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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 저희들은 세상 속에서 삽니다
목사님들께 부치는 어느 평신도의 편지
  • 심재원 (truewon@hosanna.net)
  • 승인 2000.10.22 18:18
목사님, 저희들은 세상 속에서 살다가 오늘도 하나님의 집을 찾아 나왔습니다.  변화산에서 신비의 체험을 하고 내려온 제자들이 아닙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내려온 모세와 같은 사람도 아닙니다.
  
새삼스러운 말씀 같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저희들을 과대평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희들에게 너무나 큰 것을 기대하고 계신 듯 합니다.  저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또 하루를 살아갈 작은 쉼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그립습니다.

목사님의 바람처럼 저희들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님처럼 성경보고, 기도하고, 목장에서 양들과 뒹굴며 거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중세 수도사처럼 세상을 등지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저희들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의 사슬이 너무나 가혹합니다.

저희들은 참으로 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수(百獸)의 왕자가 사자라고 하나 우리 앞에는 사자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이 입을 벌리고 삼킬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흔히 간사함의 대명사로 여우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속이고 걸고 넘어지는 인간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동반자입니다.  오늘도 이들과 뒹굴며 살다가 하나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잠시나마 마음놓고 쉬고 싶어서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幸), 불행(不幸)은 내 잘잘못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불행의 나락(奈落)에서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어진 재물이나, 일어버린 명예나 건강이 아닙니다.  모두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 남아 있는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나와 엎드리기만 하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희들을 보시고 "그것이 무슨 믿음이냐?"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오늘도 목사님을 통해 주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이렇게 목을 길게 늘이고 앉아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욥의 고통이 저희들에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미국의 9.11 테러 사건으로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 천, 수 만의 생명을 어찌 욥의 열 자녀의 죽음과 비견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병이나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고통을 어떻게 욥의 헌데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저희들은 이런 아픔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없이는 잠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저희들을 독려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쏟아 순종하지 못합니다.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라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저희들도 다윗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거는 이런 기대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위선을 부추겨 바리새인 흉내를 내게도 합니다.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말인 줄 압니다만 "그곳(교회)에 가면 그 남자는 그 남자가 아니고, 그 여자는 그 여자가 아니다"는 말,  그냥 넘기기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실감나게 꼬집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하신 후 디베랴 호수로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를 찾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세상 속으로 숨고 싶은 베드로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또 그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작은 사랑의 불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관심과 위로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소망의 불씨를 지펴줄 부드러운 목사님의 손길입니다.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기 전에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작은 격려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구했던 손끝의 물 한 방울 같은 작은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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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40
  • 웃음 2002-06-01 10:19:03

    동문서답의 코메디 합니까?

    도대체 기본인식이 안된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 조차 모르고 힁설수설하니
    부끄럽지 않습니까?

    당신이 말하는게 내말에 대한 반론이나 적당한 답변이라 생각합니까?

    한마디로 안오성씨는 주접이며, 동문서답입니다

    아마도 고집스런 기복신앙인들의 대변을 하는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통탄 스럽고 안타가운 일이지만, 마약에 중독되듯이 안오성씨 같은 신앙에 오래동안 중독되었으니
    무슨말인들 제대로 들리 겠습니까?

    안오성씨! 한국교회의 현실을 잘대변해 주고 있는듯하니 그만 주접 떨기 바랍니다   삭제

    • 안오성 2002-05-31 19:09:18

      (그대를 권도함으로 맺으려 했건만 근거없는 망발과
      그대의 한계가 보이는 글을 보고나니 한마디 꾸짖고 그대에게 평생 숙제를 주고
      떠나보내야 겠소...내가 왜 이 의미없는 변론을 시작했는지...
      평서체로 말함을 이해하시길 그게 의미 전달에
      도움이 될 듯하여..)

      알아듣지 못한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

      이 사람아 이런 말은 누구라도 아무에게 대한 반론으로 제시하여도 되는 말일세..

      영성과 지성과 의지에서 역사상 비견할 자를 찾기 어려운 바울을,

      하나님의 택하심과 은총이 아니었던들 그렇게 그가 핍박하던 예수를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할 수 없었을 바울을,

      그대 이상의 금욕과 그대가 비견할 수 없는 지성과 열정을 보이면서도
      그가 돕는 이들을 향하여 철저하게 금욕주의를 경계하고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안에서 교회를 세우고자 하였던 바울을,

      현학적 수사로 자신을 포장하거나 지식 폭력으로 성도들을 억압하려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겠노라고 한 바울을,

