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1년 이전 기사를 검색하기 원하시면 + 버튼을 눌러 주세요.
목사에서 장로가 된 이유
한국교회 개혁은 장로 제도에서 시작되어야
  • 김북경 (kimandcynthia@hotmail.com)
  • 승인 2011.10.12 17:55

나에게 가끔 왜 목사가 장로로 변신했냐고 질문해 오는 사람들이 있다. 이에 대한 답변으로 목사와 장로에 대해서 글을 쓰기로 했다.


목사와 장로는 교회의 기둥인데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가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에 기인하고 있다고 본다. 장로교의 간단한 역사(장로 제도에 한해서)와 장로의 두 직제(가르치는 장로와 치리장로) 구분의 역사 및 관련된 성경 구절의 해석을 보고 성경적 해결책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결론은 장로는 한 종류의 장로(가르치는 장로와 치리장로)밖에 없으며, 목사와 장로가 다 동등한 장로로서 복수 지도 체제 목회를 한다면 한국교회의 안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 것이다.

장로정치의 역사와 한국장로교

간단히 말해서 초대교회에서는 성경대로 장로 제도가 있었는데 천주교가 그 제도를 폐지했던 것을 종교개혁가들(특히 칼뱅)이 부활시켰다. 칼뱅에게 사사를 받았던 존 녹스가 스코틀랜드로 돌아가 장로교를 세우면서 장로 제도를 실시하였다. 영국에서도 스코틀랜드 법의 영향을 받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장로 제도가 반영되었다. 그러던 것이 17세기에 미국으로 이민 간 청교도들이 장로교를 세우면서 장로 제도를 유지해 왔던 것이다.

이후 19세기에 미국, 캐나다, 호주 장로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착륙함으로써 한국장로교단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물려받은 미국식 장로교의 직제는 목사(가르치는 장로)와 치리장로로 구분하였는데 이것은 칼뱅이 디모데전서 5장 17절을 해석한 것을 따른 결과이다. 이 2직제 장로 제도가 한국에 정착하면서 한 장로교의 직제가 목사, 장로, 집사의 세 계급으로 확립되었던 것이다. 즉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Teaching Elder)로서 설교와 가르치는 역할, 성례 집전, 그리고 치리장로(Ruling Elder)는 치리는 하지만 목사를 도와서 치리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장로는 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목사는 외부인으로 취급을 받는다(한국교회에서는 실제로 목사가 교회 대표로 되어 있다).

이렇게 목사와 장로의 차별화가 빚은 결과는 한국장로교에 권력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한국장로교회의 많은 문제가 목사와 장로 간의 갈등에서 초래하였음을 볼 수 있다.

교회 내의 당파 정치

목사는 자기가 처음부터 개척한 교회가 아니면 외부에서 들어온 손님으로 취급받는다. 터줏대감인 장로들의 감독하에서 순종하고 살면 별 문제는 없게 된다. 그렇지 않고 목사가 어떤 수단으로든 몇몇 장로들을 끌어안아서 자기편으로 만들면 반대파 장로들과 힘겨루기 싸움이 시작된다. 이런 권력 다툼 정치는 인간이 모인 모든 단체에 보편화가 되어 있고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정당정치가 나쁜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제도하에서는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대표하는 당들이 형성되어 옥신각신하며 나라를 다스리게 되어 있다. 이 정당정치가 잘못되면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고 그 공백을 이용해 독재자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런 차원의 정치를 교회에서도 볼 수 있다. 물론 장로들이 파를 갈라서 당의 이름을 짓고 목회 방향을 주장하는 정당정치는 안 하더라도 한 목사를 놓고 장로들의 의견이 갈라지는 현상은 비일비재하다. 교회에서는 세속의 정당정치와는 다른 방법으로 의견 차이를 줄여야 한다.

당회원들의 합심 기도, 합심 성경 공부

목회는 성경적 방법으로 해야 한다. 첫째로 당회원들은 정기적으로 성경 공부를 함께하고 기도를 함께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한다(마 18:19~20).

