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참으로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하나를 꼽으라 하면 짐승과는 달리 사람은 과거로부터 반성을 하고 과거로부터 얻은 것을 축적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사람은 과거의 실수를 통해서 배우게 되고 그래서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짐승과 다르다. 물론 사람도 같은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지만 짐승에 비하면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그 능력이 뛰어나다. 짐승의 경우, 과거로부터 배우는 정도가 지극히 작다. 그래서 한번 미끼를 물었다가 죽을 뻔했던 물고기가 똑같은 낚싯밥에 걸려 나오는 경우가 많고 닭도 조금 전에 있었던 위험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다시 모이를 먹으러 다가오는 것이다.

오늘날 최첨단의 과학 문명 속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사람의 학습 능력 때문일 것이다. 습득된 지식을 이후의 세대에게 물려주어 그 위에서 다시 또 지식을 발전시킨 결과, 하늘엔 우주선이 날고 사람들의 손엔 스마트폰이 태블릿 컴퓨터가 들려 있고, 자동차에는 GPS가 장착된 문명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실수를 통해서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계속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거나 오히려 과거의 실수 때문에 미래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그 이유는 과거에 대해 진지한 분석을 하기보다는 과거의 실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에 칼럼으로 미국산 중고 자동차 때문에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그 이야기를 읽은 후배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목사님, 저는 미제 차 잘 끌고 다닙니다." 하긴 몇 년 전 그 친구가 미제 중고차를 샀을 때, 내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하고 지켜보았는데, 그 친구는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그 차를 잘 타고 있다. 모든 미제 중고차가 다 나쁜 것이 아니겠고, 일제 차 중에서도 고장 나고 속을 썩이는 차들이 있겠지만, 나의 주관적인 경험은 모든 미제 차가 다 나쁘다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든다.

하지만 문제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고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부모님은 첫아들이 결혼을 일찍 한 후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으면, 둘째 아들은 가능하면 결혼을 늦게 하라고 권유하기도 한다. 결혼을 이른 나이에 하면 반드시 결혼에 실패한다는 어떤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닌 데 말이다. 첫아들의 결혼 실패는 그가 결혼을 일찍 했다는 것에 있지 않고 문제들을 만났을 때 미숙하게 해결했다는 데 문제가 있었을 것이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아직 정신적으로 서로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찍 결혼한 것도 물론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혼을 늦게 해야만 결혼 생활이 성공적이 될 수 있다는 법칙이라는 것은 없다.

한국의 어떤 회사는 어떤 특정 지역 출신의 사람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마도 그 회사의 창업주가 그 특정 지역 출신의 사람으로부터 어려움을 당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정책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지역 출신의 사람들이 모두가 나쁜 사람들이며 신뢰할 수 없다는 법칙이라는 것도 없고 그 지역 출신이 아니면 모두가 믿을 수 있고 유능하다는 법칙이라는 것도 없다.

반면 어떤 회사는 어느 특정 학교 출신을 채용하지 않겠다는 내부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과거에 정말 뛰어난 그 학교 출신의 직원을 채용했으나 별로 유익하지 않았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학교 출신을 배제하고 다른 학교 출신들로 회사를 구성한다고 해서 회사가 잘 되리라는 법은 없다.

아쉬운 것은 교회에서도 이런 현상이 많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는 한국교회에 30대 담임목사 청빙 붐이 일어났었다. 몇몇 30대 목사님들이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교회가 성장한 것을 목격한 한국교회들은 바로 따라 하기에 들어갔었다. 하지만 몇 년 지나면서 그 문제점이 드러났고, 이제는 30대 담임목사를 모시는 교회는 없는 것 같다.

또한 몇 년 전에는 외국에서 유학을 한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는 붐이 일어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곧 사그라졌다. 이제는 아예 외국물을 먹은 사람은 후보에서 제외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미숙한 사고는 어쩔 수 없다. 문제는 사람 됨 그 자체이지, 그가 몇 살인지 혹은 공부를 얼마나 했는지, 그리고 출신 지역이 어디인지가 아닌데도, 여전히 그런 주변적인 것들만을 가지고 카테고리화하여 판단하는 어리석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LA에 있는 어떤 교회는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 1세는 안 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그 교회의 전임 목사님은 1세 목사님이었는데,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 있는 대형 교회로 청빙받아 가면서 사임했다는 사실 때문에 영향을 받은 결정이라고 한다. 결국 1.5세 목사님을 모셨는데, 1.5세 목사님이 1세 목사님보다 1세 성도들이 대다수인 교회에서 훨씬 더 사역을 잘할 것이라는 그들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들이 1.5세 목사님을 모셔 놓고,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내어 쫓았기 때문이다.

어떤 교회는 공부하는 목사님은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기도하는 목사님으로 모셨다는 교회도 보았다. 공부하는 목사님은 기도를 안 한다는 어떤 법칙이라도 있는지, 아니면 공부를 안 해야만 기도가 된다는 법칙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렇게 결정을 하고 소위 '기도하는 목사님'을 모시고 자랑하던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 목사님은 얼마 계시지 않고, 다른 문제로 결국 사임하는 것을 보았다.

어떤 교회는 XX신학교 출신 목사님은 안 된다는 원칙을 세우고, 물의를 일으켜 가면서 타 교단의 목사를 모신 교회가 있다. XX신학교 출신 목사님이 그 교회의 전임 담임목사였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사임을 해야만 했던 일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 내에서 정말 신실하게 사역하고 있는 XX신학교 출신 목사님들이 참으로 많은데, 왜 그런 원칙을 세웠는지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개인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로 잘못 생각하는 사고의 미성숙 때문이 아닐까?

지난 2007년 있었던 버지니아공대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교민들은 혹시 이 사건으로 인하여 미국 내에서 한인들에 대한 반감이 증폭되지 않을까 우려 섞인 마음으로 추이를 지켜보았다. 하지만 미국 사회에서는 범인이 싸우스 코리아 출신 영주권자라는 사실 때문에, 코리안 아메리칸에 대한 혐오감으로 발전되지는 않았다. 문제의 원인이 한국인이 미국 땅에 있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의 총기에 대한 정책이 문제임을 알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반면 몇 년 전 일본계 미국인 오노가 반칙을 하여 김동성의 메달을 빼앗아 버렸을 때, 한국에서는 반미 감정이 크게 일어났다. 이때 한국에서는 미국과 미국 사람에 대한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었다. 물론 국가의 대표로 뛰는 선수들이기 때문에, 개인 선수의 반칙이 국가 전체에 대한 감정과 연결되지 않을 수는 없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버지니아공대 사건에서 한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로 연결시키지 않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사고 체계는 아직 미성숙한 것일 수 있다.

미국도 성숙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아픔을 겪어야 했다. 흑인이라면 무시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렇게 외쳤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미국 사회도 예전에는 사람들을 피부색으로 판단하던 시대가 있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미국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람의 인격이나 능력은 피부색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이 고달픈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쉽게 판단해 버리고, 돈만 모으면 행복할 것이라고 엉뚱한 결론을 내린다. 사람들은 종종 배우자 때문에 내가 괴로운 것이라고 쉽게 판단해 버린다. 사람들은 종종 영어 실력이 달리기 때문에 내 삶이 고달프다고 쉽게 판단을 내려 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삶의 진짜 문제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성(罪性)에 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움을 추악한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죄악 된 성품 때문에 우리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그 죄의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만이 소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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