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와 권력의 맛을 본 솔로몬은 스스로 겸비하
고 내핍한 생활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뉴스앤조이 김승범
전 세계적으로 신·불신을 떠나서 솔로몬은 이른바 성공한 사람의 전형적인 인물로, 지혜로운 사람의 표상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그를 흠모한 나머지 솔로몬이라는 이름으로 된 브랜드나 상호들이 많다. '솔로몬 영재학원'이 있고 '솔로몬 신용정보회사'도 있고 '솔로몬 공예' '솔로몬 온돌침대' 등 솔로몬의 이름과 관련된 사이트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과연 솔로몬은 성공한 사람인가? 그렇다. 다윗이 그렇게도 짓고 싶었지만 허락되지 않았던 성전을 완공함으로써 신정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했다. 화려하고 웅장한 왕궁을 건축하므로 강력한 중앙집권의 공을 세웠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혜로운 판단과 판결로 국가의 기본 질서를 확립하며 도덕 정책의 기조를 완성했다. 강력한 리더십과 외교적 수완으로 국제 사회의 질서를 회복해 평화를 정착시켰다. 탁월한 경영 마인드로 막대한 부를 벌어들여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전국을 요새화해서 외침의 공포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했다.

그러나 솔로몬에 대한 400년 이후의 평가는 완전한 실패자였다. 본문은 바벨론 포로 말기인 BC 561∼538년 사이에 기록된 말씀으로 솔로몬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평가라고 할 수 있다.

본문을 정리해 보면 9절에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났다'는 말씀이 있다. 그리고 다음 구절을 보면 하나님 여호와를 떠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데 다른 신을 좇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를 한 것이다. 10절을 보라.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 11절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라는 말씀으로 이어진다. 이 말씀에 비추어볼 때 이스라엘 분열의 원인인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솔로몬이다. 솔로몬이 재임 기간 동안 아무리 화려한 업적을 쌓았다고 하더라도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게 하였으니 솔로몬은 실패자임에 틀림이 없다.

우상 숭배로 스스로 무너져

솔로몬의 실패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솔로몬은 실력이나 지식이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군사력이 없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외화가 없어서 망한 것도 아니다. 그는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으며 엄청난 경제적 부와 지식과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실패할 이유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클 수밖에 없다. 개인이나 국가에 있어서 진정한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역사의 주체가 누구이며 원동력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이제 솔로몬의 실패 원인을 짚어 보자. 솔로몬이 실패한 직접적인 원인은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본문에서도 분명히 밝히고 있다(10절). 그리고 또 하나를 찾는다면 언약과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이다(11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우상 숭배는 간단하게 이해된다.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상 숭배를 하나님이 가장 싫어한 것이라면 무엇이 우상인지 간단히 정리가 된다. 그러나 언약과 법도는 뭔가 복잡해 보이고 넓어 보인다. 그런데 이것도 복잡하지 않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선포(렘 9:24)에 의하면 하나님의 법도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행하는 것이다. 신약의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데, 하나님의 나라란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정리했다(롬 14:17). 그러므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언약과 법도를 행하지 못했다는 것은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가치를 그의 정책에서 구현하지 못했다는 뜻이 되며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가치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나아가 다음 질문을 해보자. 왜 솔로몬이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었으며 그리고 왜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가치를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가?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의 어마어마한 성공이 그로 하여금 우상을 섬길 수밖에 없도록 했으며,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저버리게 했다.

솔로몬은 7년 여에 걸쳐 어마어마한 규모의 성전을 완공하였다. 그리고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자신과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애굽 공주를 위한 왕궁을 건축하였다. 집권 40년 동안 절반은 대 건축 공사로 시간을 보낸 셈이다. 성전과 왕궁 공사를 위해 동원된 노동자 수가 벌목꾼이 3만 명, 채석장에서 일한 노동자만도 15만 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예 신분이었다. 도합 18만 명이 동원된 이 공사에서 이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 임명된 지휘관만 해도 3천3백 명에 달했다.

그리고 솔로몬은 전국을 요새화했다. 하닷과 르손의 반란을 제외하고는 40년 동안 평안했음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전국을 요새로 만들었다. 밀로와 게셀과 므깃도와 하솔과 같은 지역에 전략적인 도시를 건설했다. 이 공사에 동원된 인력들은 대부분 그 땅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으로 강제 동원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병사 1만2천 명과 전차 1천4백대로 특전사를 만들어서 전국의 요새에 배치하고 이 특수 부대에 필요한 군사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보급 창고를 각지에 건설했다. 그리고 그 지역 주민들로 하여금 그 창고를 채우도록 했다. 특히 솔로몬을 위한 의전 호위병을 두고 그들의 무기를 모두 금으로 장식했다.

솔로몬은 이런 국가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서 막대한 인력과 자금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에시온게벨이라는 곳에 제련소와 조선소를 설치하고 구리를 생산함과 동시에 무역선을 건조했으며, 두로의 히람의 지원한 선원들을 고용해서 아라비아 남단 오빌에까지 무역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전차와 군마를 주변 국가들에게 되팔기도 했다. 일종의 무기 무역을 한 것이다. 이 거래를 통해 엄청난 부를 획득했다.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은 외면

이와 같은 국가 시스템을 운용하는 가운데 하나님 중심 사상이라는 것은 시대에 뒤지는 낡은 사상으로 인식되었고, 새 시대에 새로운 이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더 많은 나라와 화친을 맺고 수교해서 교역량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인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었는데 많은 나라와 교역을 확대하고 외교적으로 안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략적으로 많은 이방 여인들을 정실과 소실로 끌어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이방 여인 가운데 정실이 700명, 소실이 300명이나 되었다.