둘째로 성령 민주주의(필자는 이 말을 교회에 도입하여 쓸 것을 제의한다) 원칙에 따라서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의견의 합의를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빌 2:1~11). 다시 말해서 성령은 믿는 모든 자에게 임하시며 말씀하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해야 한다.

셋째로 목사는 당회 '의장(Chairman)'이지 당회장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박윤선 목사 : 장로교 헌법). 목사는 당회의 의장(사회자)으로서 장로들의 의견을 모으고 도움을 청해서 목회를 해야 한다. 물론 목사는 신학 공부를 했고 성경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장로보다는 좀 더 아는 것이 많음은 사실이다. 또 기도하는 시간이 일하는 장로보다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목사가 장로보다 앞을 더 잘 내다보는 선지자로 자처하며 장로들에게 자기가 본 목회 비전을 밀어붙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목사의 생각이 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황 무오설과 다름이 없다고 하겠다. 또 설사 장로들의 생각이 비성경적이거나 세속적이라 하더라도 오래 참고 말씀으로 가르치는 덕이 필요하다. 일을 빨리 효과적으로 진행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장로)을 살리는 것이다.

치리장로 제도는 성경적인가

목사(가르치는 장로)와 치리장로를 한 직제로 보고 모든 장로가 동등한 지위에서 협동하면 목사와 장로  간에 갈등이 줄어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론이 성경적인가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에스라의 이진섭 교수에 의하면 장로를 가르치는 장로(목사 : Teaching Elder)와 치리장로(Ruling Elder)로 구분한 칼뱅의 디모데전서 5장 17절의 해석에 오류가 있다. 이 외에 칼빈의 고린도전서 12장 28절과 로마서 12장 8절의 해석도 치리장로를 정당화하기에는 빈약하다(이에 대한 자세한 토론은 이진섭 교수의 논문 <치리장로 제도는 성경적인가?>(에스라의 <성경과 교회> 제5권 1호, 2007) 참조).

이진섭 교수의 논문의 중요 내용은 성경이 교회의 장로를 한 가지 직제로 말하고 있고 모든 장로는 가르치고 다스리는(치리) 장로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이진섭 교수의 해석이 옳다면 (필자는 그렇다고 믿고 필자가 속한 국제장로교(International Presbyterian Church)에서는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한 종류의 장로들이 복수 지도 체제(당회)를 이루어서 교회를 다스린다면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모든 목사와 장로들은 평등한 지위에서 일하고(국제장로교 헌법에는 '목사가 장로보다 높은 지위에 있지 않다'고 못을 박아 놓고 있다) 하는 일도 같기 때문에 목사와 장로들 간의 알력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한국장로교의 세 개의 직제(목사·장로·집사)를 두 개의 직제(장로·집사)로 바꿀 수 있는가?

첫째로 위에 언급한 성경적 장로 제도를 이해하고 실천하려는 의지가 교단 차원에서 있어야 할 것이다. 예로서 통합 교단에서는 장로를 총회 부회장으로 세우고 있는데 이것을 첫걸음으로 삼아서 장로들의 승격을 더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둘째로 유교식의 위계 의식을 버려야 한다. 유교가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필자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복음으로 이런 사상을 깨야 한다. 특히 유교의 가부장적 전통이 교회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성령적 민주주의(은사의 다양성과 사랑의 연합성)가 실천되기 어렵다고 본다. 이 가부장적 전통과 군사정권 시대의 일인 독재 사상이 야합하여 한국 사회와 교회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목사에게 협조해서 다스리는 것만 해 오던 치리장로들을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성경적 본분을 다할 수 있도록 승격시킬 수 있는가?

낮은 데로 임하소서

이것은 우선 목사들이 낮은 데로 임해서 치리장로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할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통합에서는 치리장로를 승격시켜서 총회 부회장으로 세우고는 있지만 아직 강도 권이나 성례 집전권을 주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는 것을 느낀다.

