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강남 땅 한복판에 자리 잡은 천 년도 넘은 어느 고찰에서 땅 밟기를 한 몇몇 용감한 크리스천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 덕에 땅 밟기가 요즘 장안의 화제다. 솔직히 말해서 필자도 예전에 뭘 잘 몰랐을 때, 땅 밟기 여러 번 했다. 물론 소심해서 남들 모르게 속으로만 중얼거리며 기도와 찬송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땐 정말 아주 진지하고 순수(?)했다. 그래서 이번 보도를 보면서 필자는 속으로 적잖이 뜨끔했다. 아마 필자와 비슷한 심정인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뉴스앤조이>에 관련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뉴스앤조이>에 올라오는 글들 대부분은 땅 밟기를 미신적 행위요, 비성서적 행위라고 규탄하고 있다. 어느 분은 명진 스님과 봉은사 신도에게 사과의 글까지 써서 게재했다. 하지만 모 선교 단체의 최 대표는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분위기다. 그는 말하기를 "할 수만 있으면 불교 절간에서뿐만 아니라 그분들의 집에까지 방문하여 우상에서 벗어나도록 축복하며 기도해야 한다"며 땅 밟기를 두둔했다. 거 참.

1. 문제의 핵심

땅 밟기, 과연 옳은가, 그른가? 해야 하는가, 하지 말아야 하는가? 땅 밟기가 옳지 않다면 대체 뭐가 문제인가? 이에 대해서 많은 의견들이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봉은사 땅 밟기 문제를 논하면서 많은 분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문제의 핵심이 단순히 땅 밟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핵심은 보다 더 깊은 데 있다. 따라서 땅 밟기를 안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의 핵심인가? 그것은 바로 기독교 제국주의이다. 사실 2007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아프가니스탄 선교 팀 피랍 사태나 공중파 TV를 통해서도 문제시된 무례한 노방 전도 등도 따지고 보면 봉은사 땅 밟기와 비슷한 문제다.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장관 및 정부 관료들, 기독교 편향적 MB 정부의 종교 정책, 거기에 장단을 맞추는 주류 개신교회의 맞장구 등도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 봉헌, 소망교회 신도 내각, 불교 폄훼, 단군상 파괴, 성시화 운동 등도 따지고 보면 땅 밟기와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는 해프닝들이다. 기독교로 대한민국을 정복하고,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제국주의적 열정인 것이다.

천 년 전, 이교도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해방시키겠다며 군대를 동원했던 십자군들처럼, 이 시대의 땅 밟기 용사들은 불교도의 손에서 사찰과 명승지를 탈환하겠다며 거룩한 전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계각층에서 크리스천들이 고지를 선점하고, 각 분야와 영역을 탈환하겠다고 열정을 바치고 있다. 비록 그들의 열정은 순수하고 갸륵하지만 그러나 그들의 신앙은 성서 계시와 무관하다. 그들의 열정과 행동의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기독교 제국주의의 영성이다.

2. 유일신관과 기독교 제국주의

1) 성서와 제국주의

그렇다면 기독교 제국주의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출현한 것일까? 기독교 제국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오해는 기독교 제국주의의 기원을 성서의 유일신관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성서는 야훼만이 유일한 신(神)이며, 예수만이 유일한 구주(救主)라고 가르친다. 성서가 하나님을 유일신(唯一神)이라고 했을 때 이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고 다른 신은 전부 가짜라는 뜻이다. 구약 성서에 따르면 야훼 이외의 다른 신들은 모두 우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이 십계명의 제1계명이다. 같은 논리로 신약 성서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된 구원의 길이며 다른 길은 없다고 가르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행 4:12)

