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 경영권을 쥐고 있는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 가족 간 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조용기 목사의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 장남 조희준 씨가 노승숙 <국민일보> 회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나선 데 이어, 조 목사가 김 총장을 <국민일보> 회장으로 추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국민문화재단 이사회 재소집을 지시해 <국민일보> 안팎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문화재단(이사장 박종순·이하 재단)은 <국민일보> 주식을 100% 소유한 대주주로, 오는 18일 개최될 임시 이사회에서 '<국민일보> 주총 소집' 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조용기 목사는 앞서 지난달 27일 재단 임시 이사회에서 김성혜 총장을 재단 이사와 <국민일보> 회장 겸 발행인으로 추천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국민일보>와 재단 일부 이사들이 이사회 정관에 규정된 '사전 통지' 절차를 밟지 않은 데다, <국민일보> 발행인에 대한 임명권이 <국민일보> 이사회에 있다고 주장하며 안건 상정 자체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 김성혜 한세대 총장과 조용기 목사의 장남 조희준 씨. (사진 제공 <미디어오늘>)
조 목사는 재단 이사로 올라있지만, 임시 이사회가 연달아 소집된 데는 '조심(조용기 목사 의중)'이 반영됐다는 게 교계 안팎의 평가다. <국민일보> 발행인 교체가 논의된 이날 역시 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국민일보> 노승숙 회장과 조민제 사장은 이사회에 불참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포스트 조용기' 포석?

조용기 목사가 <국민일보> 발행인을 교체하려는 것과 관련, <국민일보>는 그 배후에 김성혜 총장과 조희준 씨가 있다고 보고 있다. <국민일보>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백화종 부사장·이하 비대위)와 전국언론노동조합 <국민일보>지부(지부장 조상운·이하 노조)는 지난달 3일과 이달 8일 각기 성명과 특보를 내 김 총장이 <국민일보> 사옥 11층 본인의 사무실로 노승숙 <국민일보> 회장을 부른 뒤 4시간 동안 붙잡아 둔 채 사퇴를 종용했다고 폭로했다.

10월 3일자 비대위 특보에 따르면 김 총장은 지난 8월 28일 오후 4시부터 몇 번이고 방을 나가려던 노 회장을 가로막은 채 자신이 직접 작성한 '사퇴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다. 각서에는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로 <국민일보> 회장과 발행인을 9월 28일자로 사임합니다. 후임 발행인으로는 김성혜 한세대 총장을 추천합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노 회장을 찾아와 '사전 경고'한 것이나(7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들이 노 회장을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한 것(8월) 역시 '노승숙 회장 퇴진 → 김성혜 총장 발행인 취임'이란 시나리오대로 움직였다는 게 <국민일보> 노조와 비대위의 주장이다. 노 회장은 지난달 17일 사내 게시판에 사의를 표한 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 <국민일보> 박승동 비서실장은 "노 회장이 현재 서울에 없으며 연락이 닿지 않은 지 꽤 됐다"고 말했다.

교계에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포스트 조용기'를 노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안의 세력 다툼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조 목사가 지난 2006년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직을 이영훈 목사에게 넘기면서, 조 목사 가족과 측근을 중심으로 불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 10월 3일자 <국민일보> 비대위 특보.
김성혜 총장의 경우 그 어머니인 고 최자실 목사가 조용기 목사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개척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조희준 씨는 조 목사의 장남이라는 점에서 '조용기 이후' 교회 내 지분과 권한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국민일보> 안팎에서는 파악하고 있다. 노 회장을 검찰에 고소한 설상화 장로 역시 조 목사의 매제로서 평소 '장자 승계론'을 주장해 왔다는 전언이다.

<국민일보> 기밀 자료를 조희준 씨에게 넘겨 지난달 3일 해고된 김 아무개 전 경리팀장의 인사위원회 진술 내용도 이를 뒷받침한다. 김 전 팀장은 이 자리에서 "목사님(조용기)이 살아 계실 때 재산 정리를 해 놓아야 시끄러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총장님(김성혜) 생각"이라면서 "총장님이 그동안 여러 차례 노승숙 회장에게 기회를 줬는데도 노 회장이 버티는 바람에 상황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밝혔다. 조희준 씨 역시 지난달 7일 조상운 <국민일보> 지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의 유고에 대비해 미리 재산을 정리해 놓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계 정통한 한 인사는 "교회 안 세력을 넓히는 데 언론사가 요긴했을 것"이라며 "복지회나 재단 이사를 맡는 것보다 이미지 제고 면에서 <국민일보>를 갖는 게 낫고 이를 발판으로 세 확장을 꾀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신문사가 교회 것인가"

문제는 이런 인식 자체가 교회와 그에 기반한 언론사를 개인 재산으로 여긴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국민일보> 비대위는 3일 특보에서 "김 총장이 여의도순복음교회 당회의 투표로 선출된 이영훈 담임목사 체제를 무시하고 '부부 세습' 또는 '부자 세습'을 노리고 있다"며 "<국민일보>를 자신의 비판 세력을 견제하는 무기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인재 한세대 총장비서실장은 10월 3일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국민일보> 비대위는 현 사태에 전사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조상운 <국민일보> 지부장은 "순복음교회든 <국민일보>든 결코 조 목사 집안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면서 "교계 안의 세력 다툼과는 별개로 <국민일보>를 사유화하려는 세력에 단호히 맞서겠다"고 말했다.

백화종 부사장(비대위원장)은 "비대위는 어차피 법적 소송까지 가겠다는 방향이 섰다"며 "김성혜 총장과 조희준 씨 쪽에 계속 면담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고, 아직까지 답은 없지만 할 수 있는 한 대화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조희준 씨에게 기밀문서를 빼돌린 김 전 경리팀장을 지난달 해고했고, 김 씨를 상대로 조만간 '업무 방해'와 '절도' 혐의로 고발할 계획이다. 또 노승숙 회장을 고소하고 사퇴 압박을 가한 쪽에 '명예훼손', '무고죄', '강제죄' 등을 묻는 방침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일로 가장 곤혹스러운 처지로 내몰린 것은 조민제 <국민일보> 사장이다. 김성혜 총장은 조 사장의 어머니고, 노승숙 회장은 조 사장의 장인이기 때문이다. 조 사장은 현재 비대위에 참여하고 있지 않지만 재단 이사회에 불참하고 노승숙 회장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있다. 나름대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국민일보> 비서실 정재호 미디어전략팀장은 "조민제 사장이 '경영권 인사권을 흔들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맞서겠다'고 국·실장 회의에서 몇 차례 얘기했다"며 "사장의 의사를 반영한 말로 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희준 전 사장 시절 경영 위기로 큰 혼란을 겪었던 <국민일보>는 조민제 사장 체제 하에서 나름대로 안정적 경영 기반을 갖추어 얼마 전까지 보도 채널 진출을 적극 추진했지만, 노 회장 고발 사건 등이 터지면서 이를 포기했다. 부사장이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국민일보> 계열사 임직원까지 성명전에 나선 것은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일보> 내부의 위기 의식과 반발 정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민일보>는 창간 22년 만에 또 한 번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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