목사들에게 낮은 자리로 내려오라고 하면 이미 장로보다 낮은 자리에 앉아 있다고 한탄한다. 장로들에게 외부 손님으로 취급받고 장로들의 간섭에 목회를 못해 먹겠다고 불평한다. 이런 생각은 자기 맘대로(대개는 성령의 지시라고 주장하지만) 해 보겠다는 데 기인한다. 목사는 다른 성도들, 특히 장로들에게도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성령은 목사의 전매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로서 국제장로교의 목사·장로 안수식의 서약 중, "당신은 주님 안에서(성경 말씀에 근거해서) 성도들에게 순종할 것을 약속합니까?"라는 질문이 있다. 다시 말해서 목사와 장로가 서로 순종하고 성도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는 순종해야 한다는 말이다.

목사(가르치는 장로)의 지위

여기서 장로로서 장로들에게 한마디 해야겠다. 목사가 외부인이라는 말에는 설명이 필요하다. 목사는 어디서 마음대로 굴러 들어온 돌이 아니다. 목사는 노회의 승인을 받고 노회원의 자격으로 지교회에 파송된 장로이다. 그래서 목사는 외부에서 오지만 같은 교단의 노회에 속한 목사로서 일단 지교회에 청빙을 받으면 지교회의 회원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가르치는 장로)는 세 개의 모자를 쓰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노회원이요 교회 식구 중의 한 사람이요 당회원이라는 모자이다.

지교회에서 선출한 장로도 노회에서 승인받고 노회원으로서 지교회에서 시무한다. 그래서 외부에서 오는 장로나 지교회에서 선출된 장로는 그 경로는 다르지만 둘 다 노회원으로서 지교회에서 시무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사와 장로는 같은 편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노회는 지교회의 상위 기관으로서 지교회 위에 군림하고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목사만을 보호하고 또 지교회에서 회비만 각출해 가는 기관이 아니다. 노회는 지교회를 위해서 존재하고 노회원은 합심해서 지교회를 위해서 걱정하고 돕는 일을 하는 기관이다. 그렇다면 소위 교회를 대표한다는 치리장로는 자기 교회의 이익을 위해서 노회에 나가는 것이 아니고(국회의원이 자기 선거구의 이익을 위해서 국회에서 대표하듯이) 오직 교회 전체를 위해서 형제 장로(목사를 포함)와 협동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예로서 국제장로교에서는 모든 장로(목사와 장로)를 '장로'라고 부르고 전임으로 일하는 장로를 '목사'라고 부른다. 파트(타임) 장로를 치리장로(Ruling Elder)로 부르지만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이지 모든 장로가 같이 설교하고 성례전을 집전하고 치리도 같이 한다. 또 (치리)장로가 전임 장로(목사)가 될 수 있고 목사가 은퇴하면 다시 '장로'라고 불리며 장로로 시무할 수 있다.

필자가 25년간 목회를 하고 은퇴한 후에 영국 IPC교회에서 파트 장로로 시무하고 있고 목사가 하는 모든 일(설교, 성만찬 집전, 세례식, 권징, 치리)을 같이 하면서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단 다른 장로와 다른 점은 내가 목사로 일하는 동안 파트 장로들은 돈을 벌어 돈 있는 장로인데 비해서 나는 돈 없는 장로가 된 것뿐이다.

이 시점에서 국제장로교에서 한 종류의 장로만을 고집하면서 '목사'와 '치리장로'라는 명칭을 구별해서 사용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라는 항의에 대해서 설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같은 장로지만 다른 두 경로를 통해서 노회에 오는 장로들을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적당한 명칭을 찾고 있는 중인데 독자 중에서 한 종류의 장로를 명명하면서도 두 장로를 구분 할 수 있는 명칭이 있다면 알려 주기 바란다.

장로의 훈련

그러면 현 장로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서 가르치고 치리하는 장로로 승격시킬 것인가?

여기서 가르친다는 말은 공중 예배에서 설교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교회 주일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은사와 자기의 믿음을 성경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여 전도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교회에서 생각하는 현 장로들의 자격 기준은 대개 사업가들, 교수들,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다. 목사를 도와서 교회의 행정만을 하는 장로로 보기 때문에 장로를 선출할 때 가르치는 은사는 고려하지 않는다(딤전 3:2). 앞으로 목사와 동역하는 장로 후보자들은 성경을 해석하고 또 가르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렇다고 장로들도 신학교에 가야 하는가? 아니다. 교회에서 성경과 신학을 배울 수 있다. 국제장로교에는 영국노회와 한국노회가 있는데 영국노회는 목사나 장로가 신학교를 졸업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그 예로 IPC영국노회 중에 신학교를 안 나온 목사가 있다. 그러나 IPC한국노회는 목사의 자격을 신학교 졸업으로 규정짓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에 있는 국제장로교의 장래를 내다보고 정한 것이다.

