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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헌법 개정운동 시급하다"
교회 개혁은 헌법개정운동부터 시작돼야 한다
  • 성기문 (ksung@hanmail.net)
  • 승인 2000.10.27 18:18
1. 과거를 돌아보며

한국정치사에 있어서 독재냐 반독재냐의 갈등구조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고난과 희생의 질곡의 세월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도 최근의 한국사회는 소수 선구자들의 희생과 다수의 시민들의 동참을 통하여 어느 정도는 냉전적-권위주의사회에서 민주시민사회로의 과도기적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과도기하에서 드러나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은 한국교회내에서의 부조리한 문제점들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것은 한국사회를 한국교회가 변혁시키기보다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기생(寄生)하며 영양분을 취하여 성장한 결과가 아닌가 한다. 그래도 80년대말까지는 한국기독교계의 일부 개혁과 변혁의 목소리가 살아서 한국사회의 부패를 막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다고 보겠다. 그러나 이제는 썩어빠진 한국교회가 오히려 앞서가는 민주시민사회의 도움과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도 농담처럼 떠도는 상황이다.

2. 한국교회의 현재상황

우리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한국교회의 개혁을 논할 때, 20세기후반의 격동의 한국역사 속에서 몸살을 해야만 했던 기독교인들의 논쟁거리였던, "구조의 변혁이냐 구성원의 개별적인 변화냐?"에 대한 방법론과 우선권에 대한 지루하지만 치열했던 갑론을박의 경험을 떠올려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회개혁방법론에 대한 이분론은 한국교회를 어떻게 개혁할 것이냐에 대한 논쟁에서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혹자들은 기도로 하나님께 열심히 아뢰거나 나중에 우리가 차세대지도자가 되어 한국교회를 갱신할 때까지 준비하며 기다리는 것이 더 중요하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제도개혁과 교회의 죄악을 고발하고 적극적으로 반대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구조 속에서 교회개혁세력들은 기독교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교회개혁운동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기윤실의 건강교회운동은 사안중심적인 방법론과 명제적인 교회개혁의 대안제시에 집중했다. 물론 일부담임목회자세습사건처럼 기자회견, 기도회, 항의방문, 심지어 시위라는 적극적인 방법론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운동방법론이 너무 과격하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너무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한다고 하기도 하고 목회자반대를 주목표로 삼는다고 오해하거나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운동방향이나 세부사항들을 볼 때, 치우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내외적 평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볼 때, 기독교사회운동적 측면에서의 교회개혁운동의 방법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발생하는 사건들에 그때 그때 집중적으로 대처하는 사안중심적 방법론은 시기적인 적절성과 당면문제에 대한 기민(機敏)한 반응과 적합한 대책제시라는 측면에서는 지금까지는 가장 유효한 것으로 검증되었다. 예로서 명제적인 교회개혁의 성명서나 대안제시는 한국교회의 개혁운동의 방향성제시의 측면에서는 적절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볼 때, 운동단체들이나 오래 전부터 기독교사상이나 복음과 상황 등 여러가지 대중매체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 당위성과 방법론에 대한 논의가 심도깊게 논의되었고 상당한 합의가 도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당위성과 방법론에 대한 상식과 교양이 이미 한국교회에 편만(遍滿)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그러한 사실들이 한국교회내에서 생소하고 특이한 내용으로 남아있다는 점은 아직도 한국교회개혁의 여정이 멀고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3. 교단헌법개혁운동의 필요성

이러한 상황 하에서 교단헌법개정문제가 시급하게 부상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건전한 신앙과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한국교회를 지탱하는 것이 교단헌법(신앙고백포함)이라는 법과 교인들이라고 하는 교회의 구성원들이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교단에 헌법이 있는지 교회에 규약과 규정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불행히도 기독교인들이 법을 알게 되고 후회하게 되는 것은 사건이 터지고 난 다음이다. 한국교회내에 문제가 발생하면, 성경적, 법적, 상식적인 측면에서 교회개혁을 요구하는 측과 교회개혁을 반대하는 측 사이에 지루하고 뜨거운 논쟁이 자주 있다. 예전에는 법과 신앙과 상식을 무시하는 경우가 있었으나, 요즘에는 교회개혁문제가 심각하고 꾸준한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교회개혁을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 모두 준법투쟁(遵法鬪爭?)을 강화하는 현상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내에서 개혁세력들은 법과 교단과 교회 내에서 철저하게 불이익과 외면과 질타를 당하는 쪽이다. "법대로 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는 말은 한편으로 희망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늦게 나마) 객관적인 잣대가 어떤 식으로라든지 교회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만할 수 없는 것은 "법대로 한다"는 것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법을 고의로 혹은 무지한 채로 자기합리화로 이용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교단헌법의 문제는 법조항의 오류나 모호성, 그리고 법의 해석의 자의성이나 판단착오뿐만 아니라, 한국교회헌법은 비성경적이고 비민주적이고 비상식적인 경우들도 많이 노출된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교회교단헌법이 바로 잡히고 공평하며 교회의 문제점들이 사전에 방지되고 사회법에 호소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수십년전, 심지어 수백년전에 마련된 서양적 교단헌법이 정확무오한 것으로 성수(聖守)해야하는 것으로 본다.

