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무엇인가를 잊고 다니는 일이 많아졌다. 휴대폰이라는 문명의 이기(利器)도 집에 놔두고 밖에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 차라리 아예 없었던 시절에는 크게 문제가 안 되었는데 있다가 없으니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평상시 걸려오는 전화 대부분이 광고성 전화이고 정말 휴대폰이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되는 전화라는 것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막상 전화기를 두고 나오니 무엇인가 중요한 전화가 올 텐데 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마음으로 불안하기 그지없다. 게다가 내가 전화를 걸고 싶어도 걸 수 없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얼마 전에도 또 휴대폰을 집에 놔둔 채 밖에 나왔다. 그래서 요즘 대세라고 하는 페이스북(Facebook)에 "또 휴대폰 집에 놓고 나왔다. ㅠ.ㅠ"라고 끼적거렸다. 그러자 교우 중에 한 사람이 내 포스트(post)에 대하여 라이크(like : 글에 대하여 '찬성' 혹은 '공감'을 나타내는 페이스북에서의 버튼)를 눌렀다. 도대체 내가 휴대폰을 집에 놔두고 나온 일이 뭐가 좋은 일이라고 라이크(like)를 눌렀을까? 그것 참 쌤통이라는 의미인지? 휴대폰 없이 온종일 고생 좀 할 테니 좋아 죽겠다는 말인지?

그러자 댓글이 달렸다. "셀폰을 저도 하루 놔두고 나갔었는데요, 첨엔 불안 불안하더니 나중엔 아주 편하더라는… ^^ 가끔 모든 그물에서 벗어나서 아날로그로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이눔의 인터넷도 한 시간이라도 안 되면 죽을 거 같지만 가끔은 없이 살아 보고픈…그런 의미에서 라이크 누른 건데… ㅠㅠ 왠지 잘못한 거 같은…으흑." 온두라스에 있는 친구 목사는 내가 '노화 현상 심화 중'이라고 놀렸다. 그리고 몇몇 다른 사람들이 내 글에 대해서 이런저런 댓글을 달아 주었다.

아마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뛰어난 모습보다는 나와 똑같이 실수하는 모습에 동감이 되나 보다. 휴대폰 잊고 나왔다는 내 글을 보면서, 라이크(like)를 누른 뜻은, "당신도 어쩔 수 없이 나와 똑같은 인간이구나…" 그런 뜻일 게다. 그리고 실수가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그만큼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가 '노화 현상 심화 중'이라는 것은 아마도 내가 나와 같이 실수하는 사람들을 그만큼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감기를 한 번도 걸려 본 적 없이 건장한 사람은 나약하고 비실비실한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언제나 일등만 하던 사람은 늘 꼴찌 하면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은 방위나 공익 요원으로 군대를 마친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점점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40을 넘기며 노안이 오기 시작하면서 왜 어른들은 안경을 벗었다가 썼다를 반복했는지 이해되기 시작했고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왜 수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양육하는 일을 버거워하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학창 시절 뜨거운 가슴으로 정부와 사회를 비판했었는데 어른이 되면 비판 의식도 사라져 버리는 모습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고 부교역자 시절에 불만스러웠던 것들은 담임목사가 되어서야 이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이런 모습을 변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예전에 어떤 관광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거기에 기념품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아주 흥미로운 기념품이 있어서 사진을 찍어 두었다. 그것은 '엄마의 법칙'이라는 것이었다. 엄마의 법칙은 이렇다. △ 만일 내가 요리하면 너는 무조건 먹어야 한다. △ 만일 내가 옷을 산다면 너는 반드시 그것을 입어야 한다. △ 만일 내가 그릇을 씻으면 너는 반드시 그것을 정리해야 한다. △ 만일 내가 집 안 청소를 한다면 너는 반드시 깨끗하게 유지해야 한다. △ 만일 내가 '이제 잠잘 시간'이라고 말하면 너는 반드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 만일 내가 '전화 끊어'라고 말을 하면' 너는 반드시 전화를 끊어야 한다. △ 만일 내가 '안 돼'라고 말한다면 너는 그 이유를 묻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그 옆에 '할머니의 법칙'이라는 것도 같이 팔고 있었다. 할머니의 법칙은 이렇다. △ 만일 내가 집에 있다면 너는 언제나 환영이란다. △ 만일 네가 배가 고프다면 뭐든지 먹어도 좋다. △ 만일 네가 무엇인가 깨트린다면 걱정하지 말라. 괜찮다. △ 만일 네가 무엇이 필요하면 내가 너에게 사 줄게. △ 만일 네가 어지럽혀 놓았다면 그저 내가 치우는 것을 도와주렴. △ 네가 떠나갈 땐 꼭 안아 주고 뽀뽀해 주렴.

우리의 삶에 엄마는 없이 할머니만 있어도 안 되겠지만, 할머니가 없는 이 세상은 참으로 삭막할 것 같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까지 여전히 모든 것이 부족하고 실수투성이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잘못 하나하나가 책망거리로 비난거리로 돌아온다면 정말 숨이 막힐 것 같다. 그래서 할머니의 넓은 품이 그리운 것이다. 내가 잘못했어도 예전에 수없이 많은 잘못을 반복하며 인생이라는 긴 시간을 걸어온 할머니의 관점에서는 다 용서되고 이해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할머니의 마음이 필요하다. 한국의 TV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은 문제가 많은 아이를 바꾸어 주는 놀라운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 프로그램은 '우리 아빠 엄마가 달라졌어요'라고 프로그램 이름을 바꾸어도 될 만큼 문제의 원인은 부모에게 있었다.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고 사랑으로 품어 주지 못하면서 잘못을 지적하고 혼내기만 하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의 행동은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에겐 할머니와 같은 따뜻한 마음이 정말 필요하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할머니의 마음처럼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예수님은 허물과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들을 그의 넓으신 품으로 초대하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만 쉬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것은 말로만의 약속이 아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가 가졌던 그 연약함을 그대로 경험하셨다고 기록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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