영국 속담에 "적을 이길 수 없으면 적과 한편이 되라"는 말이 있다. 목사와 장로가 언제까지 적대시하고 싸울 것인가? 장로에게 혼난 목사들은 교회를 새로 개척하면서 장로를 아예 세우지 않는 우를 범하는 예를 종종 본다. 더러운 목욕물을 버리면서 귀한 아기도 버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을 자기 편의를 위해서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개인적으로 손해며 하나님의 교회에 손해인가?

한국(장로)교회의 개혁은 장로 제도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목사와 장로는 우선 성경에서 말하는 장로 제도를 배우고 교단 차원에서 제도를 시정해 나가야 한다. 동시에 교단 차원에서 '장로 계속 교육 과정'을 만들어 기존 장로와 새로 될 장로들을 성경과 신학으로 교육시켜야 한다.

수백 년의 유교 사상과 100여 년의 한국장로교의 세 직분 제도(목사·장로·집사)를 하루아침에 개혁할 수는 없을지라도 의지만 있다면 하나님의 도움으로 점진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의 어느 작은 교회는 목사 없이 장로들만 모여 당회를 이루어 목회를 잘하고 있다. 목사를 초청해도 오래가지 못해서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장로들과 동역을 하지 못하고 자기가 목사로서 자기의 비전대로 목회를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양에는 '형제의 모임(Brethren church)이라는 교회가 있는데 장로 단이 목회하는 교회다. 이 교회는 봉급을 주어야 하는 목사가 없기 때문에 한때는 선교사를 제일 많이 보내는 교단이었다고 한다. 국제장로교 헌법에는 '목사가 없어도 교회가 살 수 있지만 (전임)목사가 있는 것이 교회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는 조항이 있다.

하나님이 한국을 사랑하셔서 목사와 선교사를 많이 배출한 것으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목사와 장로 간의 다툼으로 차 버리지 않도록 목사와 장로가 협동 목회를 아름답게 해 나간다면 한국교회도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김북경 / 국제장로교 영국교회 장로


뉴스앤조이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제작됩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or.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

line '기독교'란 명칭의 허구성 '기독교'란 명칭의 허구성
line 이원론적 사고와 일반 은혜 이원론적 사고와 일반 은혜
line 목사는 CEO가 아니다 목사는 CEO가 아니다
line 목사는 왕이 아니다 목사는 왕이 아니다

추천기사

line 권력과 주도권을 포기할수록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권력과 주도권을 포기할수록 교회는 교회다워집니다
line 그리스도교 신앙의 샘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길잡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샘을 향해 떠나는 순례의 길잡이
line 예장합동, 여성 목사 안수 허하라 예장합동, 여성 목사 안수 허하라
기사 댓글 9
  • 오, 무지개 2011-10-29 10:12:14

    .
    김북경 님, 님에 대한 호칭으로 "목사님"이란 직분을 쓰고 싶지만, "장로"라 하시니, 호칭을 '장로님'으로 쓰고 싶습니다. 그러나 김북경 님에게 '장로님'이라는 호칭을 쓰는 일이 무척 거북합니다. 평신도로서 저는 장로님을 제 부모님처럼 제 윗분으로 존경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북경 님의 글을 읽고 나니, 김북경 님에 대한 존경하는 마음이 없는 까닭으로 그냥 '님'으로 쓰겠습니다.