언뜻 보면 이러한 성서의 가르침으로부터 기독교 제국주의가 출현한 것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무엇보다도 구약에 나타난 거룩한 전쟁, 헤렘(herem)도 유일신 사상으로부터 기독교 제국주의가 출현한다는 생각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헤렘은 그리 단순한 주제가 아니니 여기서는 일단 건너뛰기로 하자. 다만 구속사라는 보다 큰 맥락에서 봤을 때 헤렘과 제국주의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점만 여기서 밝히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우리는 구약의 헤렘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이 계시의 궁극이요, 완성이며,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든 판단의 최종 심급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살피면 된다. 과연 예수 그리스도는 제국주의를 지지하는가?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은 기독교 제국주의를 전혀 지지하지 않는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삶 속에는 제국주의에 대한 혐오로, 그리고 제국주의적 지배에 대한 격렬한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구상의 모든 것들을 단일 의지의 지배하에 두려는 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제가 하늘에는 하나의 태양이, 땅에는 하나의 황제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 그는 정확히 제국주의의 본질을 말했다. 제국주의는 나와 다른 남을 용납하지 않는다. 타인을 집어삼켜서 자기화한다. 제국주의 체제하에서 지상의 모든 것들은 단일한 통치 의지의 지배하에 종속된다. 타자는 없고 확장된 자아만 존재한다. 다양성은 사라지고 획일성만 남는다. 자유는 억제되고 지배만 존재한다. 이것이 제국주의다.

하지만 예수는 우리를 지배하기 원치 않으셨으며, 도리어 우리를 자유케 하셨다. 예수는 황제가 되시기보다는 형제가 되는 것을 기뻐하셨다. 그리고 제자들더러 세상의 주관자나 대인과 같이 남을 지배하려고 하지 말라고 도리어 남을 섬기는 종이 되라고 명하셨다. (마 20:25~27)

복음서는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예수님의 모범으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 사역하시던 당시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면서도 예수를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요한은 이를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않으려면 그런 사역을 하지 말라'며 그들의 축귀 사역을 금하고자 했다. 하지만 주님은 요한에게 그들을 그냥 놔두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막 9:40)  주님의 이 말씀에 따르면 주님을 적극적으로 반대만 하지 않으면 모두 주님의 편이다. 주님은 주님의 길을 가시고, 다른 이들은 다른 길을 가도록 허용하신 것이다. 그들을 포섭하지도 맞서지도 경쟁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놔두셨다.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일이 생겼다. 제자들이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들어가서 주님이 묵으실 곳을 마련코자 했다. 하지만 예수 일행의 행선지가 예루살렘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 마을 사람들은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분노한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께 구한다.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눅9:54)  흥미롭게도 이들의 기도는 땅 밟기 용사들의 기도와 많이 닮았다. "주님, 이 사찰이 무너지게 하시고 불상이 파괴되게 하소서. 이 땅에 주의 교회가 세워지게 하시고, 예배하는 무리가 서게 하소서." 하지만 주님은 제자들의 그러한 요구를 듣고 격노하셨다. 이때 주님은 제자들의 제국주의적 영성에 분노하셨던 것이다.

3. 판테온과 콜로세움

사도들의 신앙의 핵심은 예수가 '주(kyrios)'시라는 것이다. 베드로는 군중들 앞에서 이렇게 선포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2:36) 여기서 주(主)란 퀴리오스(kyrios), 즉 왕이나 황제와 같은 주군(主君)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퀴리오스라는 말은 그 자체로 '유일신관'을 함축하는 말이었다. 어느 나라든 왕은 한 명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퀴리오스도 한 분뿐이다. 그리고 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이 복음의 정수요, 사도적 신앙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유일신관이 초대 교회가 로마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주된 이유였다. 사실 로마의 종교 정책은 대단히 관대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제국과 카이사르에게 충성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소수 민족들의 종교나 문화에 대해서 시시콜콜하니 간섭하지 않았다. 그들의 관대함, 곧 톨레랑스의 정신이 상징적으로 잘 나타나 있는 곳이 바로 판테온(Pantheon)이다. 판테온은 축구공을 반으로 잘라 놓은 듯한 모양의 거대한 돔형 신전이다. 판테온 신전에는 어떤 신이 안치되었을까? 그 안에는 로마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세상의 모든 신들이 다 안치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신전을 판(pan)-테온(theon), 곧 만신전(萬神殿)이라고 불렀다.

