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직 세습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교회에 세습은 없다"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후임자를 결정했는데, 어떻게 세습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느냐고 것이다. 아들 목사의 자질이 뛰어나고, 모든 교인이 원해서 아들을 후임자로 결정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절차상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들 목사의 자질이 뛰어나다면, 아들 목사에게 개척을 시키든지, 다른 교회를 맡겼어야 했다. 그쪽이 교회를 위해서도, 아버지와 본인을 위해서도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목회경험이 일천한 40살의 젊은 목회자가 8만여명의 교인들을 영적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가능한 전제조건이 있기는 하다. 엄청난 영적 카리스마를 쥐고 있는 아버지가 뒤에서 계속 받쳐줄 때 가능한 일이다. 결국 후임자가 아니라 후계자일 때 가능한 것이다.

아무리 아들이 뛰어나다 해도 다 이뤄놓은 교회를 아들에게 맡겨서는 안된다. 스스로는 공정하게 선택했다고 해도, 남들은 선정과정에 특혜가 있었다고 생각할 테고, 결국 교회도 욕을 먹고, 아들 목사에게도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자가 새끼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듯이 뼈를 깎는 연단을 시켰어야 했다.

모든 교인이 굳이 아들 목사를 원했다는 것도 다른 측면에서 보면 씁쓸한 얘기다. 이것은 아버지 목사의 영향력이 너무 절대적이어서, 그와 비슷한 아들 목사가 아니고는 교회가 유지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다르게 표현하면 다른 후임자가 올 경우 (다른 교회에서 많이 봐왔듯이) 원로목사와 담임목사가 대립하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교회가 시끄러워질테니, 아버지 목사에게 순종할(이 예상도 충현교회에서는 깨졌지만) 아들 목사를 세우는 것이 원만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어떤 표현이든, 이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 공동체가 아니라 목회자만을 바라보는 공동체였다는 얘기가 된다.

솔직히 한국교회의 현실이 그렇지 않은가? 좀더 솔직해지자. 부르튼 손으로 연탄을 리어카에 실어 나르면서 개척한 교회다. 굶은 날이 얼마나 되며, 눈물로 지샌 밤이 얼마나 많았던가?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어렵게 세운 교회, 수십년 동안 손이 안간 곳이 없고, 발로 안 밟은 곳이 없다. 매일 계속되는 철야기도와 집회 강행군 끝에 수만명으로 늘어났는데, 한 명 한 명 내 교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데... 솔직히 누굴 주고 싶겠는가? 이같은 인간적인 고뇌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은 채 아들 목사를 후임자로 결정한 교회가 있다면, 머리숙여 사죄할 일이다.

백번 양보해서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고 해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떳떳하다고 해도, 담임목사직 세습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고 시험에 든다면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롬 14:13)

호남신대 오덕호 교수도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아무리 정당하게 결정했어도, 이는 세습입니다. 선출과정에서 특혜가 주어졌거나, 백번 양보해 정당하게 뽑혔어도 외부인에게는 세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입니다. 담임목사직 세습은 많은 사람을 시험에 빠지게 하는 잘못된 행위입니다."

섬기고 봉사하는 성직을 이어받는데, '세습'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것일 뿐, 특정인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세습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를 세습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교회세습'은 아니어도, '교회 안에서의 직위 세습', 즉 담임목사직 세습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담임목사직의 아들 승계를 '세습'(혈연에 의해 이권이 이양되는 행위)으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대형교회의 경우 아들 목사가 물려받는 권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대형교회 목회자의 경우, 책임도 크지만 누릴 수 있는 권한 또한 막강하다. 대형교회 목회자가 한 달에 받는 생활비는 얼마며, 임의로 사용할 수 있는 선교비는 또 얼마나 되겠는가? 대형교회의 경우 어림잡아 한달에 3-4천만원은 된다고 한다.

이 정도면 대형교회 목사를 아버지로 두지 못한 수많은 목사들에게 있어서는, 성골 진골도 못돼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들에게는, 소명 하나만으로 어렵게 도시 지하에서 교회를 개척한 젊은 목회자들에게는, 꿈도 꾸지 못할, 감히 상상도 못할 기득권이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담임목사직 아들 승계를, 다들 '세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길은 십자가를 지고 섬기고 봉사하며 걸어가는 고난의 길이다. 이같은 성직의 길이 권력을 상징하는 자리로, 어떻게든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물욕의 자리로, 세속적인 자리로 전락한 것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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