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창조주의 신성을 갖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자신이 인류의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선포하는 것을 결코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땅의 기대를 배반한 예수의 투쟁과 혁명

예수는 이 선포의 토대 위에서 창조주를 대신해 이 땅의 백성을 위한 구원 사역의 성취와 완성을 위한 삶을 살았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한 투쟁의 삶을 살아 냈던 것입니다. 그러한 예수의 삶을 두고 종교적 용어로 '공생애'라고 표현합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는 투쟁의 삶, 내적 혁명의 삶을 견디고 살아 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겪어 낸 투쟁과 혁명의 범주는 당시 제자들을 비롯하여 예수를 추종하던 무리의 관념 속에서 파생된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의 투쟁과 혁명은 달랐습니다. 예수의 투쟁은 정치적 메시아, 땅의 메시아를 향한 제자들의 끊임없는 추구와 다그침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예수의 혁명은 종교의 이름으로 권력을 쟁취한 기득권 세력을 향해 더는 혹독할 수 없는 날 선 비판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의 투쟁은 제자들과 백성의 눈, 억압받고 탄압받는 존재들에게는 명백한 모순이었습니다. 예수가 개혁의 선봉에 서서 혁명과 투쟁의 대상으로 상정한 이들은 당대 기득권 세력이었습니다.

당시 시대의 종교는 정치적 권력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들, 기득권 세력은 로마의 식민지 통치 속에서 교묘히 기생했습니다. 지배자의 비위를 맞추는 영역에서 자신들이 소유한 종교의 가르침을 볼모로 수많은 백성을 유린하고 학대했습니다. 종교의 가면을 쓴 온갖 협박과 공갈로 백성의 삶을 피폐하게 했습니다. 신에 대한 공포와 가난에 대한 퇴적된 구렁 속으로 밀어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신음의 삶은 소위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에게서 한층 구체화되었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이 대개 그러했습니다. 베드로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어부였습니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베드로의 모습과 다른 제자들 모습의 전형은 주류가 아닌 변방에서 신음하던 백성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변방이라 함은 정치·경제적 권력과 동일하게 취급되던 종교의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뜻합니다. 하지만 변방의 백성은 여전히 유대교의 범주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가혹한 모순의 억압을 잉태했으며, 바로 그 이중의 압제를 인내해야 했던 땅의 백성이 곧 변방의 모습이었습니다.

변방 백성의 눈에 비친 풍운아 예수의 풍모는 그 모습, 말 한마디, 움직임을 대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을 고동치게 했을 것입니다. 예수의 경이로울 정도로 강력한 이적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면서, 그들은 단순히 흥분하는 차원을 넘어섰습니다. 진정한 메시아의 모습을 확신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들, 변방의 백성은 욕망했습니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온갖 억압과 공포, 두려움을 잉태하는 악을 넘어선 그 두려움을 무기로 가증스러운 위선적 종교 그늘에 기생하는 타락과 부패의 사회질서를 뒤엎고 싶었던 것입니다. 또 유토피아에 가까운 새 예루살렘을 건립할 정치적이요, 실제적인 메시아의 도래를 꿈꾸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와 함께 제자들의 심장을 흥분케 하는 결정적인 또 하나의 근거가 나타났습니다. 눈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이적과 범접할 수 없는 예수의 카리스마와 함께 하면서 제자들이 갖는 확신은 무엇이었을까요. 소위 신에 대한 전능성의 확신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유대교인들에게 있어서 야훼 하나님은 이교도의 땅, 이방 잡신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일신의 위엄에 휩싸여 있는 절대적 신성이었습니다. 야훼의 초월성은 다른 어떤 야만스러운 이방 토속신앙과 미신, 허탄한 신화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임을 그들은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확신이 바로 유대교의 토대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야훼 하나님에 대한 절대에 가까운 하나의 관념이 잉태됩니다. 바로 전능성입니다. 그들은 야훼 하나님이 이 땅을 창조하셨고, 땅 위의 모든 것을 다스리고 지배할 수 있는 권세, 마음껏 땅의 것들을 요리할 수 있는 권세를 인간에게 허락하셨다는 관념을 소비했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셔서 이 땅 위에서 유일신의 전능성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바라보고 체험할 기회를 이른바 신의 계명인 율법을 통해 맛보는 길을 열어 놓았다는 관념이 유대교의 종교적 토대, 선민의식의 강화로 발전하고 기능했던 것입니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서 이른바 공생애를 전개하던 그 시대상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시대의 일그러진 모습과 함께 전능성의 관념도 형편없이 왜곡되고 있었습니다. 유일신 야훼에 대한 무한한 경외심이 낳은 결과가 폭력과 심판의 이미지로 얼룩진 폭군으로서의 전능성으로 무장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왜곡의 전형이었습니다. 이 폭력적 전능성의 두 얼굴 중 타계주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다수 종교 지도자들은 야훼 하나님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과는 별개로 이스라엘 백성의 불순종과 불신앙으로 인해 스스로 파멸을 자초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곧 율법을 철저히 지키지 못한 게으름의 결과였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원인은 수많은 백성을 채근하고 협박하는 데 더없이 적절하고 효율적인 도구로 활용되었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다. 그분은 모든 것을 능히 이루어 내실 수 있는 분이다. 하지만 그분은 또한 질투의 하나님이시다. 자신만을 경외하지 않고, 자신의 유일성에 대한 지속적인 믿음의 고백을 보이지 않을 경우 징벌하시고 이방 민족들의 웃음거리가 되게 만든다"고 종교 지도자들은 힘주어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나온 결론은 이스라엘의 식민지 생활이 백성의 종교적 무지와 게으름의 결과라고 매도하는 경향으로 나타났습니다.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같은 종교 엘리트들은 유일하신 하나님, 야훼의 왕국은 이 땅의 세속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오직 하늘만을 바라보는 선택받은 백성에게만 주어진 거룩한 천상의 왕국으로 가르치기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지독하리만치 철저한 종교의식을 준수하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유대교인이며, 특별하게 전능하신 야훼에게 선택된 존재임을 자각하는 엘리트주의(Elitism)의 강화를 종교적 수행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방 민족은 추악한 짐승이요, 멸망의 자식이요, 천하에 둘도 없는 사탄의 무리였습니다.

