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재하는 신> / 앤터니 플루 지음 / 홍종락 옮김 / 청림출판 펴냄 / 224면 / 1만 3,800원
앤터니 플루의<존재하는 신>은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변론서다. 몇 해 전에 화제였던 리처드 도킨스의<만들어진 신>에 대한 반론서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는 도킨스의<이기적 유전자>를 평가하면서, 유전자란 이기적일 수도 또 이타적일 수도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은 유전자를 만들 수 있는 선택권이 없고, 결국 의식 없는 존재는 경쟁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는 어렸을 때부터 대학교의 교수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다. 비록 그의 아버지가 감리교회 목사요 성경학자였지만, 그는 유독 신에 대한 회의론을 품고 있던 자였다. 때때로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를 하거나 찬송을 불러도 전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대학 생활과 철학 교수로 생을 바치고 있는 동안에도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기독교 변증가인 C.S. 루이스의 소크라테스 클럽에서조차 <신학과 위증성>이란 논문을 그가 발표했겠는가? 그만큼 그는 C.S. 루이스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무신론을 대변하던 철학적 투사였던 것이다.

그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책들도 여럿 펴냈다. 앞서 말한 <신학과 위증성>은 악의 문제를 하나님과 결부시키기보다 인간의 자유 의지로 치부하는 신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논문이고, <신과 철학>은 종교적 체험을 가지고 초월적인 신의 존재를 추론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밝힌 글이고,<무신론 추정>은 영국 관습법의 기초가 되는 무죄 추정의 원리를 끌어들인 것으로서 신의 존재에 대한 근거의 불충분성을 입증한 논문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렇게 무신론계를 대변할 수 있는 위대한 논문을 썼던 그가 어떻게 신의 존재를 옹호하는 자로 돌변할 수 있을까? 도킨스를 비롯한 여러 무신론자들은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비난한다. 이른바 나이가 많이 들어 내세로 들어갈 때의 한계를 바라보며 신 앞에 참회했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나이 듦의 한계 때문에 신을 옹호한 게 아니었다. 여태 그가 주장해 온 무신론적 사유에 대한 지적 오류를 그 스스로 발견한 까닭이다.

"내가 무신론을 떠나게 된 것은 어떤 새로운 현상이나 논증 때문이 아니다. 지난 20년 동안 내 사고 체계 전체는 서서히 움직였고, 그것은 내가 자연의 증거를 계속해서 평가한 결과였다. 내가 마침내 신의 존재를 인정하게 된 것은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아니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소개한 소크라테스의 원리, 즉 '논증이 이끄는 대로 어디건 따라 가야 한다'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나의 패러다임이기 때문이다(102쪽)."

그가 무신론자에서 유신론자로 돌아선 직접적인 이유는 '논증의 오류'에 있었다. 나이 들어 심신이 허약해진 탓이거나, 임사 체험을 한 까닭이거나, 혹은<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이어령 씨처럼 자녀가 직면한 고통 때문에 신에게 귀휴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자연법칙이 어떻게 생기게 되었는지, 생명 현상이 어떻게 무생물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인지, 물리적인 것의 전부를 뜻하는 우주는 과연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등, 과학이 그 해답을 명쾌하게 밝혀 주지 못하는 '논증의 한계'를 그 스스로 갈파한 데 있었다.

"뇌는 당신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지만, 뇌에서 당신의 생각이 벌어지거나 '당신'이 어떤 뉴런들을 작동하게 만들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빈곤 퇴치가 좋은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는 초물리적이고(의미) 수행 면에서는 물리적인(단어와 뉴런들) 전체론적 과정이다. 이것은 초물리적이냐, 물리적이냐로 나눌 수 없다. 본질적으로 물리적이자 초물리적인 행위 주체의 나눌 수 없는 행위이기 때문이다(181쪽)."

이는 의식과 사고 현상에 관한 논의로서 인간의 뇌의 활동은 단순한 물리적인 활동 너머에 초물리적인 활동 면이 있고 그 둘은 서로 분리되지 않고 통합하여 움직인다고 기술하는 부분이다. 마치 인간이 몸과 영혼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그러한 초물리적인 것을 스스로 논증하다 보니 무신론계의 대학자로 추앙받던 그가 유신론자로 돌아섰던 것이다.

어떤가? 무신론계의 철학적 투사였던 그가 신의 옹호자로 돌아선 것에 그대는 공감할 수 있겠는가? 유전자란 이기적일 수도 혹은 이타적일 수도 없다는 그의 지적에 수긍할 수 있겠는가? 뇌의 활동은 단순한 물리적인 활동 너머에 초물리적인 활동이 있다는 그의 논증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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