물론 로마 정부는 기독교인들이 원한다면 예수도 그 안에 안치해 줄 수 있노라고 제의했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러한 제안을 무척이나 혐오스럽게 생각했다. 감히 그리스도를 이방신들과 동격으로 여기다니! 그리스도 이외의 참 구주는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만신전의 숱한 신들 중 하나(a god)일 수 없었다. 하나님도 한 분이고, 그리스도도 한 분이고, 퀴리오스도 한 분이다. 그분은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이것은 분명 그들의 신앙이 가지는 극단적인 배타성을 잘 보여 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초대 교회의 이러한 신앙은 로마 황제의 권위도 상대화시켜 버렸다. 로마 정부는 황제를 제국민이 전적으로 충성을 바칠 지존자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소위 '황제 숭배' 이데올로기의 요체다. 하지만 초대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로마 황제의 행정 기능만 인정했을 뿐 상징적 권위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절대 충성을 바칠 대상이 아니었다. 왜냐? 로마 황제는 퀴리오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저 한 인간일 뿐이었다. 퀴리오스는 오직 그리스도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 숭배를 단호히 거부했다. 바로 이것이 박해를 자초한 원인이었으며, 초대 교인들을 콜로세움의 사자 밥이 되게 만든 이유였다.

초대 교인들의 신앙은 역사상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배타적인 유일신 신앙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대 교인들은 결코 제국주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교도를 정복하고, 국가를 포섭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들은 늘 스스로를 국가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자들로 여겼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신비로운 타자로 존재했으며, 그러한 타자성을 거룩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교회는 결코 기독교 신앙으로 제국을 정복하겠다는 정복주의를 취하지 않았다. 2~3세기로 넘어가면 1세기 때 그토록 활발히 행했던 전도와 선교조차 별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교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외부인의 출입을 꺼렸다. 따라서 기독교인이 주님의 이름으로 칼과 창을 가지고 이교도를 굴복시켜 개종시키겠다는 생각은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그들은 스스로를 제국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요, 그들을 섬기는 자들로 여겼을 뿐이다.

4. 크리스텐둠(Christendom)과 기독교 제국주의

기독교 제국주의는 성서의 산물이 아니다. 성서의 유일신 사상은 기독교 제국주의와 무관하다. 기독교 제국주의가 역사에 제대로 등장한 시점은 313년 기독교 공인 이후이다. 그때 비로소 제국과 기독교가 결합하게 된다. 기독교(Christianity)와 제국(kingdom)이 결합하여 생겨난 체제를 크리스텐둠(Christiendom)이라고 한다. 크리스텐둠은 보통 기독교 국가 체제, 혹은 기독교 왕국 등으로 번역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크리스텐둠이라고 하겠다.

크리스텐둠은 기독교와 국가 체제가 결합하여 만들어낸 유럽의 거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총체를 말한다. 학자들은 크리스텐둠이 4세기에 등장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약 1,700년 동안이나 서구 사회를 지배해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크리스텐둠이 기독교 제국주의의 기원이 된다. 그리고 이 기독교 제국주의가 이번 봉은사 땅 밟기를 가능케 한 원인이기도 하다.

크리스텐둠에서 기독교는 유일한 종교(the Religion)며, 기독교 진리도 유일한 진리(the Truth)가 된다. 여기까지는 성서의 유일신관과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 크리스텐둠에서 이교도는 개종되거나 아니면 타도되어야 할 적이 된다는 사실이다. 타 종교는 일절 허용되지 않는다. 타 종교는 색출해서, 발본색원해야 할 악의 뿌리다. 이교도와 이단자는 종교 재판에 회부되어 고문하고, 죽여야 할 악마의 자식들이다. 크리스텐둠에서는 원칙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없다. 신앙의 자유도 없고, 양심의 자유도 없다. 바로 이것이 크리스텐둠에서의 기독교 제국주의의 특징이다.

