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 현대, 한국 그리스도인에게 아나뱁티스트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터툴리안식으로 말해서 아나뱁티스트와 한국교회는 무슨 상관이 있는가? 도대체 500년이나 된 낡은(?) 종교개혁의 한 흐름에 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말이다. 왜 우리는 교회사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위대한 교회의 전통과 신앙인의 모범 중에서 하필 오랫동안 이단처럼 취급받고, 사회로부터 물러나 은둔형 외톨이로 수백 년을 살아온 한 줌의 무리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일까?

첫째로,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은 도래하고 있는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의 훌륭한 대안이 되기 때문이다.

1.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endom Society)의 도래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는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에서 1963년 어느 주일날을 후기 기독교 사회로 진입한 때라고 말한바 있다. 후기 기독교 사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인지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그것이 교회와 국가가 완전히 분리된 사회라는 것이며, 그와 함께 그동안 기독교가 누리던 모든 특권을 다 내려놓아야 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예컨대 1962년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주기도문 암송 금지 결정이라든지, 최근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는 인사말을 쓰자는 제안도 같은 맥락이다. 즉 현대사회는 다른 종교에는 주어지지 않는 어떠한 특혜나 특권도 기독교에 제공하지 않는 사회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 이후 처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니까 자그마치 1,700년 만에 최초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서구 교회는 지난 1,700년 동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여러 가지 충격적인 일들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 세계 교회는 교회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때 더 이상 국가의 강제력을 활용할 수 없게 된 점이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을 가질 만한 어떠한 특권이나 이점을 찾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당혹해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크리스천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다원주의적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요청으로 열린 니케아공의회에서 공인된 니케아신조는 단숨에 기독교를 유일 종교로, 그리고 기독교 진리를 유일 진리로 통일시켜 버렸다. 그래서 지난 1,700년 동안 서양에서 종교(religion)는 기독교(Christianity)와 동의어였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유일 종교나 유일 진리는 없다. 기독교는 더 이상 유일 종교(the Religion)가 아니며 기독교 진리도 더 이상 유일 진리(the Truth)가 아니다. 기독교는 많은 종교 중 하나(a religion)며, 기독교 진리 역시 여러 진리들 중 하나(a truth)에 불과하다.

이러한 후기 기독교 사회는 선교의 개념도 바꿔 놓았다. 크리스텐둠에서는 세계가 기독교 세계와 이교 세계(비기독교 세계)로 양분된다. 때문에 선교란 기독교 세계에서 이교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여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 세계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크리스텐둠에서 선교는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었다. 하지만 레슬리 뉴비긴과 같은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 운동가들은 더 이상 확장시킬 기독교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되었다. 계몽주의 이후 불어닥친 세속화의 바람과 함께 세계는 이미 이교화되어 버렸으며 역사는 콘스탄티누스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 버렸다. 이제 교회는 이교 세계 속에 점적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따라서 당연히 선교의 개념도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소위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 휩쓸고 있는 21세기 초두에 교회는 이 새로운 현상에 어떻게 대응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다. 혹자는 과거 D. L. 무디(D. L. Moody)와 근본주의자들이 현대주의(Modernism)에 맞섰던 그러한 방식으로 지금의 역사적 흐름을 정죄하고 그에 맞서려고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이들은 시류에 편승하여 기독교의 독특성을 포기하는 것이 마치 시대를 앞서는 선구자적 태도인양 우쭐대고 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하고 있기는 매 한가지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은 현대 교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신앙의 위기, 전도와 선교의 위기 등과 무관하지 않다.

2. 포스트 MB 시대(Post-MB)의 도래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와 국가 교회의 해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한국교회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양상은 사뭇 다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 기독교의 역사에서 국가 교회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지난 60여 년 동안 10명의 대통령 중 4명의 개신교인(이 중 세 명은 장로)과 1명의 가톨릭 신자를 배출했다. 역대 대통령의 절반이 기독교인이었던 것이다. 이 수치는 한국에서 국가와 기독교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그뿐만 아니라 1965년 비기독교인이었던 박정희 대통령 시절부터 시작된 '국가 조찬 기도회' 등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비기독교인 대통령들도 하나같이 큰 교세를 자랑하는 한국교회와 다양한 형태로 협력을 꾀했다.

기독교와 정부의 유착 관계는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에 이르러 그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있다.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을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의 개신교회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를 지지하고 있으며, MB 정부 역시 다양한 형태로 한국 개신교회에 수많은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 임기 내내 종교 편향 논쟁이 끊임없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고소영 내각'이라는 말에 걸맞게 기독교인들은 많은 정부 요직에 진출했으며, 많은 목사와 신자들도 다양한 형태로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예컨대 김진홍 목사를 필두로 하는 뉴라이트 연합(New Right Union)은 MB 정부 하에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그들의 취지의 옳고 그름이 아니라, 그러한 시도 자체가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세계사적 흐름과 역행한다는 것이다. 구미 사회는 국가 교회(State-Church)가 해체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국가 교회가 완성되고 있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교회의 역사적 시계를 중세 시대로 되돌려 놓고 있다. 그리하여 심지어는 칼과 창을 들지 않았다 뿐이지 봉은사 땅 밟기나 조계사 난입 같은 한국판 십자군 전쟁마저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MB 정부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며, 여론을 수렴하기보다는 조작하는 등 다분히 독재적인 형태의 정치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한국 국민은 이명박 대통령과 MB 정부에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분노와 적개심은 쉽게 한국교회로 옮겨 가고 있다.