그 반대로 율법을 지키는 자신들은 선택받은 백성이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진설한 천상의 왕국에 참여하게 될 놀라운 영적 존재임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타계주의를 향한 그들의 중단 없는 열망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열망으로 인해 파생된 행위를 하나님 왕국에 참여하고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하고 유지, 존속하는 조건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한 행위에의 집착은 병적이라 할 만큼 율법에 대한 철저함으로 발전합니다. 폭력에 가까운 자의적 고행에 근거한 그릇된 해석을 낳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안식일 규례일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그들은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직 안식일에 전능하신 야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하지 말라"는 문자적 의미에 대한 고수만을 하나님 왕국의 참여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고 집착합니다.

하나님의 전능성을 욕되게 하는 악마적 선택

문제는 여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집착이 똬리를 틀고 앉은 괴물처럼 그들과 오늘 우리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 권력을 향한, 이 세상을 지배하는 물질주의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태도입니다.

타계주의와 엘리트 의식으로부터 비롯한 선민의식의 철저한 강화는 종교 지도자들로 하여금 드높은 도덕성의 실현을 요구합니다. 분명 세속적인 부패의 삶과는 구별된 행위를 요구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아마도 백성은 그러한 고결한 삶의 가르침을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구하기를 갈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 기득권은 그 기득권을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본래적 의미의 타계주의와 선민의식의 회복에 경도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스스로 야합하거나 철저히 모순적인 기준과 태도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기를 발휘했습니다.

당시 대제사장과 같은 성직자의 모습에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제사장직의 권위는 분명 전능하신 야훼 하나님의 절대적 신성에 의해 주어져야 할 성직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매관과 매직을 통해 얻어 낸 정치적 고려와 처세의 결과로 성직이 거래되고 있었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분명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로마 총독에게 데리고 가는 작태를 보십시오. 그들, 기득권자들은 자기네 백성을 짓누르고 억압하는 식민주의의 고통과 신음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땅의 백성의 아픔을 호소하고 동시에 하늘의 왕국을 부르짖던 풍운아 예수를 자신들을 억압하던 식민지 총독의 손에 내어 맡기는 모습은, 그야말로 그들이 부르짖던 야훼 하나님의 전능성을 욕되게 하는 악마적인 선택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선민의식과 타계주의로 하나님 왕국을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웅장한 종교의식의 늪에 빠져 호화롭고 우아한 종교 행위에 매달립니다. 동시에 그들은 경제적 부요와 정치적 자리보전까지 차지하려는 모순적인 집착의 끈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칩니다. 너무나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추진했습니다. 예수는 그들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견디다 못해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욕설을 퍼붓고야 말았습니다.

예수는 인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증스러운 종교적 위악에서 비롯한 치욕을 견디다 못한 예수는 예루살렘 성 안에서 장사하는 이들의 좌판을 둘러엎고 말았습니다. 그러한 파격을 자행하면서까지 예수는 그들의 머릿속에 썩은 오물통으로 남아 있는 전능의 관념을 깨부수려 하셨습니다. 그 관념이 파괴되지 않는 이상 더는 희망이 없는 것으로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