    김북경 님, [뉴스앤조이]가 주장하는 교회개혁의 실체를 아십니까? 이 실체를 아시려면 '[뉴스앤조이]가 성경의 권위에 관심이 있는가'를 살피시면 아실 것입니다. 특히 '[뉴스앤조이]가 참 하나님이시자 참 사람이신 분으로서 예수님을 인정하는가'를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이 두 가지를 살피시면서, '교회제도를 개혁하면 교회가 개혁되는가, 사회제도가 개혁이 되면 사람도 바뀌는가'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바꿔 말씀 드리자면, 개혁(장로) 교회가 가르치는 교회 직분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임을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아래 '복음의 시작' 님 댓글에 동의하며 짧게 댓글 남깁니다.   삭제

    • 진wls 2011-10-21 23:58:32

      3. 한가지 덧붙인다면 칼빈이 기준이거나 교회의 본질적 존재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한 어쩌다 한국교회가 장로교회 주도가 되어서이지 세계 어딜가도 장로교회는 한국만큼 많지 않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모르는 한국교인들을 착각에 빠지게하는 죄를 범치 않길 바랍니다. 문제는 신학의 무지가 이같은 윗글을 쓰게한다고 봅니다.신학자는 적어도 목사들의 스승이 되야하지만 교회역시 돈이 중심되어 장로들이 자기 교회 물량적 부흥을 위해 미디어 방송에 막대한 헌금을 쏫아 붓는데 동조해 왔고 신학자들의 강의는 거의 없습니다. 무작정교수라는 분들이 신학자입니까? 그것도 목회하는 교수라는 분들이 진정한 신학자 입니까?묻고 십습니다. 눈을 가리고 입을막고 숫자많은 교회 장로목사 다수의 횡포 물량 즉 돈의 횡포가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음을 모르시는지요?   삭제

      • 진wls 2011-10-21 23:52:23

        만일 그것을 원한다면 1. 목사되려는 분들은 결혼도 하지 마시고 온전히 수도원 같은 제도를 만들고 평생을 거기에 바치며 안식년을 기준하여 전국교회를 돌아가며 목회하시고 안식년에는 개척을 하는 기간을 만들어 온전히 주님께 그 자신을 바친 것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2. 치리를 하겠다는 장로는 자기 성도에게는 물론이거니와 그외의 타 검증 기관을 통해 검증자료와 실제 자료를 제시한후 일정 교육기간을 수고원 같은 곳에서 시행하여 그들 자신 또한 주님께 드려진자들임을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정치력 재정력등의 표피적인 인정심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그것도 그 교회 목사의 비호아래 세워진 그간에는 장사치 부류 장로들이 즐비한데 하나님의 교회를 이들에게 맞겨요? 차라리 그래도 헌신한 목사님들이 주도함이 바르지 않을까 하는 맘 절실합니다. 목사님들은 그래도 믿을 수 잇어도 장로 그들을 어찌 믿나요+ 어디서 무슨 짓읋 하고 다니는지 누가 알 도리도 없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오늘 사회 문제화 되는 목사에 비하면 드러나질 않는 장로들의 문제는 막대합니다. 똥묻은자들이 겨뭍은 자들을 뭐가 어쩌구저쩌구하는 행태는 비소롭습니다.   삭제

        • 진wls 2011-10-21 23:43:34

          윗글을 작성하신 담크신분에게 드립니다. 저는 일반 신자로써 그간 한국교회의 오가는 기류를 알만큼 알기에 님의 글에 느끼며 씁니다. 분명히 아셔야할 것은 가르치는(교육)장로든 치리장로든 적어도 국회의원정도의 그것도 그들만큼 전국적인 삶의 검증을 가진분들이 몇이나 되는지 묻고 싶습니다. 특히 치리장로를 자처하시는 님들 썩은 세상에서 거의가 경재에 손을 대시며 어떻게 살아왔는지 ㅇ날바 없는 분들이 감히 장로??? 그것도 위의 글대로라면 목사님들에 의해 거의가 좌우되어 장로된분들이 감히 장로를 자처합니까? 만일 그리되는 날 한국교회는 끝장이 나리라 보여집니다.너무도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할것못할것 다해보고 익어진 분들...이들에게서 최소의 양심과 영성을 기대할 수 잇는 한국교회 실정인가요? 칼빈이 주장하던 시대는 아직 문명과 문화에 눈먼 시대엿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삭제

          • 복음의시작 2011-10-19 23:03:08

            딤전 5:17은 단편적 견해가 아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 많은 곳에서 같은 견해를 말하기 때문이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엡4:11, 롬 12:3-13, 갈 6:6, 히 13:7 등이다.

