 많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하루도 쉬지 않으셨다”고 말하고 “하지만 이제 그 분보다 먼저 가신 형제들과 함께 푹 쉬실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장례식 후 대 신부의 목관을 실은 운구차와 버스 1대 등 조촐한 장례행렬은 화장을 위해 벽제로 행했다. 고인의 유골은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 안치된다.

사진으로 보는 고 대천덕 신부의 장례식








▲대천덕 신부 영원한 안식에 들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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