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악마라는 명칭이 사탄적이라는 말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붉은악마라는
응원단 명칭에는 결사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치는 한국교회가 왜 올림픽 때마다 등장
하는 성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사진 붉은악마사이트에서)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월드컵 개막은 사흘 밖에 남지 않았고 시간적으로 볼 때 기독교계에서 추진해 온 붉은악마 명칭 개명운동은 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는 좀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한기총 등 기독교계를 나름대로 대표하는 단체들과 일부 교단들은 서명운동, 청와대 탄원, 각종 기도회와 집회 등 동원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붉은 악마의 개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기독교 일각에서는 '백의천사'라는 일종의 대항군을 조직하기도 했다.

필자는 붉은악마 개명운동을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면서 느낀 세 가지 유감된 점을 이 자리에서 언급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그 세 가지를 하나씩 밝히기 전에, 붉은악마라는 명칭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먼저 밝히는 것이 순서인 것 같다.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그리고 선교정보사역자로 살아가고 있는 필자 역시 모든 기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좋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바꿀 수 있다면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일각에서 벌였던 개명운동에 대해서 분명히 유감스러운 부분이 없지 않다.

1. 유연한 사고가 아쉽다.

▲붉은악마 응원단이 상징으로 내걸고 있는 치우천왕기

붉은악마의 어원은 아마도 83년 박종환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대표팀이 세계 4강에 오를 당시 멕시코 현지언론이 한국선수들에 대한 애칭으로 먼저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현재의 응원단 명칭으로 이어진 것 같다. 당시 현지언론이 한국 선수들에게 악마라는 별명을 붙인 것은 한국팀의 실력이 의외로 강해 상대팀에게 많은 두려움을 주고 주눅 들게 하는 존재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결코 당시의 한국 선수들이 영적으로 사악하다는 의미로 붙여진 것은 아니다.

또 현재 우리 응원단의 명칭으로서의 붉은악마 역시 응원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우리 선수들이 실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해 월드컵 경기를 승리로 이끌자는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지, 결코 우리 응원단원들이 사탄숭배자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아마도 붉은악마 회원들 가운데는 기독교인도 적지 않을 것이다.) 즉 어원 자체는 종교적인 어원이라 하더라도 현재 사용되는 의미 자체는 전혀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자들께서 좀더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하나의 예를 들고자 한다. '야단법석'이라는 말이 있다. 필자가 가지고 있는 국어사전에는 야단법석이라는 단어를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몹시 소란스럽게 떠들거나 싸우는 일"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러나 이 말의 어원은 알고 보면 철저하게 불교적인 용어이다. 고려 말기에 국운이 크게 기울자 당시 불교국가였던 고려는 꺼져가는 국운을 되살려 보기 위해 밤마다 왕이 참석하는 법회를 열었다고 한다.(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법주사에서 열었던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기독교식으로 말하자면 매일 철야기도회를 연 것이다. 즉 '밤에 단을 만들어 놓고(야단) 법회 자리를 열었다(법석)'는 것이 야단법석이라는 단어의 기원이다.

그러나 꺼져가는 국운이 밤마다 법회를 한다고 살아날 리도 없는 것이고, 이후 '야단법석'은 번잡스럽고 소란스럽기만 하고 아무런 결과도 의미도 없는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야단법석이란 용어의 기원은 종교적이지만 현재는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는 말인 것이다.

한번 생각을 다시 해보자. 만일 필자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야단법석이나 야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필자는 그분에게 항의하거나 회개를 촉구하거나 정죄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마도 독자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붉은악마라는 말이 용어의 기원 자체는 종교적이라 하더라도 현재 "응원으로 상대를 압도하고, 우리 선수들이 실력으로 상대방을 압도해 월드컵 경기를 승리로 이끌자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면 굳이 결사적인 개명운동을 벌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절한 성명 등을 통한 입장표명 정도로 그쳤더라면, 이렇다 할 성과도 없이 일반대중들로부터 기독교가 소아병적이고 배타적이라는 빈축은 사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지난 4월 1일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붉은악마 개명운동에 참석한 교계인사들이
가두행진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승균

물론 악마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것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할 수 있으면 개명하도록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가 하는 반문을 하고 싶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복지, 노사 문제 할 것 없이 한국사회는 많은 문제와 갈등으로 신음하고 있다. 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결국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도 같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가 전 인구의 1%도 안 된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성령충만하고 복음화가 잘 되어 있고, 단위인구당 교회의 수와 목회자의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공교롭게도 부패지수가 가장 높고, 매매춘이 가장 성행하는 몇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제와 정치 분야의 정의 실현이 요원한 것은 왜 그럴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내어 주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겠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카톨릭까지 포함해서 2천 만을 헤아리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밥을 굶은 아동들이 14만 명이 넘는단다.