      주께서 성령의 사역에 대해 할 말이 많으셨으나 성령이 임하시기전이라
      내가 너희에게 이를 말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받지 못하리라
      하시며 진리의 성령께 의탁하신 예수님의 말씀의 예언처럼

      성령께서 드러내사 알게 하신 생명의 성령의 법과 자유와 진리를
      온전히 증거한 바울을,

      그의 공로가 아니었더면 지금 예수의 복음도 듣지 못할 빚을 진 그대가,

      자신에겐 아무공로도 돌리지 않고 그 많은 고난과 환난가운데에서도
      끝까지 예수의 남은 고난을 그 몸에 채우며 성도들에게는 자유를 선포하며
      살단간 바울을 비난하며 한다는 말이 겨우 웃긴다.
      바울은 이단이다. 귀있는 자는 들을지어다인가?

      바울을 비난하려거든 최소한 자기손으로 수고한 돈을 벌어 가난한 자를 돕게나.

      그는 구약뿐 아니라 주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사도의 권한으로 인정해 주신
      헌금으로 생계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쓰지 않고
      자기손으로 일을하며 주의 복음을 전했던 자이네

      주안에 있는 권한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로인해 걸림돌이 되어 뒤로 물러갈 단 한 사람이라도 있을까 염려한
      세심한 사랑과 배려 때문이지...

      그는 그토록 자신에겐 철저한 완전주의자라 볼 수 있네...
      동시에 그는 여러사람에게 여러모양이 될 줄 아는 자
      부자에게도 가난한자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자였다네
      예수께서 부자 세리집에 거하며, 창녀의 예물을 받으시며
      비루한 자들과 같이 하셨듯이...

      그 수많은 도전과 사단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2천년동안 세워오신 교회를 부정하며
      함부로 교회 전체를 부정하는 그대와 천지차이 아닌가?

      이 일을 시작하셨고, 주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세상에 가득하기까지
      그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이루실 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믿는가?

      그래도 주안에서 인생역정을 격으며 진실되이 주의 복음과
      사람 사랑을 고민할 줄 아는 자로 일말의 기대를 걸어 존중했건만
      지금보니 철없는 청년의 치기와 극단주의자의 지독한 독선밖에 안보이는군..

      구약을 인용한 것을 보니...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을 부인하는 그대가 구약은 인정하는가?

      나도 그러하니 그럼 나도 한마디 인용할 것이네...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열방에 선파하리라..
      나는 그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화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66장)

      내 비록 안식일적 주일개념의 오류에 대해 힘주어 말해왔지만
      하나님은 이미 오늘날과 같이 온 땅에 복음이 편만히 증거되고
      열방이 주일마다 그에게 나아와 예배드릴 것을
      이사야에게 묵시하시고 이상으로 보이시며 그날을 기뻐하셨다네...

      바울의 신학위에 세워진 2000년 교회역사를 부인하는 자여

      구원을 얻을 사람이 몇사람이라니 무슨 망발인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데 자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여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라는
      주의 복음서의 경고를 코로 듣는자여...

      세치혀로 시간 낭비하지 말고 사랑과 섬김의 열매를 남길지어다.
      지혜는 그 열매로 옳다 인정함을 받는다 하였으니...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으로서 광야같은 세상의 일상 속에서
      애통하는 가운데 주를 찾고 그의 생명을 자신의 삶가운데 내면화하는

      평범하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인하여 하늘의 소망가운데
      작은 선행과 사랑의 수고를 힘쓰며
      진정한 초인의 길로 나아가는

      묻 형제들을 존경할 지어다.

      신혼의 하나됨의 고통을 통과한 이는 10 여년을 같이 지내고도 금술이 좋은 부부를 존경하며
      아이 하나 나아 양육의 고생과 어려움을 경험해본 사람은 둘 나은 사람을 존경하며
      둘 나아 고생해본 사람은 어젓한 소년소녀로 키워낸 사람을 존경하며
      또한 자기 자녀를 믿음과 사랑안에서 온전한 청년으로 키워낸 이들을 존경하며

      진정 자기 자녀를 사랑하는 이는 하나님이 맡기우신 사람으로 존중하며
      소유욕과 지배욕 대리만족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되며

      아브라함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

      그리하여 장로의 조건으로 첫째 되는 것이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순종하고 믿음안에서 바로선 자녀를 둔자라야 할 것이라 성서는 증거하고 있다네...

