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MIT대학 캠퍼스 내에 위치한 이 작은 채플은 건축가 에로 사리넨의 작품.
맞은편 강단과 함께 빛을 주제로 디자인되었다.

MIT 공과대학의 크레스지 채플(Kresge Chapel at MIT, Cambridge, Massachusetts, U.S.A, Eero Saarinen, 1953-55)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 1:3-4)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기독교에서 빛은 창조의 첫 번째 사역이었으며, 하나님 자신과 그 분에 의해 창조된 생명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교회 건축에서 빛은 항상 공간 디자인의 중심 주제였다.

바실리카 양식으로 시작된 로마시대의 초기 기독교 교회당으로부터 고딕을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도록 교회건축의 공간 속에는 빛이 있었고, 그 빛은 지상의 교회가 하나님과 연결되고 있음을 깨닫게 하는 존재였다.

스테인드글래스를 통해 신비한 빛을 만들어 낸 고딕의 교회당은 공간 속에 충만한 성령을 느끼게 하였고, 제단(祭壇) 위에 높이 설치된 돔(dome)으로부터 쏟아져 내려오는 빛을 연출한 르네상스의 교회당은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교회를 느끼게 하였다.

이러한 빛은 현대건축에서 더욱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교회건축의 공간 디자인에 적용되었다. 그 독특한 한 예가 1955년에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에 의해 설계된 미국 MIT 공과대학의 크레스지 채플이다.

형태의 구성

▲예배실로 이어지는 복도

130여 석의 이 작은 채플은 인접한 크레스지 강당과 함께 MIT 대학 캠퍼스를 위한 한 쌍의 작품으로 설계되었고, 1955년에 완성되었다. 이 두개의 건물이 모두 한 건축가에 의해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크기와 실루엣 그리고 건설 기술은 서로 대조적이다. 거대한 강당은 당시 첨단 기술이었던 얇은 쉘의 콘크리트 돔(dome)으로 이루어진 개방적인 형태인 반면에, 이 작은 채플은 거칠은 표면의 벽돌조 원통형으로 이루어진 극도로 단순하고 보수적이며 폐쇄적인 형태로, 초기 기독교의 중심형 교회당의 엄격하고 금욕주의적인 모습을 회상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개의 건물은 서로 대화하며 공존한다.

또한 채플은 원통형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주위와 대비되는 재료로 인하여, 주변건물들 보다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캠퍼스의 중요한 오브제가 된다.

한편, 이 원통형의 채플은 더 넓고 깊이가 얕은 원형의 연못 중앙에 서 있고 원통 하부에는 불규칙한 크기와 간격의 아치들이 파여 있다. 또한, 연못 바닥은 광택이 나는 붉은 화강석을 깔아 마치 건물이 물 속의 화강석 받침대 위에서 물 위로 떠오르는 듯하다.

채플의 기본 디자인은 원과 사각형이라는 2개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들을 대위법(對位法)적으로 조합하여 이루어졌다. 즉, 안과 밖이 벽돌로 마감된 원통형의 예배당과 유리로 이루어진 긴 직사각형의 입구통로가 형태와 공간의 대위를 이루고, 사각형의 대리석 제단과 그 상부의 원형 천창(天窓)이 한 쌍으로 대위를 이룬다. 또한 외부 형태로부터 내부의 가구에 이르기까지 가장 단순한 그래서 원형적인 형태를 추구한 이 채플의 아름다움은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세의 화려하고 거대한 성당들을 지었던 교회들에 대하여 교훈을 준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것이 최상의 것(Simple is the best 또는 Less is More)”이라는 근대건축의 이념이었다.

▲지붕위의 종탑
종탑

이 채플에서 또 하나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건축과 조각의 통합이다. 채플의 지붕위의 종탑과 내부 제단 뒤의 배경막은 각각 조각가들의 작품으로 건축과 완벽하게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지붕 위에 세운 스테인레스 스틸의 종탑은 조각가 데오도르 로자크(Theodore Roszak)에 의해 디자인 되었는데, 중앙이 아닌 한쪽에 치우쳐 설치되었다. 또한 이 종탑 조각은 아래 원통형 예배당의 거칠고 육중한 벽돌매스의 기단과 대조를 이루면서 유체역학적으로 설계되었고, 예배당 하부의 모티브를 반복한 삼각(三脚)의 둥근 아치와 그 위로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그리고 가볍게 솟아오른다. 여기서 그 수직성은 전통적인 교회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사리넨의 많은 스케치는 종탑의 디자인과 위치가 중요한 논의 대상이었음을 말해준다.

예배실 내부공간

예배실의 내부공간은 로마의 판테온 신전 같은 고대 종교건축물에서 자주 나타나는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뚜렷하게 재생하고 있다. 공간의 이 신비한 힘은 어두움과 그 속에 비치는 빛으로부터 비롯된다. 이 빛이 크레스지 채플의 예배실 내부공간 디자인에서 작가가 특별히 관심을 가졌던 주제이었다. 그는 2중의 빛을 이용하여 공간의 중심과 에워쌈의 효과를 창출하였다.