누구나 공감하는 바이겠지만, 이 모든 사회의 문제와 그늘들을 해결하는 것은 고스란히 교회의 몫이다.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다른 좋은 것으로 바뀐다면 나쁠 것은 없겠지만, 한국교회가 붉은악마의 개명에 매달려 있을 정도로 한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하다.

▲88올림픽 성화 모습(인터넷검색자료)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사탄적이라는 말은 맞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붉은악마라는 응원단 명칭에는 결사적으로 반대운동을 펼치는 한국교회가 왜 올림픽 때마다 등장하는 성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성화라는 것이 문자 그대로 성스러운 불이라는 의미인데, 성서적으로 볼 때 어떻게 불이 성스러울 수 있는가? 그것이 모세 앞에 나타난 불타는 떨기나무라도 되는가? 게다가 올림픽 성화가 유서깊은 교회나 성당에서 경건한 예배의식을 거쳐 채화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 신화의 무대가 되는 신전에서 채화된다면 이것이야말로 사탄적이고 이교도적인 것이어서 교회가 결사적으로 막아야 할 것 아닌가? 88올림픽 때 개막식 행사에 장승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그토록 말이 많았던 교회가 왜 성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는지?

▲성화 봉송모습(인터넷검색자료)
88올림픽 당시 한국에서 '보통사람'이라는 개념은 중요한 화두였다.(화두도 원래 불교용어였다. 붉은악마를 반대하는 분들이 불교용어인 '화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필자를 가만 놔둘지 모르겠다.) 그래서 수많은 보통사람들이 성화를 봉송하는 주자로 동원되었다. 그 가운데는 장로님도 계셨다.(당시 탤런트인 모 씨가 성화 봉송 주자로 뛰는 장면이 TV로 보도된 것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분은 자타가 인정하는 기독교인으로 당시는 집사였고 지금은 장로이다.) 왜 당시 교회는 성화 반대운동을 하지 않았는가? 왜 그 분들이 성화주자로 뛰지 않도록 권면하지 않았는가? 혹시 그 많은 성화주자들 가운데 목사님은 안계셨을까?

어디 올림픽 뿐인가? 월드컵 대회에도 성화가 있는지 모르지만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그토록 심각하다면 성화에 대해서도 교회는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또 부산에서 곧 열릴 아시안게임 성화에 대해서도 분명한 입장표명이 있어야 한다. 또 해마다 열리는 전국체전 성화는 어떤가? 전국체전 성화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채화된다. 마니산 참성단은 단군이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했다는 곳이다.

붉은악마 때문에 그토록 법석을 떨면서, 단군상 문제로 그토록 말이 많고, 야밤에 단군의 목을 자르는 거사(?)까지 서슴지 않는 교회가 왜 단군이 제천의식을 봉행했다는 곳에서 채화된 성화가 체전의 하늘에 타오르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의 말이 없는가?

성화문제는 국가와 올림픽 조직위원회라고 하는 거대한 국제기구와 권력기관을 상대하는 일이고, 붉은악마는 응원단을 주도하고 있는 일단의 젊은이들만 상대하면 되는 일이라서 그런 것인가? 그렇다면 약자에게는 강하고 강자에게는 약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붉은악마 명칭 개명운동이 무엇을 얻었는지 모르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를 다시 한번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속좁은 무리로 오해하게 되었다. 이는 앞으로 전도에 결코 긍정적으로는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차제에 이번 일을 거울삼아 무엇이 더 중요한지, 무엇이 더 우선과제이고, 우선순위에서 밀려 일단 다음으로 미루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정확하고 지혜롭게 판단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보다 높이 드러내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기여를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정정합니다>본문 중 '예장고신(물론 다른 교단도 마찬가지겠지만,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신 교단이 가장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는 글 가운데 예장고신을 일부 교단으로 정정합니다. 예장고신측은 교단 차원에서 붉은악마 개명운동 참여를 결정한 바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김재서 / 매일선교소식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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