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등반.(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7월15일. 맑은샘솟는학교 졸업식이 있었다. 2년의 교육 과정을 채우려면 한참 남았는데, 서둘러온 졸업식에 아이들은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모두들 방학이 주는 달콤한 해방감에 취해있는 듯하다. 저마다 자신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아우성이다. 함께 공부하던 아이들을 일렬로 줄 세우고 우열을 가리는 성적표가 아니다. 부모가 보는 아이의 성격, 함께 생활하며 개선해야 할 점들, 평소 부모님께 서운하게 생각한 일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모습, 나쁜 습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잘 할 수 있는 것 등이 성적표를 가득 메웠다. 여기에는 능력의 우열을 가리지 않고 더불어 사는 삶을 살자는 맑은샘솟는학교의 생각이 배어 있다.

선생님인 '샘지기'는 "이번 방학은 좀 길어질 것 같다"라고 말해 장내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샘지기는 항상 그런 식이다. 그때그때 다가오는 소명과 준비된 은사에 따라 행동하는 덕에 도저히 들어설 수 없는 곳에 대안학교의 깃발을 꽂았지만, 그 못 말리는 성격 때문에 이제 깃발을 내려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혼자 교육의 모든 부분을 담당해온 터라 그에게도 방학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학교가 없어진다는 것은 모인 사람들 모두 인정하고 싶지 않다.

딸 때문에 시작한 계절학교

▲거실을 교실삼아 공부하는 아이들. (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아이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샘지기는 스스로 샘에서 물을 푸는 펌프의 마중물이고 싶다고 말했다. 샘지기는 수동 펌프에서 물이 나오지 않을 때 새 물을 끌어내기 위해 위에서 한바가지 들이붓는 그 첫물이 우리말로‘마중물’이라고 설명하며, 자신도 "어린이들 속으로 사라지는 마중물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아파트촌 특유의 무관심으로 가득한 이곳에 샘물을 솟아나게 했던 고마운 마음으로 그를 마중해야 될 것 같다.

샘지기 이동준씨(41)는 딸 성경(10) 때문에 맑은샘솟는학교를 시작했다. 1997년 경기도 이천으로 이사오고 나서 친구가 없는 성경이를 위해 가족 신문을 만들어 아파트 단지에 돌렸다. 300 세대가 사는 이 아파트 단지는 성경이 또래 아이들이 많지만 모두들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다. 굳게 닫힌 현관문만큼이나 마음 문을 닫고 사는 것이 아파트 문화다. 그런데 가족 신문을 만들어 돌리고 나니 서로 자기 집 이야기도 넣어달라고 문의하고 집으로 초대도 하는 등 현관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 틈을 이용해 이씨는 성경이 또래 아이들 30여 명을 모아 글쓰기 계절학교를 열었다. YMCA에서 강사로 일하며 직접 만든 교재를 활용했다. 인근 시골 학교에서도 2∼3 차례 가르쳤던 실력인지라 부모들도 좋아했다.

수업료는 없다. 이씨는 지식에는 어떤 기득권도 발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라는 것이 본래 타인의 것이기에, 나를 거쳐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가도록 값없이 보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뭔가 남기려고 하는 순간 지식은 본질을 잃게 된다고 말한다. 이런 신념 때문에 이씨는 주위 어른들에게 아이들의 교육장을 내달라고 자신 있게 부탁한다. 어른들도 하루쯤 쉬었다 하는 셈치고 도와준다. 그래서 고구마도 키워 보고, 의사도 되어 본다. '요리의 세계'는 학부모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처음부터 대안학교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교육 환경에 관심을 갖고 모이는 이들과 함께 지역 문제를 개선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이 지역 아이들이 다니는 한내초등학교 앞에는 인도가 없을 정도로 환경이 열악했다. 당장 인도 만들기 어린이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아이들이 직접 서명서를 들고 이천시장을 만나 인도가 만들어졌다.