이것은 잘못이다. 교단헌법의 시급한 개정의 필요성은 일부 목회자들과 교회의 문제점들을 제도적으로 바로잡고 방지해야하는 것뿐만 아니라, 일부 건전한 교회들의 솔선수범과 개혁의 정신이 기존의 교단헌법과의 상충하는 것 때문에, 오히려 개혁자들이 불법적이며 비양심적인 행위자들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교단헌법은 악의적으로 무시되거나 악용되어서도 안되지만, 정당한 개정과 수정의 요구가 없고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개교회 목회자의 양심과 개혁의지에 따라 준수되거나 회피되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4. 결론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상황은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논하는 사람도 적지만, 교단헌법의 기본정신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교단헌법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더 높은 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지만, 현재는 성경보다 더 우월한 지위를 가지며 정적을 제거하거나 파벌보호차원에서 남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교단헌법과 교회규칙은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의 전유물이거나 고칠 필요도 없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라, 현대한국의 기독교신앙공동체의 신앙과 삶을 성경적이고 상황적으로 규정할 수 있고 그러한 문제와 필요를 담을 수 있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시급히 공유되어야 할 것이다.

여러 매체들과 학문적 토론과 실제적인 운동들을 통하여 지금까지 축적되어온 기독교적 상식과 교양이 어떻게 한국교회에 저변화되고 뿌리를 내릴 것인가에 대한 관심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사안별로 대처하고 연대를 하는 일과 더불어 교단헌법을 바꾸는 일에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매진해야 할 것 같다.

(본 원고는 필자가 기윤실 소식지[2002년 6월호]에 투고하였던 내용을 일부 수정보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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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 lawhelp 2002-08-01 12:41:26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곳이며, 이는 인간들에 의하여 좌우될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리고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는 말 역시 자주 듣는 말이다. 특히 교회안에서 어떤 의견의 대립이 생기는 경우 종종 목사님이나 당회원들이 일반 성도들(개혁을 원하는)에게 질타하는 방법으로 잘 사용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교회는 분명히 하나님의 영이 지배하는 곳이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결정하고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점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공통체 안에서 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건전한 안을 내어놓는 경우에도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신본주의라며 목사님이나 당회의 일방적인 견해만 하향식으로 전달 내지는 지시하고 무조건 따르라고 하는 예가 적지않은 것이 오늘 우리의 교회행정이다.(그렇지 않은 교회는 제외)

    나는 교회의 강단권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신본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종종 성부, 성자, 성령 다음으로 목사님이 존재한다는 무소불위처럼 여겨지는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교회행정의 전단이 결국 교회의 상처로 남게되고 급기야는 교단 또는 노회의 문제아로 남는 것을 종종 목격해 왔다.

    필자의 글이 너무 한쪽으로 기운 것 같은 인상을 받을런지 모르겠다. 그러나 필자 역시 교회의 중직을 맡고 있는 장로의 신분으로 글을 적는다.

    하나님의 교회는 결코 어느 한 사람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된다. 교회는 바로 공동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동체는 서로를 세워주며 서로의 사정을 돌아볼 줄 아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특히 당회와 재직들간에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항상 장립집사나 기타 성도들의 의견을 겸허히 수용할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너무 장황하게 서론을 널어놓은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오늘 조국교회의 현실은 어느 한 교회의 상황이 아니며, 여러 교회에서 이와 같은 문제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받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물론 법 이전에 상호간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rule이 있기 때문에 그 rule에 따라 일을 처리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러한 rule로 교회헌법과 헌법적 규칙을 마련해 두었으며, 나아가 권징조례들 두고 있는 것 아닐까? 맞다. 기자가 적고 있는 것 처럼 "법대로 했다"는 말이 가끔 정상적으로 처리하였구나 하는 감을 주기는 하지만, 실은 우리 법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있다. 즉 하나의 예만 든다면 전권위원회 내지는 재판국의 국원을 둘 때 목사와 장로의 수를 한번 보라. 그리고 이러한 교회헌법의 개정에 누가 더 주도권을 쥐고 있었는지? 혹시 목사님들의 안위를 위한 방어책으로 헌법적 규칙을 만든 것은 없는지...

    물론 목사님들이 목회의 전문가이신 것은 안다. 그러나 교회헌법 역시 법의 한 테두리에 있는, 말하자면 교회법이다. 신앙좋은 법률전문가의 참여는 필수적일게다.

    복음이 들어온지 100년을 훌쩍 넘긴 한국교회에, 정말 필요한 교회헌법과 부속규칙들이 개정되었으면 좋겠다. 한가지만 덧붙인다면 장로교회의 헌법 중 특히 권징조례와 관련하여 합동이나 고신보다는 통합측의 규정이 매우 현실감있게 개정되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다만 나는 통합측 교단의 성도가 아니지만...

    이번 기사를 읽으면서 우리 한번 교회의 헌법 및 부속 헌법적 규칙과 권징조례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는 심도깊게, 그리고 냉철하게 검토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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