▲어두운 예배실에 빛이 천장에서 제단으로 내려온다.
중심의 빛은 제단에서 이루어진다. 대리석으로 만든 단순한 박스형의 제단은 예배실 안쪽에 위치한 3단의 원형 기단 위에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제단 위 천장에는 둥근 천창(天窓) 하나가 뚫려 있다. 거기서부터 가느다란 줄을 타고 수많은 금속편이 내려와 제단의 배경 막을 이룬다. 이 유일한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이 제단과 배경막에 집중된다. 예배실은 아주 햇빛이 강한 날에도 매우 어둡다. 따라서 어두운 공간 안에서 국부적으로 조명을 받는 이 극도로 단순한 형태의 백색 대리석 제단의 중심성은 더욱 강조된다. 예배실의 유일한 장식이기도 한 이 배경막은 이탈리아 태생의 디자이너이며, 조각가이고 건축가이기도 한 해리 베르또아(Harry Bertoia)에 의해 디자인 되었다.

예배실을 에워싸고 있는 2차적인 빛의 특별한 효과는 예배실 주위 벽에 있다. 원통형으로 이루어진 외벽 아랫부분의 아치 안쪽에 사이를 띄워 허리 높이의 내벽을 쌓고 그 사이에 수평으로 유리를 끼웠다. 따라서 예배실 내, 외부는 시각적으로 단절되지만, 건물 주위에 연못물에 반사된 빛이 이 수평 창을 통하여 어두운 예배실 주위의 안 벽을 아래로부터 위로 희미하게 비친다. 이때 빛은 물에 반사되어 굴곡을 이룬 벽에 어른거리며 여명처럼 비추어 예배실을 에워싸준다. 바람에 이는 잔잔한 물결이 이 빛을 흔들리게 할 때 예배당의 내부의 분위기는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이 예배실의 출입은 원통의 몸체 건물에 붙어 있는 유리박스의 밝고 긴 복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출입구를 통해 예배실을 보면 어두움 속에 빛이 위로부터 금속편들을 타고 제단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어두운 세상 속에 비치는 한 줄기 생명의 빛을 연상시킨다. 또한 이 모습은 마치 성령의 은혜가 쏟아져 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성도들의 찬양이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현관으로부터 복도를 통해 예배실로 들어가는 과정은 빛으로 연출된 한편의 드라마이다.

예배실의 내벽을 작은 오목-볼록 곡면의 반복에 의해 파형으로 구성한 것은 기본적으로 원형의 내부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음향의 문제(음의 집중현상)를 해결하기 위해 소리를 확산시키려 한 것이다. 그러나 사리넨은 그 볼록면 안의 빈 공간을 환기덕트 공간으로 활용하였고 또한 이 굴곡면을 통해 예배실을 보다 친근하고 동굴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러한 설계는 음향과 설비의 기술적 문제와 실내 분위기라는 공간 예술적 문제를 통합해 낸 작가의 치밀함을 엿보게 한다.

소리의 반사성이 높은 내부의 벽돌벽은 실내 음향의 잔향을 높여 오르간의 장엄한 음악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외부세계와 차단된 그리고 어둠과 빛으로 연출된 이 신비하기까지 한 이 공간 안에서 감상하는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회중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족하다.

예배실 안의 의자와 성서 낭독대, 설교단 등의 모든 가구들도 설계자인 사리넨의 작품으로 예배실의 다른 디자인과 통일성을 가지도록 단순하게 디자인 되었다. 실제로 당시 대부분의 건축가들은 자신이 설계한 건물의 가구들은 물론 문고리 하나까지도 직접 디자인하여 건축설계의 조화와 통일성을 추구하였다. 이는 교회당의 가구들을 건물의 디자인과는 무관하게 성구사에서 사다놓아 건물과 가구가 부조화를 이루는 오늘의 우리 교회당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이 채플은 종파와는 무관하며 따라서 예배실에 대한 이러한 모든 디자인의 기본적인 의도는 개인적인 기도자에게 영적 감정을 불러일으켜 자신보다 더 큰 존재를 깊이 명상하게 되는 자리가 되게 하려 함이었다.

이 채플은 강당과 함께 설계자인 사리넨이 국제적인 갈채를 받은 첫 작품들이다. 사리넨은 세인트 루이스(St. Louis, 1947-64)의 게이트 웨이 아치(Gateway Arch)와 뉴욕의 존 에프 케네디 공항의 T.W.A 터미날(TransWorld Airline Terminal, 1956-62)의 설계자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경력은 뇌종양으로 이해 1961년에 51세의 나이로  타계함으로써 짧게 끝났다. 그의 추모식은 자신이 설계한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훌륭한 작품인 이 크레스지 채플에서 열렸다.

▲연못에서 반사된 빛-예배실 주위 벽에 바깥 연못을 통해 반사된 빛이 올라오고 있다.

“인간은 아주 잠시 동안 세상에 머무른다. 그리고 자신의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종교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목적을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건축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건축의 목적은 인간의 삶을 보호하고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그의 존재의 고귀함 안에서 그의 신념을 성취하기 위해서라고.”Dickinson College에서의 강연에서, 1959년 12월 1일, Eero Saarinen

정시춘 / 정주건축 연구소 소장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