이씨는 아이들이 자기 고장의 좋은 전통과 무관하게 자라는 것이 안타까워 이천의 민담들을 찾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이천쌀사랑본부 이호영 실장의 도움을 받아 이천 지역 문화 유적을 답사하기도 했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과 성경을 읽으며 아이들이 어떻게 성경을 바라보는지 듣고 기록하면서 아이들에게 창의적이고 자발적인 성경 해석을 배우기도 했다. 이밖에도 어린이 아나바다 장터 개설, 이천 지역 고등학생을 위한 이천문화역사기행, 외국인 노동자에게 세계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글로벌학교 개교, 장애 아동과 함께 하는 어린이를 위한 글쓰기학교 등을 열었다.

2001년 여름계절학교를 마치며 아이들 편에 통신문 하나를 보냈다. 아이들을 위해 뛰어온 친분을 발판 삼아 '아이들에게 경쟁보다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 시작해보자'고 제안한 것이다. 건물도 없고 전문 지식도 갖추지 못했지만 신뢰만으로 10여 명의 아이가 등록했다. 이렇게 맑은샘솟는학교는 시작되었다.

▲우유팩으로 만든 개선문을 들고 뿌듯해 하는 아이들. (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우선 거실을 학교로 꾸몄다. 현관에는 아이들이 모아온 우유팩 3천 개로 '어린이 개선문'을 만들어 환경을 생각하는 학교의 정신을 밝혔다. 텔레비전이 있던 자리에는 아이들이 볼 책들을 진열하고 교육 자재들을 모아두는 서랍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소파를 치우고 그 자리에 카펫을 깔고 나니 제법 교실의 위용이 드러났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기가 어떻게 학교냐며 묻고는 했다. 그때마다 이씨는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참다운 배움과 가르침이 있으면 그것이 곧 학교다"라고 가르쳤다.

▲백족산 생태조사 (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동강탐험에 나선 아이들(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농장실습시간 (맑은샘솟는학교 제공 사진)

교과 과정은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우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그것은 자연과 어울리며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는 것으로 모아졌다. 대화로 기초를 쌓는 철학 맛보기, 마음을 다스리는 감성교육, 삶을 돌아보는 글쓰기, 전통무늬곡선 그리기, 전통놀이를 통한 공동체 훈련 등은 나에게 집중된 관심을 이웃으로 돌리는 연습이었다. 특히 매주 토요일마다 현장 학습을 통해서 내 고장 문화의 가치를 맛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은 가족이 함께 지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고 지역 생태계를 조사했다. 현장 학습은 지역 공동체의 유대에도 영향을 끼쳤다. 학부모들은 현장실습 참여 외에도 사랑방 독서모임을 가졌다. 「빠빠라기」「그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조화로운 삶」「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 등의 책을 읽고 「차라리 아이를 굶겨라」의 저자 다음을 지키는 엄마모임 회원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혼자 운영하다 보니 많이 지쳐

▲이동준 씨. ⓒ뉴스앤조이 주재일

이씨는 홀로 모든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학교를 운영해 왔다. 지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이 이제 커 가는 학교를 쉬는 이유는 아니다. 공동체 교육을 하면서도 공동체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어른의 모습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한 것이 문제였다. 딸에 대한 사랑을 이웃에 대한 관심으로 넓힌 아버지였다. 폐쇄적 공간인 아파트 현관을 열게 만든 이웃, 자녀교육 문제로 이천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대안학교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던 지역 운동가였다. 대기업에서 10년을 쌓아온 자리를 접고, 이사야 13장의 모습을 꿈꾸며 대안학교를 진행했던 돈키호테 같은 그였지만, 홀로 하는 교육운동의 한계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다른 집 아이와 경쟁해 이길 수 있는 교육을 원하는 부모의 욕망과 대형 교회의 자본이 결합해 만든 대안학교는 원하지 않는다. 참교육은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늦게 걷는 자의 걸음에 나를 맞추도록 몸을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