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집회란 복음 전도의 은사를 가진 사람(복음 전도자)들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집회를 가리키며 복음 집회를 전도 집회 또는 복음 전도 집회라고도 부른다. 지난 18세기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들 가운데에는 존 웨슬리, 조지 화이트필드, 조나단 에드워드, 찰스 스펄전, 디엘 무디, 빌리 그레이엄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유감스럽게도 빌리 그레이엄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변질된 복음 전도자가 되어 "내가 전한 복음이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전한 복음이나 같다"고 말해(<현대교회문제>, 김효성, 옛신앙, 79쪽) 전 세계 개신교 신자들을 경악케 하고 실망시켰는데 어쨌든 이들은 과거에 모두 공통적으로 '영혼 구원', 곧 '중생(거듭남)에 관한 복음'을 전했다.

초대교회 시대에(주후 51년경) 사도바울은 2차 전도 여행 중에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 처에 퍼졌으므로(살전 1:8)"라고 말했다. 이 내용에서 우리는 데살로니가에 있는 지역 교회가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폭넓게 공적인 '복음 집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지역 교회가 그 지역의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복음 집회'를 열어 복음을 전하는 것이 지역 교회의 사명이라 할 것이다(<주님의 이름아래 모임>, Norman Crawford, 기둥과 터, 151쪽).

그리고 사도행전 13장에는 안디옥 교회의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제1차 선교 여행을 위해 타 지역으로 파송하였다. 이처럼 안디옥에 있는 지역 교회는 자기네 지역을 초월해서 타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도 복음 전파를 위해 선교사들을 파송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신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각 지역 교회의 신자들은 개인적으로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대일로도 복음을 전했던 것을 볼 수 있다(행 5:42, 8:4). 이와 같이 초기 교회 시대의 거듭난 신자들은 누구든지 일대일로도 복음을 전하여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거듭난 신자들 가운데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상기와 같이 성경에 나오는 지역 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공적인 복음 집회를 열거나, 또 다른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하거나, 그리고 개인 전도를 통하여 복음을 전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서두에 언급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들도 모두 성경적인 복음 집회를 통해 복음을 전했다. 오늘날의 지역 교회도 이와 같이 성경의 모본을 따라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경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국내의 여러 개신교파들은 이 땅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에 각 지역 교회들은 어떻게 '복음 집회'를 가졌는지에 대해 알아보고, 또한 성경에 나타난 모본과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첫째,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파에서는 상술한 바와 같은 성경적인 복음 집회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비성경적인 가짜 복음 집회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파에서 행하고 있는, 소위 '총동원 전도 집회'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교회가 특별한 날을 지정한 뒤 교인들로 하여금 주변에 불신자들을 교회당으로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실상은 복음과는 무관하게 담임목사의 일반적인 설교만 듣게 하고 있다(<정복을 당한 자들>, 이송오, 말씀보존학회, 95쪽). 어쨌든 이 목적을 위하여 담임목사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은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눅 14:23)"는 말씀이다.

총동원 전도 집회와 관련하여, 장로교 윤석준 목사는 그가 쓴 책에서 "하나님이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고 했으므로, 목사들은 자기네 교인들에게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서라도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이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대상으로 하신 말씀이며(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이스라엘의 선생들로서, 오늘날로 치자면 목사님들에 해당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아닌, 하나님을 잘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목사들은 이 말씀을 근거로 '총동원 전도 집회'에 인용하고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한국교회가 잘못 알고 있는 101가지 성경 이야기>, 윤석준, 부흥과개혁사, 419쪽).

그리고 '총동원 전도 집회'를 위하여 수많은 교회들이 '총동원 전도'라는 미명하에 온갖 불법들을 저지르고 있다. 이런 집회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보기에 민망할 정도의 악행들이 행해지는데, 예컨대 김치냉장고나 고급 가전제품을 상품으로 걸거나, 십만 원짜리 돈 봉투를 상품으로 돌리는 일 등은 기정사실화된 지 오래다. 심지어 아이들에게도 상품권이나 게임기나 mp3를 걸고 소위, '낚시'를 하는 것이 통념이 돼 버렸을 정도이다. 그러므로 이런 행위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의 입장에서 교회 밖에서 본다면 부패가 코를 찌르는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늘날에는 이런 행위가 만연하여 이 모든 것이 다 '전도를 위한 미끼일 뿐'이라는 것을 불신자들도 알아채기 시작했다(위의 책, 410쪽).