기독교 제국주의는 기독교가 최소한 두 가지의 제국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면서 만들어졌다. 하나는 철학적 영향이고, 또 하나는 국가의 영향이다. 철학으로부터 기독교는 인식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고, 국가로부터는 정치적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는다.

1) 인식적 제국주의의 영향

가. 헬라 철학의 인식적 제국주의

첫째는 인식적 제국주의다. 이것은 헬라 철학과 개념 때문에 만들어진 일종의 인식적 허위의식이다. 헬라 철학은 진리는 기본적으로 명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진리는 '만유인력의 법칙' 혹은 'E=MC2'등과 같은 명제, 혹은 단순한 공식(formula)의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명제 중 참인 명제를 진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진리는 자명한 것, 객관적인 것, 보편적인 것이라고 가르쳤다.

예컨대, '2+3=5'라는 수학 명제를 생각해 보자. 수학에서 이 명제는 참이다. 그리고 이것은 자명하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다. 자명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수식은 믿고 말고 할 것이 없이 스스로 당연하다는 뜻이다. 만일 누가 '나는 이것을 안 믿어'라고 말한다면 그는 분명 또라이일 것이다. 그가 믿건 안 믿건 그의 반응에 관계없이 그 명제는 참이다. 이것이 자명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헬라 철학의 진리에서 믿음은 인식으로 대체된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아는 것이지 믿는 것이 아니다.

진리가 자명한 고로 그것은 객관적이다. 어떤 명제가 참이 되는 것은 인간의 반응과 무관하다. 인간의 주관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만일 주관에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가 객관적이라는 뜻은 지구상의 70억 인구에게 진리라는 뜻이다. 위의 수식은 미국인이나, 중국인이나, 한국인이나 다 똑같이 보편적인 진리다. 진리는 모두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요구다. 그리고 그것은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나,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 할 것 없이 늘 진리다. 진리는 항구적이며, 영원하며, 불변하다.

한편, 만일 어떤 명제가 참이 아니면 어떻게 되는가? 그것은 거짓이다. 그리고 어떤 명제가 거짓이라는 것은 참인 명제만큼이나 자명하고,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 따지고 말고 할 것 없이 거짓인 명제는 거짓이다. 그리고 그것이 만일 거짓이라면 그것은 배제되어야 한다. 모든 명제는 참 아니면 거짓이다. 중간은 없다. 만일 참이나 거짓을 판단할 수 없는 언명이 있다면 그것은 명제가 아니다. 모든 유의미한 언명은 명제며, 그것은 참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든지 둘 중 하나다.

중요한 것은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어떤 명제가 진리나 혹은 거짓으로 판단되면 그다음에는 따지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진리는 무조건 수용하고, 거짓은 무조건 배척해야 한다. 이 과정은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다. 이것이 지난 3,000년간 서구인들을 지배해 온 진리관이다.

최근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서양 철학의 이러한 진리 개념을 해체하고 나섰다. 그들은 서양 철학이 소위 진리라는 이름으로 객관성의 신화를 유포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특정 집단의 신념을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중세 교회는 진리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교리를 강요했으며, 근대 계몽주의자들 역시 진리라는 이름으로 과학적 주장을 강요했다. '진리'라는 말은 포장만 그럴듯할 뿐 선택의 여지없이 무조건 수용해야만 하는 강요다. 이것이 바로 인식적 제국주의이다.