때문에 2013년 대통령 선거와 함께 도래하게 될 포스트 MB 시대에 한국교회에 불어닥칠 역풍의 크기가 과연 어느 정도나 될는지 가늠조차 잘 되지 않는다. 모르긴 해도 MB 정권이 끝나면서 한국교회는 상당히 많은 권력과 특권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그와 함께 한국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그리고 노골적인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예상되는 바이지만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의 쇠락의 속도는 지금보다 더 빨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포스트 MB 시대에 이르러서야 한국교회는 진정한 의미의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포스트 MB 시대에 대한 대비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몇 년 전부터 한국교회는 성장의 감소라는 통계 수치 때문에 화들짝 놀라서 열심히 전도와 선교에 매진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노력이 상황을 도리어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19세기 미국의 근본주의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인해 다분히 공격적인 형태의 전도와 선교를 해 왔다.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 즉 기독교 세계의 확장을 시도해 온 것이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그 방법 말고는 전도와 선교를 할 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도 그렇거니와 포스트 MB 시대에도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 여전히 엄청난 물량, 조직, 프로그램을 동원하여 공격적으로 전도하고 선교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이러한 전도 방식은 도리어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몇 년 전 물의를 빚었던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건이나 선교 단체 인터콥의 공격적 선교 방식, 또한 공영 방송에서 몇 차례 비판적으로 보도한 바 있는 몰상식한 노방전도, 무례한 방문 전도, 초대형 전도 초청 집회 등의 전통적 방식도 그렇거니와 구도자 예배, 두 날개 시스템, G12/J12, 해피 데이 등 새로운 전도법도 별로 상황을 호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외길 영성>에서 데이빗 옥스버거(David Augsburger)의 말대로 "위대한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고 전도 명령을 수행하면 단지 큰 소란만 피울 뿐"이다. 후기 기독교 사회의 도래라는 역사적 현실 인식과 그에 맞는 새로운 선교·전도법을 개발하지 않는다면 한국교회의 위기는 타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3. 아나뱁티스트의 유산

하지만 바로 이러한 현상은 아나뱁티스트에게는 도리어 커다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아나뱁티스트는 처음부터 신앙의 자유와 함께 국가와 교회의 분리를 강조해 왔기 때문이다. 아나뱁티스트들의 신앙에 대한 헌신은 놀라울 정도로 투철하다. 초대 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아나뱁티스트들도 자신들의 신앙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에 가장 가까이 일치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목숨을 걸 만큼 확고한 진리를 알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신앙을 타인에게 증언할 때 어떠한 강제력이나 물리력, 혹은 정부의 공권력 등을 활용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의 유아세례 거부는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사회적 파장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국가의 권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교회(free church)를 모색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의 출현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에 이미 국가로부터 분리된 자유 교회를 실험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라는 이분법도 거부했으며, 기독교 세계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선교를 이해하지도 않았다. 이들은 다만 세상 속에서 신실한 신자 됨과 교회 됨으로 복음을 증거하고자 했다.

이들은 또 효과적인 복음 전파를 위해서 국가 권위를 사용한다거나, 총과 칼을 앞세운다거나, 혹은 돈과 무역의 힘을 빌리거나 하지 않았다. 아나뱁티스트 500년 역사 속에서 참으로 두드러진 점은 이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반대하는 세력들을 향해 단 한 번도 칼로써 그들을 제압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중세 교회나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개신교회 모두와 현저하게 차별되는 특징이다. 이들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삶, 죽음에 대해서만 증거하기를 원했으며, 그것을 직접 살아 냄으로써 확증하기 원했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최상의 복음 전도 전략은 복음 자체의 권위를 의지하여,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하며, 말로써 설득하고, 인내하고, 또한 복음을 몸으로 살아 낸 삶을 보이는 것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복음을 전한 이유는 참된 신앙이란 오직 복음을 듣는 자의 자유로운 결단을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상대방의 생각과 사상,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는 공손한 태도이며, 성령께서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겸손한 태도였다. 신앙과 양심의 자유에 대한 이들의 헌신은 전도 대상자의 자유, 곧 복음을 믿을 자유와 함께 거부할 자유 모두를 인정했다는 뜻이며, 그들이 복음이 아닌 다른 사상이나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 존중했다는 뜻이다. 이들의 신앙과 양심의 자유사상은 계몽주의자들보다 거의 200년이나 앞선 것이었으며, 이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가 도래하기 500년 전부터 기독교 신앙을 다원적 상황 가운데 위치시켰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원주의적인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그리고 그동안 교회가 누렸던 특혜와 권리를 박탈당한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여전히 기독교 신앙이 가능하며, 또한 그 신앙의 증언이 가능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분명 일찍부터 아나뱁티스트 전통이 보여 왔던 신앙의 자유 및 자유 교회의 전통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리라. 다원주의적 상황을 인정하면서도 복음의 진리성을 굳게 수호하며, 변증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그리고 그 자유의 실천이 아닐까. 바로 이 점에서 아나뱁티스트의 전통은 후기 기독교 사회에 처한 오늘날의 세계 교회와 한국교회에 중요한 교훈을 전수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신광은 / 열음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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