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통해 한반도 전체가 신바람이 났습니다. 폴란드와 경기를 할 때 57만 명이었던 길거리 응원단은 독일과의 준결승전에는 무려 700만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우리 국민 7명 중 1명 꼴인 셈입니다. 이들은 목이 터지라고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이런 현상은 한국 역사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석도 아주 긍정적인 찬양에서부터 매우 혹독한 비판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합니다.

인권운동사랑방은 「인권하루소식」을 통해 월드컵과 '붉은 악마' 현상은 넘실거리는 국가주의와 맹목적 애국심으로 얼룩진 것으로서, 파시즘을 가능케 하는 병적인 현상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습니다. 아울러 풀뿌리 민주주의, 노동자·노점상의 생존권, 집회·시위의 자유를 순식간에 삼켜버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을 위협함으로 우리 사회 발전을 10년 이상 정체시켰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밖에도 우리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외면하는 가운데 울려 퍼지는 함성은 공허할 뿐이라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습니다.

어느 자유기고가가 지적한 것처럼, 축구를 통한 피상적이고 감상적인 단합만으로는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배제와 차별에 기인하는 서로 다른 계층, 지역, 성(性) 사이의 갈등구조를 해결하는데는 어림도 없다는 냉혹한 현실 때문일 것입니다.

귀담아 들어야 할 예리한 분석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우선 긍정적인 평가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대중적 정서와는 완전히 괴리된 지식인이 어떻게 대중들과 어우러져 역사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대중은 일단 격려가 필요했던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0여 년이라는 세월 동안 압축성장을 통해 한국의 경제력은 총량적인 측면에서 세계적으로 11, 12위 권에 진입하는데 성공했지만 국제무대에 설 때마다 마치 갑자기 떼돈을 번 졸부 같은 심정을 떨쳐버리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제 축구라고 하는 세계 공통적인 문화적 무대에서 유럽의 강호들을 차례로 압도한 것입니다. 우리 민족 가슴 깊이 응어리져 있었던 한과 서러움이 단숨에 풀려져 나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히딩크 감독의 탁월한 지도력과 선수들의 피땀 어린 노력에 감동하여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면서 세계를 향하여 어깨를 활짝 펴 보이는 우리 국민들을 나무라고만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함몰되기 쉬운 N세대들이 얼굴에 태극기를 그려 넣고 몸을 태극기로 감싸고 '대~한민국'을 외치면서 함께 어우러지는 모습을 감상적이고 피상적이라고 핀잔만 주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그만큼이라도 애국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공감을 바탕으로 해서 길거리 응원에 결집된 국민적 에너지를 더 깊은 차원으로 승화시켜나가는 것입니다. 대중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마음을 통할 수 있을 때 위에서 언급한 비판적 목소리를 좀더 효과적으로 그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저는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예수님은 먼저 비난의 손길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입니다. 그리고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죄의 길을 떠날 것을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월드컵을 통해 흥겨움에 젖어있는 국민들을 감싸안고 죄의 길에 빠지지 않도록 이끌어나가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선 국민대중을 월드컵을 이용하여 기득권을 강화시키려는 자본과 정치세력으로부터 분리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분단의 극복, 민주주의의 심화, 각종 불평등의 타파 등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그들의 가슴에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번에 응집된 에너지를 어떻게 해서든지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구체적 전략을 모색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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