나. 기독교의 수용

기독교는 2세기가 지나면서 헬라 철학의 주요 개념과 방법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기독교 진리는 점차 헬라 철학의 옷을 입게 되었는데, 그와 함께 기독교는 점차 인식적 제국주의로 무장하게 된다.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으면서 기독교는 역사를 철학화하고, 계시를 개념화하기 시작한다. 성서의 계시를 기독론, 삼위일체론, 신론 등 점차 수학 공식 같은 간단하고 깔끔한 개념과 명제, 공식으로 정식화했다. 그리고 이렇게 정리된 명제와 개념이 진리라는 명예와 권위를 얻게 된다.

물론 이러한 명제와 개념은 성서에서 추출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계시 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다분히 철학적인 개념이고 명제다. 통상 성서에서 추출된 정식화된 진리를 소위 신조(creed)라고 부른다. 교회는 신조를 만듦으로 엄청난 유익을 얻음과 동시에 인식적 제국주의에 사로잡히고 만다.

니케아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을 두고 아리우스파와 아타나시우스파가 무시무시한 대혈전을 벌였다. 아리우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비슷한 본성(homoiousios)을 지니셨으나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고 주장했고,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완전히 동일한 본성(homoousios)을 지니셨다고 주장했다. 두 개념은 거의 비슷하고 'i'(이오타) 하나만 달랐다.

하지만 둘 다 진리일 수는 없었다. 하나가 진리면 다른 하나는 거짓이어야 했다. 결국 아타나시우스의 동일 본질론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아리우스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사실 이 문제는 간단히 다룰 수 없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칼로 두부 자르듯 싹둑 자르기 애매한 그런 복잡한 문제이기도 하다. 성서는 교리집이 아니며 그래서 양편의 주장 모두를 지지하는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에 대해서 교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어야 했을까? 교회가 특정 교리를 정통(orthodox)으로 여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다른 교리를 선택할 자유까지 박탈한 것은 분명 제국주의적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의회의 결과 아타나시우스의 신학이 정통으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신조가 만들어졌고, 그 신조는 진리의 정수요, 참과 거짓의 척도가 되었다. 신앙이란 정통 신조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불신앙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점차 신조는 성서보다 더 진리가 되었다. 이와 함께 기독교 진리는 점차 헬라 철학의 인식적 제국주의에 물들게 된다.

2) 정치적 제국주의의 영향

이와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식적 제국주의가 정치적 제국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기독교 진리는 교회의 힘과 함께 국가가 칼의 힘으로 수호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헬라 철학적 전제에 따르면, 만일 기독교 진리가 보편적 진리라면 그것은 교회에서뿐만 아니라 국가에서도 진리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교회를 보호해야 할 신성한 의무를 지닌 국가라면 마땅히 기독교 진리를 수호해야 하는 의무도 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어떤 주장이 교회에 의해서 거짓이라고 판명되면 그러한 이교도나 이단은 국가가 응당 척결하고 처단해야 할 것이다. 진리는 교회 내의 진리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진리가 되기도 했다. 국가 진리! 이것이 크리스텐둠에서의 기독교 진리의 모습이다.

이러한 식의 전통이 수립된 것은 다름 아닌 325년 니케아에서 열린 니케아 공의회 때였다. 니케아 공의회는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 간의 기독론 논쟁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모인 최초의 보편 공의회다. 흥미롭게도 이 회의는 주교들이나 교황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개최한 회의였다. 왜 그가 공의회를 개최했는가? 그는 쇠락해 가는 로마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서 강력한 제국의 통일을 원했고, 이를 위해서 기독교를 제국 통일의 수단으로 삼고자 했다. 즉 그는 기독교가 로마의 통치 이데올로기 및 정신적 통일 에너지를 쏟아내 주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알지도 모를 무슨 이상한 기독론 논쟁 때문에 기독교가 둘로 갈라질 판이었다. 콘스탄티누스에게 있어서 기독교의 분열은 곧 제국의 분열이었다. 따라서 무슨 수가 있어도 기독교의 분열을 막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그가 공의회를 개최한 이유다. 그는 자금을 대서 제국의 주교들을 니케아로 불러들인 다음 죽을 쑤든 밥을 짓든 하여간에 기독교 교리를 하나로 통일해 놓으라고 요구했다. 제국의 통일이라는 정치적 대의에는 아무래도 아타나시우스의 기독론이 더 잘 어울리기는 했지만 그에게 교리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의 진리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길고 지루한 논쟁 끝에 아타나시우스의 기독론이 정통으로 확립되었다. 아리우스는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으며 동시에 황제에 의해서 추방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리우스가 교회로부터 정죄받았을 뿐만 아니라 제국으로부터 정치적 처벌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인 것은 이러한 정치적 처벌이 제국과 교회를 통일시키기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기독교의 진리는 교회의 영적 권위뿐만 아니라 국가의 칼의 권세에 의해서도 수호를 받게 되었다. 기독교 진리와 정치적 제국주의가 결합되고 만 것이다.

