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찬란한 보석은 처음부터 그렇게 빛난 것이 아니고, 전혀 가치가 없어 보이는 투박한 원석을 다듬고 또 다듬어서 만든 노력의 산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석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원석의 가치를 쉽게 알 수도 없고, 그 원석을 깎아 보석으로 만들 능력도 없다. 하지만 보석 세공사는 전혀 가치가 없어 보이는 원석을 찾아 내어, 그것에서 수백 수천 배의 가치가 있는 보석으로 다듬어 낸다. 우리 사회에는 그런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스포츠 천재가 탄생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그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사람을 발굴해 내고 끊임없이 그 재능을 계발시키는 훈련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 사람의 위대한 음악가가 탄생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훌륭한 인재가 탄생하는 데 있어서 천부적인 달란트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어쩌면 잠재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존재들이 탄생될 것이다. 아마 재능도 관심도 없는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욕심에 따라 냉혹한 훈련을 거친다고 해서 모두가 다 탁월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석의 잠재력을 가진 원석을 다듬을 때만 가치 있는 보석이 나오는 것이듯.

하지만 아무리 원석이 뛰어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원석을 다듬을 수 있는 뛰어난 세공사가 없다면 역시 가치 있는 보석으로 재탄생될 수 없을 것이다. 음악적 달란트를 많이 가지고 태어났다 할지라도,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훌륭한 연주가가 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점에서 토머스 에디슨의 "1퍼센트의 영감에, 99퍼센트의 노력"이란 말은 일리 있는 말이다.

원석과 같은 사람을 보석과 같은 사람으로 바꾸는 데에는 사랑이 필요하다. 물건들이야 재료로써의 가능성이 없다면 버려 버리고, 잠재력이 있는 재료를 선택함으로써 좋은 물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자녀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적다 해서, 우리는 자녀를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종종 텔레비전에서 자폐 증세를 가진 아이를 힘겹게 교육하는 인간 승리의 스토리를 종종 보게 된다. 객관적으로 따지면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있다. 하지만 부모는 부족한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린이 속에 있는 잠재력과 가능성을 본다. 이것이 사랑의 능력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이 있다. 사람들은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탁월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평범한 사람을 자신들의 잣대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모든 사람은 장점과 함께 단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평하다. 어머니는 자신의 자녀에게서 장점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여기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바라보면 길가에 버려질 수밖에 없는 그냥 돌멩이처럼 보이는 사람도, 무한한 가치를 지닌 보석으로 바뀔 수 있는 잠재력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성인군자들이 아니고, 나와 똑같이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다. 어떤 청년이 스펄전 목사님에게 와서 문의를 했다고 한다. "목사님, 제가 교회를 다니면서 사람들의 한심한 모습 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어디 좋은 교회 없습니까? 사랑이 많고 서로를 위해 주며, 인간적인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 정말 완벽한 교회가 어디 없습니까?" 그러자 스펄전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이보게 청년, 사실은 나도 아직 그렇게 완벽한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네. 열심히 찾아서, 찾거들랑 내게 알려주게. 하지만 한 가지 부탁이 있네. 그 교회를 만나면 제발 그 교회에 등록하지 말게나. 자네가 등록하는 순간 그 교회는 더 이상 완벽한 교회가 아니게 될 테니까."

우리는 보석과 같이 완전히 잘 다듬어진 교회를 찾아다니고, 멋있고 화려한 것을 갈망한다. 하지만 사실 그런 교회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런 성도는 이 세상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야 우리는 온전해질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 이 세상에서 우리가 완벽해질 수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그렇다면 완벽한 교회와 완벽한 성도를 찾아 헤매기보다는, 원석과 같이 아직 완전히 다듬어지지 않는 성도들로 가득 차 있는 교회이지만, 그들과 함께 서로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성화의 길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실 교회는 바로 이 목적 때문에 존재한다. 나 혼자 있으면 다듬어질 수 없기에, 성도들과 함께 신앙의 연단 속에서 함께 그리스도의 장성한 신앙의 인격에까지 성숙해 나가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가 원석이기에 날카로운 것으로 서로를 향해서 상처를 주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실망할 것이 아니다. 완벽한 다이아몬드와 같은 성도를 찾아다니는 것도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내가 있음으로 그들이 원석에서 보석으로 다듬어질 수 있고, 그들이 있음으로 내가 원석에서 보석으로 깎여져 나가는 것이다.

과연 그렇게 될까? 같이 신앙생활하면서 원석이 보석으로 바뀌어 나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확실하다.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그리하여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셨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이길 수밖에 없는 영적인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걸어가는 이 신앙의 여정은 중간에 실패할 수 없는 승리의 길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이 광야와 같고, 투박하면 투박할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치가 있는 자들로 변화될 그날을 소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실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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