한편, 장로교회 이광호 목사도 그가 쓴 책 내용 가운데 '총동원 전도 주일'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말하기를 한국교회는 '총동원 전도 주일'이라는 말이 거의 보편화되어 있지만 성경에는 총동원 전도 주일이라는 것은 아예 없다. 베드로나 요한, 바울 등 어느 누구도 그런 유의 특별한 주일을 지킨 적이 없다. 그 이후에 어거스틴이나 루터, 칼뱅 등도 그런 형태의 주일을 지킨 적이 없으며 역사 가운데서나 전 세계의 건전한 교회들 중에서도 그런 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총동원 전도 주일은 잘못된 성장주의를 추구하는 인간의 종교적 욕망에서 나온 생각이라 할 수 있다(<아름다운 신앙생활>, 이광호, 도서출판 깔뱅, 302쪽). 한마디로 '총동원 전도 주일'은 국내 특유의 비성경적인 가짜 복음 집회라 할 수 있다.

둘째, 국내 대부분의 개신교파들은 초창기부터 지역 교회에 복음 집회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며 교회의 모든 집회를 예배로 간주했다. 대부분의 국내의 개신교회는 초창기부터 1960년대까지는 교회에서의 예배는 대체로 주일 오전 예배를 중심으로 주일 저녁 예배, 수요일 저녁 예배를 가졌다. 그리고 1970~80년대에는 기독교인 수가 급증하면서, 매일 새벽 예배와 금요 철야 예배와 구역 예배 등이 추가로 생겨났다. 또 1990년대 이후에는 중대형 교회의 경우 주일예배를 5차례 안팎으로 늘이고, 또한 지역 교회에 따라 나름대로의 갖가지 신종 예배 형태가 생겨나면서, 예배의 종류가 더욱 증가하여 한국은 예배의 가짓수에 있어 수십 년간 단연 세계 으뜸을 차지하였다.

예배의 종류가 이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대부분의 교파에서는 왜 성경적인 '복음 집회'가 존재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게 된다. 그것은 우선 국내의 개신교파들은 거의 대부분, 지역 교회의 모든 집회를 예배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국내의 장로교 헌법에도, 제4편 제4장 '예배의 분류' 편에서 주일예배뿐만 아니라, 찬양 예배, 수요 기도회, 새벽 기도회, 교회학교 예배, 구역 기도회, 철야 기도회, 금식 기도회, 사경회, 교회 봉사를 위한 기타 집회도 모두 다 예배로 분류되어 있다(<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헌법>, 한국장로교출판사, 362쪽). 그런데 이 가운데 유독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복음 집회'는 누락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복음 집회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사실은 국내의 장로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다른 교파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성경에는 엄연히 지역 교회에 '복음 집회'가 나타나 있으며, 또한 지역 교회가 복음 집회를 열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중대한 사명 가운데 하나임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복음 집회를 갖지 않는 것은 비성경적인 것으로서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근본 원인은 무엇보다 국내 대부분의 개신교파들이 예배와 집회를 분간하지 못한 데서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대부분의 국내 개신교파에서는 지역 교회 내에 복음 집회가 존재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복음 집회가 없는 대신 비성경적인 부흥 집회가 존재해 왔다. 초창기부터 국내 대부분의 개신교파들은 줄곧 각종 부흥 집회를 열어 왔다. 그런데 국내에서 행해져 왔던 이 부흥 집회라는 것이 성경에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희한한 성격을 가진 한국식 비성경적인 집회로서, 교인들뿐만 아니라 비교인들에게도 온갖 부작용과 함께 많은 폐단을 낳게 했다. 특히 비기독교인들에게는 기독교를 샤머니즘적인 무속 종교나 복을 구하는 기복 종교와 같은 것으로 오인하거나 착각하게 만드는 데도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고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그러니까 국내 대부분의 부흥 집회는 18세기 영국이나 미국에서 있었던 '대각성 운동'과는 거리가 먼 집회이다. 영국이나 미국의 대각성 운동은 당대의 복음 전도자들이 '복음 집회'를 열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중생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다. 그러나 국내의 부흥 집회는 중생의 복음이나 영혼의 구원과는 거리가 먼 집회였다. 소위 심령 대부흥회니 신유 대부흥회 등은 교인과 비교인을 구분하지 않고, 누구든지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 받고 축복 받고 병 고침받고 방언 받고 귀신 쫓고 등등이 그 중심 내용이다. 이런 집회는 복음 집회도 말씀 집회도 아닌 한국식 기복 종교와 무속 종교 그리고 이교도의 신비주의가 혼합된 비기독교적인 종교 집회인 것이다.

