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인격적 자질과 전문적 능력이 있다고 항상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사회 현실입니다.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는 여전히 학연·지연과 혈연 등을 비롯한 각종 연줄이라는 것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치에서도 누가 실세인가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각종 선거에서 군소 정당 후보로 나오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해서는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한국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치명적 요인입니다.

교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연줄로 얽혀진 집단의 이해 관계가 난공불락의 성처럼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더라도, 바른 소리 하다가 교단 어른이나 해당 기관의 실세를 쥐고 있는 사람의 눈에 벗어나면 입지가 매우 좁아집니다. 그러다 보니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힘을 어느 정도 축적한 다음에나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지혜로운 생각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을 아끼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현실에 순응하는데 익숙해져 버리는 위험이 매우 높다는데 있습니다. 예리한 비판은 교회를 살리는 일이 아니라 무조건 교회를 파괴하는 일이라는 선입관이 은연중 하나의 자기 검열처럼 작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독단적이고 파괴적인 비방은 교회의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서 사라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사랑의 눈물이 적셔져 있는 건전한 비판도 도매급으로 처리되는 분위기 속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힘겨운 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교회 개혁을 열망하는 개인이나 운동들이 한결같이 부딪히는 벽이 있습니다. 인력이나 재력을 움직일 위치에 있는 분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개혁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적극 동참하려는 이들은 대부분 춥고 배고픈 사람들입니다.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타개해 나갈 것인가가 항상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뉴스앤조이> 형편도 꼭 그렇습니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최근 기자들과 합심 기도하는 시간에도 목이 메어 도저히 기도할 수 없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주님께 엎드리면 저는 <뉴스앤조이>를 위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살려만 주십시오". 그래도 안 살려주시면 하나님 역사의 신비에 모든 것을 맡기고 기쁨으로 그 길 가다가 조용히 사라지겠다고 마음을 다져보면서도 말입니다.

최근 기독교사운동과 관련된 소중한 모임에서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의 협조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까 논의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때 어느 참석자가 힘주어 말했습니다. "지금은 우리 운동을 교회에 알리려고 하기보다는 더욱 응축시키고 숨겨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운동의 실질적 수혜자인 학생들의 입을 통해서 알려져야 합니다." 오랫동안 제 마음속에 꼭꼭 담아두고 싶은 말입니다. 물론 이는 우리의 외연을 넓히는 일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입다가 생각납니다(사 11:11). 그는 큰 용사로서 객관적으로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혈연에 큰 약점이 있었습니다. 기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결국 중심에서 밀려납니다. 그러나 그는 마음에 쓴 뿌리를 품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욱 붙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몰려오는 힘없는 건달들을 품었습니다. 조용히 내실을 기한 것입니다. 그 가운데 기회는 왔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사사가 됩니다. 이런 축복이 한국교회 개혁을 열망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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