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예수님의 지상 재림과 시대의 변화를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고(마 24:14) 인간의 지식과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며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교통수단의 발달로 사람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예고하고 있다(단 12:4).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Many shall run to and fro, and knowledge shall increase, NKJV)."

성경은 마지막 때 대중교통의 발달과 지식(정보)의 증가와 통신의 세계적 동시성을 예언하고 있다. 전쟁이 쉴 새 없이 일어나고(마 24:6)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신앙적으로 불법과 죄악이 강성하고(마 24:12) 종교적으로도 이단과 사설이 횡행하고(마 24:12) 이때가 되면 인자가 문 밖에 이른 줄 알라(마 24:32)고 말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일찍이 문명과 사회의 미래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예측해 온 미래학자이다. 그는 지식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사회, 경제적 문화 양식과 형태를 예견했다. 그중의 하나가 '전자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이다.

앨빈 토플러는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말 대신에 육체노동이 아닌 지식과 두뇌에 의한 지능 계급 즉, '커그니타리아(cognitariat)'가 산업사회에서 큰 몫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이어서 지식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노동 문화와 계급 형태의, 망치나 농기구, 기계를 대체하는 컴퓨터를 도구로 일하게 되는 '전자 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을 예고했는데 현재의 사회적 현상을 보면 놀랍게도 일치하고 있다.

현실을 볼 때 단순노동 프롤레타리아 아니면, 지식 프롤레타리아로 크게 구분되는 노동계급의 구도화와 형성일 것이다. 노동 프롤레타리아는 자본에 포섭되어 있지만 지식 프롤레타리아는 형식적으로만 포섭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지식 프롤레타리아는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개방적이어서 지적 능력, 사회 문화적 열정과 능력이 뛰어남으로 미래의 사회변혁의 동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지식 정보화 시대에 올바른 대안, 정치 질서나 사회적 체계를, '모자이크 민주주의'라고 말하면서 전자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도 예견했는데 이미 현실화되어져 가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소셜 미디어의 출현으로 집단 지성의 역동성은 더 커져 가고 있다.

산업혁명은 자본가(부르주아)계급의 성장을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인해 자본가(부르주아적 계급)와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라는 계급의 구분이 생겼다.

정보화 시대에는 기계 기술이 지적 기술로 대체됨에 따라 정치, 사회 문화, 생활양식, 가치 기준의 급격한 변동을 맞게 된다. 과거의 노동자들은 삽이나 망치로 노동을 했고 산업사회에서는 기계를 도구로 주로 노동을 했지만 지식 정보화 시대에서는 컴퓨터가 이러한 노동의 도구를 대신하게 된다.

노동의 도구나 형태만 다르지 결국에는 노사 간의 구도는 그대로다. 마르크스가 이 시대에 방문한다면 새로운 문화나 계급의 출현을 보고  입을 다물고 그의 책들을 덮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만국의 전자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외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1864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주도로 1차 인터내셔널이 설립되게 된다. 여기에는 당시의 다양한 사회주의, 공산주의 조류가 참여하여 국제적인 연합체를 구성하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협회 규약이나 선언 등을 기초하게 된다. '공산당 선언'도 이때 만들어지게 되고 그 유명한 구호인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표어도 이때 등장하게 된다.

<승자 독식 사회>의 저자 로버트 프랭크는 "실력 차이가 크게 나지 않더라도 1등과 2등의 소득 차이는 현격하고 그 현실은 20:80의 사회를 넘어 1:99의 사회로 내닫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무한 경쟁과 양극화의 원인, 승자 독식 현상을 세계화와 그로 인한 무한 경쟁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자 프롤레타리아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뛰어난 사람들에 의해서 저질러지는 '화이트칼라 범죄'가 더욱 대두된다. 요즘 우리나라의 경우만 보더라도 국가권력이나 금융계, 특권층의 편법과 정보의 악용은 도를 넘어서 서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겨 주고 있다. 그래서 분노와 저항감을 일으키고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e)는 블루칼라 범죄(blue collar crime)에 대칭되는 개념으로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그 직업상 저지르는 범죄'를 말한다. 이 개념을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은 서덜랜드(Sutherland)이다. 한편 Tappan교수는 이는 법률적 의미의 범죄가 아니라 사회학적 의미의 범죄라고 하여 이에 반발하기도 했다. 1930~40년대 미국 대기업이 범한 위법 부당한 사례에는 거래 제한, 허위 광고, 저작권, 발명권 등에 대한 침해 리베이트의 남용, 신탁법 위반 등이 있다. 화이트칼라 범죄는 국가의 법적용에 있어서 범죄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될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범죄에 대한 사회의 반응 또한 피해 인식이 결여되거나 미온적이며 범죄자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발적 나눔과 섬김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단