            우선 딤전 5:17은 18절과 관계가 있다. 치리장로와 목사장로를 존경하되 목사장로를 더욱 존경하라는 것은 단순히 more의 비교급이 아니라 best of best의 최상급으로 말한다. 바울은 한 절이라도 전체의 원리에서 벗어나게 말하지를 않는다.

            만일 김장로님의 견해대로라면 딤전 5:18처럼 치리장로도 교회에서 목사장로처럼 사례를 받아야 한다. 일하는 자에게 삯을 주는 것이 상식이요, 일반이기 때문이다. 구약의 레위지파 제사장들에게 성전을 봉사하기 때문에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린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엡4:11의 말씀사역자들은 치리장로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심은 말씀을 가르치는 은사자들을 주심이고, 이들로부터 배워 성도가 온전케 된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서도 치리장로와 다르게 언급하고 있다.

            서로 불화하니까 '한 종류'가 되는 것이 좋을런지 몰라도 이건 엄연히 서로의 은사를 침범하는 것이다. 사도들도 일곱 집사를 세운 이유이다. 로마서 12장의 여러 다른 은사들을 나열하며 '믿음의 분수'를 말하는 것은 다름 속에서 유기적 연합을 사랑으로 하나가 되라는 뜻이다. 엄연히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라고 분리하지 서로 '한 종류'로 묶지 않았다.

            몸에서 팔과 손의 역할이 다르다. 서로 다름을 통해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근데 김장로님의 견해는 팔과 손을 하나로 묶어 지내자는 것과 같다. 또한 가정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은사가 다른데 이것 또한 겸하자는 말과 같다. 그렇게 되면 몸인 교회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하게 되는 것이다.

            은사의 다름은 높고 낮음의 계급을 뜻하지 않는다. 직무가 다를 뿐이다. 교회가 진리의 기둥과 터로 세워졌고, 진리의 가르침으로 인도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다스림 보다 가르침의 은사를 더 귀하게 여기라는 것이다.

            이는 같은 몸이라도 머리가 팔이나 다리 보다 귀하게 여기는 원리와 같다.   삭제

            • 복음의시작 2011-10-18 18:53:41

              딤전 5:17의 해석을 간단하게 소개해 주실 수 있습니까? 왜 동일 장로가 되는지? 아울러 5:18이하는 5:17과 어떻게 연계하여 해석했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그래야 토론이 가능할 것 같아서요.   삭제

              • 찬양과 기쁨 2011-10-18 10:50:31

                온전히 성경에 근거한, 그리고 부패하기 쉬운 인간을 위한 귀한 글 감사드립니다.   삭제

                • 쉴만한 물가 2011-10-14 19:54:03

                  장로님, 홍성사 편집부 이현주입니다. 글 읽고도 댓글 한 번 쓰지 못했습니다. 저도 왜 장로님이라고 하시는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삭제

                  • Peter153 2011-10-14 19:50:06

                    장로님의 글 정말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특히 소위 대형교회-의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가 목사와 장로의 세력다툼(?)에 관한 것이고, 더구나 목사님들의 교회 사유화 내지 사조직화일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장로 사회에서도 장로님의 지적 처럼 전근대적인 유교사상과 군사독재 시절의 잔존의식으로 임직서열순을 따지면서 늦게 임직받은 자는 항상 열외가 되는 현실에 있습니다. 소생의 무지한 의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성경말씀에서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로서 먼저될 자도 있으니라고 하고 있기도 한데 그런 것은 아예 거리가 먼듯합니다. 아무튼 장로님의 권면의 말씀처럼 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 스스로가 성경중심적 사고방식으로 믿음생활을 하여야 할 것으로 봅니다. 차츰씩 좋은 방향으로 개선되어질 수 있기를 기도하여야 하겠지요. 건필을 기원드립니다.   삭제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