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호 권사가 임시의장이 되어서 예인교회 규약 초안을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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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1일 주일 예인교회(정성규 목사)에서 열린 교인총회는 작은 축제였다. 교인총회가 축제가 될 턱이 있겠는가 싶지만, 분명히 작은 축제였다. 한 시간 조금 넘게 모두들 웃고 박수치고 서로를 격려하면서 행복해했다.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면서 교회를 세운 지 2개월. 이날 총회는 '사람이 제 맘대로 끌고 가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이 인도하는 교회'가 될 수 있겠는가 스스로를 확인하고 다짐하는 첫 번째 실험무대였다.

이날 총회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사안이 결정됐다. 하나는 교회규약 제정이고, 하나는 운영위원 선출이다. 이 두 가지 결정사항 안에는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조망할 수 있는 몇 가지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우선, 예인교회 규약에서 눈에 띄는 점들을 보자. 매년 1월에 모든 교인이 참여하는 정기총회를 연다. 여기서 교회의 활동을 보고하고, 예·결산 및 부동산 소유·관리·처분 등 재정문제를 결정하고, 규약 개정·운영위원 선출 등을 처리한다. 이 부분은 보통 교회에서 연말에 열리는 공동의회와 형식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중요한 점은 좀더 들여다봐야 한다.

총회에서는 운영위원을 선출한다. 운영위원은 여느 교회의 당회 내지 제직회 정도로 보면 된다. 그러나 예인교회 운영위원회는 상당히 다르다. 첫째는, 7인 이내의 평신도와 1명의 담임목사가 참여한다. 평신도의 임기는 1년이고, 해마다 정기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아야 한다.

담임목사는 종신직이다. 하지만 의결권은 없다. 참석해서 의견을 개진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생각을 관철시킬 수 있는 8분의 1의 결정권도 없다. 운영위원으로 선임된 홍순호 권사는 "처음 정성규 목사님이 먼저 '목사는 의결권을 갖지 않도록 하자'고 했을 때 다들 놀랐다. '그래도 8분의 1 정도의 의결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얘기했지만, 본인이 강하게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담임목사의 억지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라지만, 이런 억지라면 부리면 부릴수록 교회는 행복해질 것 같다.

둘째, 이날 선출된 일곱 명의 운영위원 중 여(女)집사가 두 명이다. 투표를 하기 전 누군가가 "이왕 개혁할 거 여성이 더 많으면 좋겠다"면서 두 명의 여권사를 후보로 더 추천했다. 본인들이 "운영위원 할 능력은 있다고 생각하지만 건강상 이유로 어렵다"면서 즐겁게 고사한 것이나, 사회자가 "여성이 두 명이나 참여하는 것도 파격인데 더 늘리자면 이건 혁명이다"고 하는 농담에도 모두들 즐거워했다. 이 정도면 축제라고 봐도 충분하지 않은가.

▲규약 내용을 꼼꼼이 살피는 교인들의 모습에서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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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인교회는 담임목사의 교인 성추행 문제로 1년 이상 몸살을 앓았던 부천 신도시의 ㅊ교회 교인들이 나와서 만든 교회다. 이들은 그 동안 '참사모'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담임목사에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회개할 것을 요구해왔다. 사건은 사회법정과 교회법정으로 넘겨졌다가 최근 당사자간에 합의가 이뤄지면서 사실상 종결됐다. 하지만 담임목사에게서 어떠한 참회의 모습도 발견할 수 없었던 이들은 결국 이 교회를 완전히 떠나 2개월 전에 예인교회를 새로 만들었다.

그 동안 이들은 참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우리만 이런 아픔을 겪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수많은 교회에서 교인들이 비슷한 고통 속에 빠져 있었다. 그들의 사정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 얘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고의 시간을 잘 견뎌낸 이들은,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어 보자고 뜻을 모았다.

송내에 있는 문화센터 한 켠을 장기 임대해 예배처소로 쓰고 있는 이들은, 조금 불편하더라도 주일 하루만을 위해 쓰여지는 예배당은 갖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건물 짓고 유지하는데 드는 돈으로 정말 교회가 해야 할 일에 제대로 쓰겠다는 것이다.

정성규 목사는 담임목사를 비롯해 직분자 임기제를 도입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직 교인들이 여기까지 따라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좀더 시간을 갖고 차츰차츰 이해를 구해나갈 생각이라고 한다. 또 교회가 커진다 해도 300명을 넘기지 않고 교회를 분립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곳에 교회를 분립해서 세우고 힘을 합치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어쩌면 이런 구상이 아직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하지만 잠재력과 가능성은 충분해 보인다. 그는 "예인교회 교인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신앙을 갖고 있지만, 교회가 이래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상당한 개혁의식을 갖고 있다"면서 "그 동안의 시련을 잘 감내하면서 많이 성숙해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성숙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교회를 설립하기 전까지 매주 기도회를 가져왔다. 정 목사는 그 사이 '교회론'을 꾸준히 가르쳤다. 참다운 교회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깨달으면서, 동시에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지내왔던 교회생활의 허구들이 하나씩 깨져나갔다. 또 내면의 상처를 씻겨내기 위한 프로그램도 가졌고, 상처받는 한국교회를 어떻게 끌어안고 기도하며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특강도 들었다. 그런 시간들이 켜켜이 쌓이면서 성숙의 계단을 한 칸 두 칸 올라가는 것이다.

이날 총회가 끝난 뒤부터는 '예인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한 연속기도회'가 시작된다. 여섯 장짜리 안내지에는 구체적인 기도제목들이 빼곡이 채워져 있다. 이 기도제목들을 찬찬히 읽고 기도해나가는 동안 귤 속처럼 알차게 여물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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