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놀이, 전쟁?
처음 축구가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놀이에서 비롯되었다. 특별한 장비도 없이 그저 공 하나면 많은 아이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이다. 서로 몸을 부딪히고 놀다보면 어느덧 흐르는 땀을 닦으며 동무들 간에 정이 쌓여 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축구는 이미 놀이의 의미를 잃어버렸고, 이제 '축구전쟁'이라는 말까지 한다. 실제로 축구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 나라도 있다.
  
현대 축구는 극도로 민족주의적 감정을 고양시키고 있다. 광적인 일부 축구 팬들은 자국의 축구 승리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리고 16강 보너스는 얼마이고, 8강, 4강, 우승이면 얼마 하는 식의 돈 축제가 되어 가고 있다. 인류의 놀이 공간인 월드컵은 이제 전쟁터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16강에 들어가지 않으면 나라가 곧 망할 것처럼 야단이다. 월드컵을 통해 바라본 우리 사회는 지금 승리지상주의 빠져있으며, 축구 열광주의에 도취되어 있다. 심지어 '4천만 온 국민을 붉은 악마로'를 외치는 응원단의 슬로건은 마치 민족주의의 부흥을 외치는 듯하다. 이것은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적 소비적 향락주의에 젖어 있으면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공허해진 것을 스포츠를 통해 채우려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분출구를 월드컵이라는 축구를 통해 찾아보려는 극도로 정신분열적 증세의 한 단면이라 하겠다.

'월드컵 신앙?'을 믿습니까?
문제는 한국 기독교도 여기에 편승해 '월드컵 신앙'(?)을 부르짖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한국교회의 축복제일주의는 승리주의와 만나고, 신앙의 열광주의와 축구의 열광주의도 자연스레 하나가 되어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다.
  
그 비근한 예가 지난 3월 31일 상암축구경기장에서 개최된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드러나는데, 본 예배의 주제가 '부활의 영광! 월드컵 승리!'라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다. 과연 예수의 부활과 월드컵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설교자로 나온 어느 목사는 한국축구의 승리를 확신하면서 "이제 한국축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을 믿는다. 미국팀에는 미안하지만 자살골 한 골 먹으면 한국은 16강에 올라갈 것이다. 폴란드와의 경기에서 한국은 패널티킥을 얻을 것이다. 이때 패널티킥을 못 넣는 사람은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할 것이다. 포루투칼 경기에서 한국이 한 골 넣으면 16강에 오른다"라고 말했다. 패널티킥을 넣지 못하면 한강물에 빠져죽어야 한다는 말을 목사가 할 말이며, 그것도 설교에서 할 수 있는 말인가. 이것은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얼마나 승리지상주의에 빠져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렇게 한국교회와 지도자들이 월드컵 승리를 외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원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한국교회 속에 흐르고 있는 신앙이란 승리지상주의요, 자신이 원하면 무조건 소유하고 쟁취해야 직성이 풀리는 소유지향적 신앙이지 않는가. 과연 이기면 된다는 승리지상주의가 기독교적인 신앙일까. 내가 이기면 누군가가 질 수밖에 없는데, 그들에 대해서 기독교 신앙은 무시해 버리고 승리에 도취되면 그만이란 말인가.
  
민족주의와 승리주의
우리는 지금 월드컵을 맞이하여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보듯 한국교회와 사회 일각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주의적 승리지상주의를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우리 사회와 기독교를 더욱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반신앙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자고로 승리주의나 민족주의는 기독교신앙과 대치되는 개념이다. 기독교 국가인 독일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워 세계전쟁을 일으킨 히틀러의 행위가 기독교적일 수 없듯이, 역시 오늘날 기독교국가라 자처하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승리주의, 민족주의를 내세워 세계를 미국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포악성을 드려내는 것이나, 최근 일어나는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나, 또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시온이즘을 내세워 갈곳 없는 팔레스틴의 힘없는 백성들을 무력으로 진압하려 하는 것을 보면서 승리주의와 민족주의라는 것은 예수의 정신과 너무나 거리가 먼 것인 것을 알 수 있다.

민족주의란 자국을 보호하려는 그 이면에 자신의 국가만 절대 우월하고 다른 국가에 대하여는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으로 출발한다. 흔히 이단가들이 자신과 자가 속한 집단만을 절대 진리, 절대 구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그 맥이 같다고 할 것이다.

민족주의를 내세워 자국의 이익과 우수성을 드러내려는 곳에는 어김없이 폭력과 살생과 전쟁이 벌어지고, 그 곳에서는 힘없고 갈 곳 없는 백성들만이 희생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런 반기독교적이요 반인륜적인 승리주의와 민족주의가 다시 월드컵을 계기로 이 땅의 기독교회 지도자들과 국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예수의 사랑과 평화가 한반도에, 그리고 세계에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몸소 가르쳐 주신 것은 민족이나 이념, 지역이나 시대를 초월한 사랑의 보편주의이다. 여기에는 민족도, 이념도, 승리나 실패도, 이긴 자나 진자도 없는 사랑과 평화만 있는 것이다.

이 땅에 기독교인들이 월드컵을 바라보고 맞이하는 자세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의 구주로 오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월드컵이라는 인류의 잔치에서 드러나고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 함께 마음을 모으고 준비하는 것이다.

축구라는 놀이를 통해 지구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평화가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에 실현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할 한국 그리스도인이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의 명칭문제라는 비본질적인 문제에 매달리면서 신앙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양한 문화의 한 면으로 수용하면서 그들을 어떻게 하면 건전하고 예수의 보편적 사랑으로 끌어안아 인류 평화의 제전으로 승화시켜 나가야할 마땅한 의무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연세대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침을 주셨던 은사 유동식 선생님께서 내가 목회하는 충남 아산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가슴에 남는다. "월드컵은 60여 년 전에 피지배자와 지배자 관계에 있던 한국과 일본이 함께 엮어내는 세계평화의 제전이라는 점에서 감격스럽다." 선생님은 일제시대를 지나 분단 시대를 살아오면서 세계인이 함께 모이는 월드컵을 통해 지배와 억압, 그리고 분단을 극복하고 참된 평화와 예수의 사랑이 한반도에, 그리고 지구촌에 이루어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까지 유럽의 선진국이나 미국과 같은 패권주의 국가들이 자국의 힘을 자랑하는 것으로 머물렀던 과거의 월드컵을 넘어서 진정한 화해와 평화를 실현하는 월드컵 본래의 목적을 이루는 길이 될 것이다.

이 땅에서 세계인의 축제인 월드컵이 열린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한국이 승리해서 16강에 올라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아니라, 승리주의와 민족주의에 빠져 타민족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잠재우고, 이 월드컵을 통해 지구촌 유일의 분단 국가인 우리 민족이 통일을 앞당기고 그래서 세계 평화를 이루라는 뜻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그것도 우리를 지배했던 일본을 끌어안고 그들과 함께 월드컵을 지구촌 대 축제로 벌려보라는 진정한 뜻이 있음을 깨달아 알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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