이 여인들의 입장에서는 솔로몬에게 인정을 받는다면 곧 팔자를 고치는 일이기에 기를 쓰고 유혹했을 것도 뻔한 일이다. 그리고 솔로몬이 마음을 빼앗긴 여인들을 통해서 그들의 사상과 철학이 농축된 우상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상이 무엇인가? 시돈의 아스다롯(아세라)은 사랑과 성의 신이다. 그리스 아프로디테, 로마 비너스와 같은 신이다. 밀곰, 그모스는 전쟁의 신이다. 풍요와 다산과 전쟁을 상징하는 신들로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사상인 셈이다. 솔로몬에게는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시급하게 요청되었던 사상의 근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우상 숭배가 이루어졌다.

한편 솔로몬의 성공은 계급을 발생하게 했다.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라는 인간 차별을 낳게 만들었다. 특히 군벌이라는 계급을 낳게 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마저도 빼앗기고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공평과 평화가 허물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솔로몬의 성공은 과다한 조세와 부역의 부담을 낳았으며, 결국 지파간 갈등 원인이 되어 분열로 가는 기초가 되었다. 열왕기상 12장 1∼11절의 내용을 살펴보자. 여로보암이 북쪽의 열 지파 사람들과 와서 솔로몬이 부과한 과중한 세금을 감면해줄 것을 왕위 계승자인 르호보암에게 요청한다. 그러나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조언을 거부하고 젊은 측근들의 이야기만 듣고 묵살해 버린다.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여로보암이 북쪽 열 지파 사람들의 추대를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됨으로써 분열하게 된다.

솔로몬의 실패 원인은 외적 화려함, 자신을 드러냄, 우주의 중심에 서고 싶은 욕구 충족과 같은 성공을 지향했던 야심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을 좇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성도가 성공을 지향할 때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 크다. 일등을 지향하고, 거대함을 지향하고, 화려함을 지향하고, 드러냄을 지향할 때, 즉 안정과 권력을 지향할 때 사회적으로 역사적으로 치러야 할 값은 너무 크다. 지금 미국과 같은 나라가 패권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자국은 물론이고 인류 역사에 고통을 줄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하나님과 이웃 사랑이라는 정신에서 태동한 자유와 평등이라는 그들의 조상의 건국 이념을 지탱하지 못할 것이다. 실패를 눈앞에 둔 솔로몬이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권력에 사라진 '또 한 번의 기회'

우선 솔로몬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12∼13절을 보라.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살아 생전에는 심판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다. 따라서 그 아버지 다윗과 같이 순수한 믿음으로 돌아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자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마 다윗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그 날로 침상이 썩도록 통회하면서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이 종이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빼신 백성을 쪼개시다니요. 차라리 종을 쪼개시고 이 백성을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회개했을 것이며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회개하고 과거로 돌아가지 못했다.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가? 이미 쌓아 놓은 국가 시스템을 허문다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부인 1천명을 쫓아내는 것이 이미 불가능한 상태였다. 더군다나 군벌과 행정 관리들 그리고 재벌들과 같은 권력을 해산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솔로몬 개인이야 회개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전도서에 나타난 솔로몬의 고백을 보면 모든 것이 헛된 것이었으며 실패자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굳어버린 거대한 권력 계급을 해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부와 권력의 맛을 본 사람들이 스스로 겸비하고 내핍한 생활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권력이란 무서운 것이다. 부나 지위나 지식이 타자를 위하지 못하고 자신을 위하는 권력화가 되면 역사는 반드시 고통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권력화의 자리에 하나님의 나라가 설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는 개인이나 교회가 권력화하는 것을 철저히 거부하며 막아야 한다.

다윗의 국가 시스템은 철저하게 비권력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다윗은 상비군을 갖지 않았다. 전쟁이 벌어지면 하나님께 기도해서 전쟁의 참여 여부를 묻고 그때마다 모병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면 병사들은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한 번은 빈번한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자 인구 조사를 했다가 혼이 났다(삼하 24장). 그 이후로 다윗은 상비군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버렸다. 전쟁이 끝나면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으며 조직화된 군대 시스템의 이권을 독점하는 군벌도 있을 수 없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평등하고 행복했다. 결코 화려하고 거대하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경제적 부와 문화적 풍성함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

의·평강·희락 추구하는 성도 되어야

▲오세택 목사.
ⓒ뉴스앤조이 김승범
성도는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 솔로몬처럼 화려함과 거대함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다윗처럼 하나님의 언약과 명령 즉 인애와 공평과 정직이라는 거룩함을 추구할 것인가? 세상은 철저하게 안정과 권력을 위해 달려가도록 유혹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성도는 끝까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13절을 보자.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비록 솔로몬이 철저하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돌아섰지만 하나님은 그의 빼신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다시 회복하신다. 부친 다윗과 그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생각하셔서 결코 저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이다. 열왕기서의 저자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하심이었다.

오세택 / 두레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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