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두 번째 응답, 성전과 예수님(12:5∼6)

5절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규례보다는 구약의 율법 자체에 호소한다. 즉 그는 구약 율법에서도 안식일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 성전 안에서는 제사장들이 안식일을 범하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민 28:9∼10). 그리고 6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큰 자라고 선언한다. 본 문맥에서 이 선언의 의미는 분명하다. 만일 성전이 하나님 임재의 중심으로서의 역할 때문에 안식일보다 더 큰 권위를 갖는다면, 성전의 역할을 성취하심으로써 성전 자체를 대체하시는 예수님 자신은 안식일보다 훨씬 더 큰 권위를 갖는다.

하나님의 임재가 예수님에 의해 성취되었고 이전되었다는 사상을 강력히 제시해주는 이 성전-모형론은 사실 12장의 3중적 모형론(12:6, 40∼41, 42) 가운데 하나다. 이 3중적 모형론을 통해 마태는 예수님께서 성전, 솔로몬과 같은 위대한 왕 그리고 요나와 같은 선지자보다 더 크신 분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선포하고 있다. 이 정도로 5∼6절은 단순히 제자들의 행동 선례를 예시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예수님의 권위가 성전(그리고 다윗)의 권위보다 크시며, 따라서 안식일의 권위를 능가한다는 기독론적 주장인 것이다.

예수님의 세 번째 응답, 짐이 아닌 자비(12:7)

예수님의 세 번째 응답 역시 마태복음에서만 나타난다. 호세아 6장6절로부터의 인용구인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는 요구하는 분이라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자비로운 분으로 이해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준다. 여기서 본 인용구가 예수님 자신이 성전보다 크다고 선언한 성전-모형론에 뒤이어 나온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들이 무죄한 것은 바리새인들의 안식일 규례들을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거나, 더 나아가 '옛' 의미에서의 안식일 율법 자체를 범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안식일을 성취하심으로써 '안식일의 주(主)'가 되신(8절) 자비로우신 예수님의 권위 하에서 범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과 안식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안식일 제도는 하나님께서 창조 후 일곱째 되는 날을 축복하신 가운데 암시적으로 나타난 그의 백성을 위한 영원한 안식의 계획을 반영한다(창 2:2∼3 / 출 20:8∼11 참조). 또한 이집트로부터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속적 구출 사역 역시 반영하고 있다(신 5:12∼15 참조). 이처럼 안식일은 기원에 있어서 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의 표현이었다. 이사야 1장13절에서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제도화된 안식일 회합을 미워하신다고 선언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회합들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회합들이 무의미한 이유는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행동들 때문이다(사 1:15∼17 참조).

그렇다면 우리는 안식일 제도가 그 기원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비로우심, 특히 그의 백성을 구원코자 하는 그의 자비로운 계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상은 마태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11장 28∼30절은 안식일 제도 가운데 반영된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취하신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성품'과 안식일의 궁극적 목표를 성취한 '종말론적 안식' 사이에 연관이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만일 우리의 이러한 제안이 옳다면, 7절은 이미 구약 성경을 통해 존재해 왔으며 이제 11장 28∼30절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된 사상의 흐름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한다.

7절에서 예수님은 호세아 6장6절을 인용함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원래 의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즉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제정되었으며, 짐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자비의 표현으로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 의도가 자비로우신 예수님 자신에 의해 성취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그의 권위 하에 있는 제자들은 무죄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와 의도를 바르게 이해하였고 그에 따라 행동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네 번째 응답, 안식일의 주인(12:8)

마태는 마가나 누가와 마찬가지로 본 단락의 절정으로 '인자는 안식일의 주이다'라는 선언을 제시한다. 구약 성경에서는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혹은 소유권)이 계속적으로 전제되거나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에 의해서만 유일하게 주장되었던 안식일에 대한 주권이 이제 인자(仁者)이신 예수님에 의해 주장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의 시대를 도래케 한 그리고 그의 제자들을 그들의 짐으로부터 구출하신 인자 예수님은 이제 안식일 제도를 통해 고대해 왔던 영원한 안식을 제공해주심으로써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을 성취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입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안식일 율법이 예수님에 대해 어떤 관계 하에 들어가게 되는가'이다. 이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안식일 율법의 조항들을 바리새인들처럼 단순히 문자적으로 지키는 데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고 그 안에 현존하는 종말론적 안식(=구속)을 받아들이는데 있는 것이다. 제자들은 안식일의 주님이신 메야와 함께 있기 때문에(즉 그의 성취의 영향권 하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결과 예수님께서 성취하시고 제공해주시는 안식일의 궁극적 목표였던 종말론적 안식 가운데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구약의 안식일 율법을 있는 그대로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처럼 안식일 율법의 원래적이고 근본적인 목적을 성취하심으로써 안식일 율법을 초월하신다. 예수님의 안식일 성취는 예수님의 구속이 안식일을 궁극적으로 성취하셨다는 의미에서 '연속성'의 요소와, 안식일이 예수님의 성취에 의해 초월되었다는 의미에서 '불연속성'의 요소를 공히 갖는다. 인자이신 예수님은 안식일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취하러 오셨다(5:17 참조).

이제 제자들이 무죄한 이유는 너무도 분명해졌다. 안식일에 그들이 밀밭에서 행한 행동은 결코 예수님께서 안식일을 폐한 결과가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의 안식일 성취를 인지하고 그 성취 가운데 참여한 결과인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안식일 여행으로 말미암아 제기된 질문은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주(主) 되심을 선언하는 마지막 응답에서 그 궁극적인 대답을 발견하게 된다.

양용의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

주일 문제와 관련해 양용의 교수의 글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지금 연재되는 글은 필자의 책 「예수와 안식일 그리고 주일」(이레서원 펴냄)의 내용을 <뉴스앤조이> 독자들을 위해 요약 재구성한 것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원하시는 분들은 앞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