본회퍼는 진정으로 윤리적인 삶은,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예수님의 권고와 일치되게 지혜와 단순성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단순성은 하나님에 대한 성실한 전심전력에서 유래하지만 지혜는 세상을 잘 알 것을 요청한다. 어떻게 이 두 가지가 결합될 수 있는가?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던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은 포로 된 자를 해방시키신다(요일 3:8). 죄에 포로 된 자(원죄, 자범죄, 조상죄), 불안과 공포에 포로 된 자(환경, 미래, 죽음), 귀신에게 포로 된 자(영적, 정신적, 도덕적), 나쁜 성품, 악한 습관으로부터 치유하여 주신다. 예수님께서는 포로 된 자들의 결박을 풀어 자유케 하시기를 원하신다(히 13:8).

예수님께서는 눌린 자를 해방시켜 자유케 하신다(행 10:38). 영적으로 눌린 자, 심적으로 눌린 자, 육체적으로 눌린 자, 제도와 차별로 인해 눌린 자들을 복음으로 해방시켜 주신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이 바로 주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할 때이다(눅 4:19). 이 희년을 선포하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다. 십자가를 지신 후에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의 해가 전파되고 있다. 모든 저주와 죄와 사망, 어두움의 권세로부터, 자원 약탈과 기회 박탈, 차별과 억압으로부터 진정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는 것이 참된 신앙이고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9장 1절~10절의 삭개오의 회심은 구원과 '경제 신학'적인 차원의 변화를 제시한다. 그는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줄 것과, 토색한 것에 대한 4배의 보상을 선언한다. 이러한 사건은 결과적으로 구원의 연속성과 연결되지만 그 과정에는 경제적 포기라는 신앙적, 경제적 결단도 따르게 된다. 소유와 포기의 결단은 우리 신앙 양심에서 매우 중요한 원칙임을 알 수 있다. 사회경제적 차별과 갈등은 개인의 신앙적 결단으로써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물질관이나 경제관도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의하여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국가권력의 강요나 강제적 분배가 아닌 가난한 자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의 실천이 필요한 것이다.

구약성경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타락과 불의한 정치, 사회를 향해 하나님의 심판과 회복을 예언한다. 당시 시대적 예언과 경고적 메시지는 부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며 백성들이 공의를 무시함이며 제사장들이 헛된 예배를 드린다고 선포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종교적 위선과 형식 종교에 대해 심판과 경고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러한 공의가 무너진 시대에 각종 절기 제사나 화목제를 거절하시고 외면하신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이렇게 선포한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물질적 소유의 차이는 사명과 비전이 기준이다. 성경은 정치인에게는 리더십, 지식인에게는 지혜와 지식을, 군인에게는 전략 전술을, 문학가에게는 지적 상상력을, 청년들에게는 비전을, 어린이에게는 꿈과 소망을, 과부와 고아들에게는 인권의 소중함을, 사업가에게는 거부의 비결을 알려 준다. 마가는 부유한 사도였고, 누가는 의사로서 사도 직분을 감당했을 정도로 다양한 모습이다.

사도바울은 특별한 경우이다. 목회자, 선교사와 같은 풀타임 사역자는 극심한 고난을 감당하고 경제적인 풍요로움의 혜택을 포기할 때도 필요하다는 것이지 꼭 가난해야 된다는 것이 성경 진리는 아니다. 그러나 복음 전파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한 헌신, 사랑의 나눔이나 섬김, 병들고 가난한 영혼들의 돌봄, 낮아짐, 희생과 헌신, 복음 전파를 위한 특권이나 자기포기, 자발적 궁핍이나 가난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결단이다.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지혜로운 분별이 필요하다. 미래를 대비하는 자가 미래를 선도하게 된다. 전도와 선교, 복음 전파와 하나님나라 확장은 이러한 시대 흐름과 직결된다. 교회 공동체나 크리스천들도 화석과 같은 과거의 이론이나 문화적 틀, 자기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안목이나 사고를 고수하다가는, 문명과 문화의 대변혁의 물결에 휩쓸려 가는 초라한 존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문화 충격! Culture shock !

황준배 / 목사·<카리스마적 리더십> 저자 (http://cafe.naver.com/jun7729191.cafe)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