그리고 심령 부흥회라면 '심령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도, 실제는 전혀 딴판인 것이다. 그러니까 명목상으로는 '심령 부흥'이지만 실제로는 '교인 숫자 늘이기, 담임목사 떠받들기, 성전 건축 모금, 병 고침, 귀신 쫓기, 신비주의 등'이 그 목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리고 부흥 집회 때마다 강사들은 대부분 헌금에 대해 강조한다. 특히 마지막 날에는 부흥강사가 교인들에게 안수하면서 축복기도를 해 준다는 명목으로, 헌금 봉투에 각자의 이름과 기도 제목을 적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적지 않은 교인들이 부흥회 때마다 여러 가지 명목으로 내세우는 헌금에 대한 적지 않은 부담감 때문에 부흥회 기피 현상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넷째, 복음 집회가 아닌 성경에 없는 각종 가짜 집회들이 생겨났다. 국내 대부분의 개신교파에서는 2000년을 전후하여 여러 종류의 집회가 생겨났다. 이를테면 전통 예배, 현대 예배, 블랜디드 예배, 축제 예배, 찬양 예배, 열린 예배, 구도자 예배 등등의 각종 신종 예배들이 생겨났다. 이 가운데 전통 예배는 전통적인 형식에 익숙한 예배를 말한다. 현대 예배는 청년들을 위주로 한 찬양 중심의 열려 있는 예배이다. 블랜디드 예배는 젊은 층과 기성세대 그리고 전통 예배와 현대 예배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예배이다. 축제 예배는 예배의 축제화가 강조되면서 기쁨과 잔치 분위기로 예배를 드리자는 취지의 예배이다. 찬양 예배는 구도자들을 위한 찬양 중심의 예배이다.

상기의 예배 가운데, 특히 열린 예배는 미국의 빌 하이벨스 목사에 의해 생겨났다. 그는 1975년에 비기독교인인 청소년들을 '구도자'라 칭하면서 이들을 위한 예배를 별도로 만들어 그것을 '구도자 예배'라고 불렀다. 이 구도자 예배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의 중대형 교회에 도입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이 '구도자 예배'를 '열린 예배'라는 용어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의 구도자 예배는 불신자인 청소년들에게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구도자 예배'는 복음 집회의 일종이지 신자들의 예배를 위한 집회와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열린 예배란 무엇인가>, 조영엽, 큰샘출판사, 20쪽).

성경에 나오는 복음 집회는 불신자를 대상으로 한 집회이며 그 대상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구도자 예배 또는 열린 예배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사람, 즉 젊은 층에 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인간적인 타산이나 인간의 편의에 따라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집회로서 비성경적인 집회이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말씀했다. 또한 디모데전서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씌어 있다. 이와 같이 복음 집회란 복음을 들을 대상을 구원받지 못한 일부 계층의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 집회를 복음 전도 집회라고도 부르지만 복음 예배 또는 복음 전도 예배라고는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복음 집회는 불신자들을 위한 집회이기 때문이다. 예배란 거듭난 신자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 즉 '예를 갖춘 경배'를 드리는 집회이다. 다시 말해 모든 신자들이 만인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집회를 말한다. 따라서 제사장 신분이 아닌 불신자들은 '예배'와는 무관하며 '집회'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 집회는 복음 예배라 할 수 없으며 복음 집회가 올바른 용어인 것이다. 따라서 구도자 예배와 열린 예배는 잘못된 용어이며 복음 집회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성경적으로 올바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2007년 10월, 30여 년간 빠른 성장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도 큰 영향을 끼친 윌로우크릭교회가 창립 30주년을 맞아 '폭로(Reveal)'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빌 하이벨스 목사와 그 운영진들은 자신들이 "교회 사역에서 실패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 실패의 원인은 "교회에 수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했지만 교인들의 영적인 성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국민일보>, 2007. 12. 30).

과거 세계의 수많은 교회들은 물론이고 한국교회도 1990년대 중반 이후 윌로우크릭교회의 영향을 받아 온갖 시스템을 모방해 오면서 교회의 성장을 추구해 왔다. 그러나 성장 모델로 삼았던, 바로 그 '윌로우크릭교회'가 3년간의 자체 조사와 함께, 많은 교인들과 일대일로 면담한 결과,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인 영적 성장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윌로우크릭교회를 모방했던 수많은 국내의 중대형 교회들도 겉으로는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윌로우크릭교회처럼 이미 그러한 실패를 답습하고 있는 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윌로우크릭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의 영향으로 시작된 구도자 예배, 즉 열린 예배가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지금까지의 과거의 모든 예배를 '전통 속에 갇힌 예배'로 치부하고, 이제 새로운 형태의 예배를 구도자를 향해 '열린 예배'라고 부르면서 온갖 종류의 예배의 형태가 생겨났다. 그렇지만 열린 예배, 즉 구도자 예배와 온갖 신종 예배들은 성경에 나오지 않는, 다시 말해 비성경적인 가짜 복음 집회인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적인 복음 집회와 비성경적인 가짜 집회들에 대해 여러 가지를 살펴보았다.

오늘날 국내에는 극소수의 지역 교회들만이 성경의 모본을 따라 '복음 집회'를 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은 격주에 한 번이나 아니면 매달 한 번 또는 분기별로 복음 집회를 통해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신자들은 이런 복음 집회에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데려와 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들을 기회를 제공하여 그들에게 거듭나는 체험을 갖도록 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이 공적인 '복음 집회'를 열어 구원받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성경적인 '복음 집회'를 갖는 교회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국내의 여러 지역 교회들은 이러한 성경의 모본을 따라 올바른 복음 집회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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