      삶의 질곡을 회피한채 자신의 삶으로 검증되지 않은
      공허한 외침을 하는 자여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은 하늘의 지혜에
      그의 평생의 인생 실험으로 완성한 그의 지혜를
      짧은 경구로 남긴 말씀하나 들려 드리리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 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

      사람이 사는 날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전도서3,4장)


      “생소한 방언”이라 하였는가?
      허탄한 사람아 방언이 어찌 시작되었는가?
      초대 교회시절 오순절 때에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여러 지방의 사람이 예루살롐에 모였을 때 주께서 역사하사
      이방의 언어를 전혀 모르던 주의 제자들이
      각자 여러 지방의 말로 주를 증거하여
      이방나라 사람들이 각자 자기들의 언어로
      알아먹도록 한 것 아닌가?

      방언은 이적의 표현으로 알아듣지 못할 외침이 아니라
      언어의 장벽을 넘어 주를 증거하기 위한 주의
      강권적 역사로 시작된 것이라네...

      “저안에 거하는 자마다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는 말씀으로 자신을 옹호하는가?

      허탄한 사람아 진정 그가 하신대로 사랑을 실천할 지어다.
      요한일서에서 내내 외치는 것이 무엇인가? 사랑아닌가?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주께서 우리안에 거하히고
      그의 사랑이 우리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요일)

      주께서 또한 뭐라하셨는가?
      너희가 나의 잔을 능히 받을 수 있는가하시며
      만용부리지 말라하셨다네

      각기 자기 십자가가 있으니 그것을 날마다 지라고 하셨네...

      그대의 십자가를 찾았는가? 그것을 온전히 지시게나
      난 그대가 구체적 삶의 현실속에서 날마다져야할 십자가를 버리고
      은둔과 제 한 몸의 평안을 구하는 자가 아닌가 헷갈리네..
      (헷갈린다 함은 그대의 삶의 증거를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대가 가는 길이 주를 위해 언제나 자신을 사용하기 위한 무소유/무구속이라면
      이제 주를 위해 이웃 사랑과 섬김의 짐을 지게나.
      그리하여 생명의 열매를 거두게나...

      사랑이 없어 죽어가는 이들이 너무도 많으니
      그 지독한 열심으로 한 사람이라도
      능히 살리도록 섬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궁구하며 자신을 돌아보게나....

      진정 내가 그러했듯이,
      자신의 편협된 복음이해와 제자의 도에서 눈이 뜨이기를 바라며
      아래의 두가지 숙제를 남기겠네...

      명심하게나 주께서 그의 백성을 죽이기에 앞장서던
      바울을 회심시키사 높이 들어쓰신 이유 중 하나는
      바울 안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거짓없는 사랑을 인함이었네...

      그러한 역사가 그대 위에도 임하려나...

      ==========

      숙제1. 10년전 미국의 한 뉴스 방송에서는 아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충실히 따라서” 뱀에게 자신들을 물게 한 뒤 자신들이 죽나 안죽나 실험한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이것을 시행한 목사와 신도는 대부분 죽거나 병원에서 사경을 헤메었다. 마가복음 16장의 다음 말씀가운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라는 말씀에 대해 오늘의 현실속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논하라.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세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참고1) 복음서 해석에 있어서 주의할 점은 예수님이 바로 앞에서 듣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성서를 뒤져 다른 사람에게 한 말씀으로 억지 해석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수수께기 하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듣는 자에게 진정 그 뜻으로 하신 말씀이다라고 보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 성서 해석의 오류를 피할 수 있는 길이다.

      웃음님에게 특별 조언) 이 숙제의 답을 제대로 찾는다면 그대는 아마 자신이 주장하고 비판하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자가당착에 빠질 것이외다. 아닌가요? 진짜 독을 마시고 독사에 물려도 거뜬하다구요??? 우와 대단하네요... 그래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괭과리요 아무 유익이 없어요...


      숙제2. 님과 비슷한 고민을 나 개인을 향하여 했던 사람으로서 도움을 받았던 책 3권을 소개합니다. 이 책들은 내가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상을 소유하고 있을 때 지금의 나의 아내가 소개해준 책이오...

      인간 장소의 심리학 , A Place for You (폴투니어)
      인간 의미의 심리학 , The meaning of a Person (? 영문 제목 불확실) (폴투니어)
      끝나지 않은길 (M 스콧펙.)   삭제

      • dntdma 2002-05-31 10:01:41

        그리스도가 선포하신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마치 방언(알아들을수 없는 외국어나 사투리)과 같이
        생소하고 세상사람들은 알아 들을수 가 없다
        (사29;11 참조)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를 믿어도 항상 세속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고집스럽고 우악하게 인간적 인정을 주요시 한다

        또 그의미를 잘아는 자들은 단어의 의미를 다른뜻으로 바꾸고 다른 해석으로 얼렁뚱땅 위기를 모면하여 그런연대를 구축해 거짓을 합리화 한다

        세상에 속한자들은 세상에 속한 말들을 할뿐이다


        주를 따른다 하는것은 주와 동행함을 말하고 주님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매일지고 죽음의 형장으로 다가가는 존재로서 크리스챤이 (눅9;23) 세상에서 결혼하고 혈육을 주요시 하며 소유물에 집착하는가?