5. 기독교 제국주의의 비극

정치적 제국주의와 기독교 진리가 결합하자 숱한 비극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레고리 9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이노센트 4세에 의해서 재가를 받은 종교 재판은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의 진리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수많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인 끔찍한 살인 도구가 되었다. 불행히도 종교 개혁가들조차 이러한 종교 재판을 거부하지 않았다. 루터, 칼뱅, 츠빙글리 등 종교 개혁가들도 자신들이 창안하여 만든 정통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이단자를 재판에 회부하여 칼의 권세로 그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다. 또한 거의 500년간이나 신교와 구교를 막론하고 기독교는 마녀를 색출하고자 무진 애를 썼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종교 재판의 가장 큰 희생자들이 다름 아닌 아나뱁티스트들이었다.

크리스텐둠 체제 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과는 달리 이교도는 회심하지 않으면 죽어 마땅한 죄인이 되었다. 신앙이란 국가의 공인을 받은 신조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것이 되었으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반국가적 범죄를 저지르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알비파, 왈도파, 가타리파 등이 무자비하게 숙청되었으며, 유대인들은 강제로 개종 당했다.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게토(ghetto)에 처넣었다.

또한 이교도로부터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서 십자군이라는 이름의 군대까지 모집되었다. 약 200년에 걸친 8회 이상의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 제국주의의 광기를 잘 보여 준다. 4차 십자군 전쟁은 12~13세도 되지 않은 소년병들에 의해서 치러졌는데, 그토록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들의 신앙에도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은총을 베풀지 않으셨다.

십자군 전쟁은 다양한 형태로 변신을 꾀했는데, 신교와 구교 간의 30년 전쟁을 비롯한 근대의 식민지 개척과 정복적 해외 선교 등으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났다. 콜럼버스나 코르테스 같은 탐험가들은 군대를 이끌고 총과 칼로 식민지를 개척했으며, 그들이 개척한 곳에는 늘 교회가 세워졌다. 청교도들은 북미에서 수만 명의 원주민을 죽이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인디언을 추방한 뒤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자신들의 도시를 건설했다. 또한 선교사들은 대포와 총, 돈, 상품, 때로는 아편과 함께 복음을 들고 선교지로 들어갔으며, 선교 사업과 노예 매매를 겸업하느라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20세기 중반, 서구 사회에서는 크리스텐둠이 거의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것은 거의 1,700년 만에 처음 일어난 일이다. 크리스텐둠 이후의 세계를 학자들은 후기 기독교 사회(Post-Christianity Society)라고 부른다. 후기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제국주의는 더 이상 용납되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 서구의 크리스천들에게 새롭고 충격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서구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 중에는 '신앙의 자유'를 재해석하고, 재발견하려는 노력도 포함되어 있다. 기독교 제국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번 땅 밟기 사태의 문제의 본질이다. 이번 땅 밟기 사태를 통해서 후기 기독교 사회에 들어선 지금 '신앙의 자유'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답을 잘해 줄 수 있는 이들은 바로 아나뱁티스트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앙의 자유' 문제를 지난 500년 동안이나 계속 탐구해 왔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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