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고(故) 신효순(14) 심미선(14) 양이 주한미군 궤도 차량에 깔려 죽은 지 40일이 훌쩍 넘었다. 하지만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미군의 과실로 인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떻게든 이 문제를 숨기고 별 문제 아닌 것처럼 넘어가려고 한다. 정부 당국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을 이유로 복지부동이다가 시민단체의 '위험 수위'에 이른 항의에 떠밀려 최근에야 겨우 조사해 보겠다고 말한다. 정부가 미국에게 패배주의적이다 못해 굴욕적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SOFA 협상 문제나 노근리 사건, 매향리 사격장 사건 등 미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똑같이 비굴했다. 정부가 그런 만큼 미국은 더욱 당당하게 범죄를 부인했고 우리를 대화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유가족과 마을 주민들, 시민단체만이 언론의 소외 속에서도 사고를 낸 경기도 의정부 미2사단 앞에서 시위했으나, 이제는 청소년들까지 나서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미국 대통령의 공개 사과와 미군 피의자 처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이 이 문제로 들썩거리지만 유독 교회만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선지자적 소리와 행동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들이 비록 다수는 아니어도 확신에 찬 실천을 하고 있다. 그들의 활동은 교회의 사회적 소명이 무엇이며, 건강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미군 문제 발생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홍근수 목사. ⓒ뉴스앤조이 주재일
미군 문제를 비롯해 평화·통일 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으로 홍근수 목사(향린교회)를 꼽을 법하다. 홍 목사가 미군 문제에 대해 집요하게 싸우는 이유는 일종의 '부채 의식'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에 굴욕적이게 된 것에 대해 교회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또 이 문제는 해방 정국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 깊은 것이다. 홍 목사에 의하면, 미군 스스로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왔다고 선포했는데도 이승만 정권은 그들에게 충성을 바쳤다. 이승만 정권이 미국에 대해 사대주의적 경향을 보인 것은 약한 민중적 기반을 미국의 지지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감리교 장로인 이승만 대통령은 '점령국' 미국을 선한 기독교 국가로 국민들에게 주입시켰다. 교회도 '미국이 잘사는 이유는 예수를 믿기 때문이다'라는 사대적 논리를 선교에 활용하며 세를 불렸다. 그 시기에 성장했던 교회들은 지금도 주류를 이루며 한국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역사 이해 때문에 홍 목사는 미군 문제가 발생하는 현장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홍근수 목사가 역사적 인식을 통해 미군을 반대하게 되었다면, 김중곤 목사는 목회 현장에서 미군과 부딪치며 미국의 실체를 발견했다. 김중곤 목사는 군산 미군 공군기지에 둘러싸여 있는 하제마을에서 20여 년째 목회하고 있는 농촌 목회자다. 4대째 이곳에 살고 있는 군산 토박이 김 목사는 보수적인 교단 중 하나인 순복음에서 신학을 배웠고, 고향으로 돌아와 순복음갈릴리교회에서 목회하며 '영혼 구원'의 문제에만 전념해 왔다. 사회 문제에는 무관한 듯 살아오던 김 목사가 최근 군산 미군기지소음주민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아 인근 11개 마을 주민 2천여 명과 함께 서울지방법원에 주한미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중곤 목사. ⓒ뉴스앤조이 주재일
무엇이 김 목사를 미군과 싸우는 '투사'로 변하게 했을까? 그것은 김 목사의 영혼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김 목사는 복음을 전하며 끊임없이 이곳 사람들의 난폭한 반응과 만나야 했다. 처음에는 바닷가 사람들 특유의 거친 성격 탓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1999년 녹색연합이 이곳 소음을 측정한 결과, 사람들의 심성이 왜곡되고 몸이 병들어 가는 이유가 전투기의 소음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하루에도 평균 100여 차례 110dB에 달하는 소음을 듣고 살면 정상적일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이 조사를 기초로 여러 차례 당국과 미군 앞으로 탄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미군은 묵묵부답이었다. 당국에서는 관계자들을 보내 "이곳은 북한 레이더에 쉽게 걸리지 않는 천혜의 요새다" "소음 문제는 SOFA 규정에 없어 미군에 시정을 요구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 목사가 '시끄러우면 너희가 떠나라'는 당국의 태도에 절망하고 있을 때 매향리 주민들이 시민단체와 연대해 미군과 싸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특히 법정에서 승소했다는 소식은 김 목사에게 커다란 희망으로 다가왔다. 매향리 주민들이 그랬듯 김 목사도 정부 대신 시민단체와 국민들에게 군산 미군 공군기지 문제를 알렸고, 결국 변혁의 힘을 만들어냈다. 김 목사는 이 일을 계기로 미군이 한반도에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을 파괴해 왔던 역사를 꼼꼼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통해 김 목사는 영혼 구원의 문제는 미군에 의해 뒤틀려진 역사를 하나님 뜻에 맞게 돌리는 일을 배제하고 생각하기 힘든 일임을 확인했다.

이밖에도 미군 문제를 논리적이고 법적으로 접근하는 흐름도 있다. 이 가운데 김용한 집행위원장(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공동대책위원회)은 주목할 만한 사람이다. 대학에서 '역사 속의 한국과 미국'을 가르치고 있는 김 위원장은 원래 정치극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10여 년 동안 주한미군 문제와 싸워오는 동안 전공이 바뀌어 버렸다.

▲김용한 위원장. ⓒ뉴스앤조이 주재일
김 위원장은 모두가 주한미군의 철수나 이전을 외칠 때 미군기지 반환운동을 제안했다. 김 위원장에 의하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미군이 강제 점령한 사실을 지적한 것과 미군의 철수는 당연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지금 당장 국민운동으로 확산, 승화시키기 힘들다는 한계가 있다. 이전을 주장하는 것도 지역에 따라 입장이 달라 자칫 지역간 싸움으로 변할 수 있고 미군이 장기간 주둔하는 것을 묵인하는 위험을 안고 있다.

"예속 상황에서는 정상적 신앙 불가능"

그래서 김 위원장은 미군이 무상으로 쓰고 있는 땅을 돌려 받는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필리핀 등이 미군과 맺은 계약 조건들을 수집하고, SOFA의 불평등한 조항들을 연구했다. 우선 외국 경우처럼 임대 기간을 정하고 임대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위원장은 이 연구 결과를 인터넷, 신문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대중화시켰다. 또 스스로 1999년부터 매월 둘째 주 화요일이면 어김없이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SOFA 개정 촉구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매향리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이번 의정부 여중생 사망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김 위원장은 현장으로 달려가 미군의 실체와 대응방안 등을 모색하는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들 3명이 미군과 맞닥뜨린 사연은 서로 다르다. 자신이 처한 현장이나 존재의 분량도 다르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미군의 횡포에 대해서는 동일한 입장이다.  SOFA 4조에 의하면, 우리 영토·영해·영공은 무조건·무제한·무기한적으로 미군에 양도되어 있다. 홍근수 목사는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미국의 예속 국가이며, 이러한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신앙이 불가능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교회가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하다. 그래서 자꾸 신앙과 구원의 문제를 개인 내면의 문제로 축소 왜곡시키고 있다"라고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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