        이세상에서 기독교인은 전쟁을 위해 나가는 병사와 같다 할수가 있다
        가족과 소유물과 세상즐거움 모두 뒤로하고 죽음을 위한 전쟁터로 나가는 것같은 입장이다

        세상에 익숙하고 세상에 터를 굳건히 하는 자들은
        바울의 말은 들을 지라도 주님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외면하고 모두 외면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세상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원수됨을 즐거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악한영적 본능은  원초적인 영의 악한본능에서 유래 하기 때문이다(창3;4)

        이들은 눈뜬소경이요 귀있는 귀머거리 들에 불과하다 세상에 살면서 온갖악을 저질르면서 주를 믿는 것은 허상이요 헛것이다

        " ..저안에 거한다 하는자는 그의 행 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 지니라!!"(요일2;6)
        이와같이 주와 동행하라! 구차한 변명과 너절하고 옹색한 이유대지 말고!!   삭제

        • 웃음은웃음을부르네 2002-05-31 00:44:33

          안오성이외다.

          돌..님은 솔직함과 해학으로 웃음님의 중요한 오류를 아주 간단히 지적해 주었습니다.

          웃음님, 우리 어머니는 배운바가 짧아 바울식으로 여러 말로 복음을 전할 땐 알아 듣지 못하셨으나 어머니를 긍휼히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로 꿈에서 한 촛불든 소녀의 안내로 교회를 찾는 것으로 변화되어 이제 아들에게 와서 찬송테잎과 설교테잎 성경 테잎을 즐겨 받아가십니다. 억울한 고통과 손해를 준 이웃에 대하여도 “원수를 사랑하라” 한 말씀 가슴에 담고 저주하기 보다 “내 아무리 배운게 없어도 니 그리살면 안된다. 니가 나한테 한거 생각하믄 당장 죽고 싶고 너도 밉지만...니 교회 다니면서 어찌 그리 못된고? 인생 불쌍타. 예수믿고 구원 받으라 이것아”하고 일갈하신 분이외다.

          나의 아내의 외할머니는 유교적이고 가난한 서민의 가정에서 못된 남편과 남편의 형제들로 인하여 가시밭같은 인생을 사시다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말기 암의 고통이 그녀를 삼키기까지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던 분이외다. 그분을 불쌍히 여기신 하나님이 아내의 아는 언니를 병실로 보내어 복음을 듣게하시고 복음을 알게 하사 구원하셨습니다. 그분은 돌아가시며, “나 아무도 원망 않는다. 다 용서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아픈 고통을 당하셨는데 내 그 사람들 용서 못할게 무어냐“라는 말로 그분의 믿음을 확증하며 찬송을 불러달라 하여 가족들의 찬송가운데 말기암의 고통이 그녀를 삼티려 할 때에도 평안히 눈감으신 분이외다.

          그분의 임종에 임한 주의 은총으로 그 가족이 변화되는 역사가 또한 일어난 것이외다.

          웃음님, 복음을 무거운 짐으로 변질 시키지 마소....

          님이 주장하는 바 결혼도 하지 않고 자기의 소유를 갖지 않은채 하나님을 섬기는 것 좋소이다. 그렇게 잘 하시길... 그러나 당신이 그 자유함으로 해야 할 바는 남도 나같아라, 나같이 안하면 가라지요 죽는다 라고 위협하는게 아니라 그 남은 여력으로 한 사람이라도 섬기고 위로하고 사랑하세요....

          스스로 대단하다 생각하시오? 나도 님보다 못할 것은 없다고 할 수 있소이다. 적어도 님과 비하여서 난 이 현실을 부퉁켜 않고 그 안에서 주의 진리를 내 삶으로 증거하기를 원하기에...

          그것이 무어 대단할 것 있소이까? 그런 초인은 오히려 내게 쉽고 나도 그 길을 노가다 뛸 각오를 하고 학업에 투자할 시간을 전용하고, 옷 한두벌로 버디며, 첫사랑을 떠나 보내고 아버님 임종도 보지 못한채 5년 동안 가 보았소이다. 그러나 자기 한 몸의 믿음과 평안을 지키기엔 그게 더 쉬웠던 것이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소이다.

          예수의 무소유 사상을 전할 사명으로 그리한다 하지만 그대의 하는 바는 조소와 비아냥과 치우친 해석일 뿐이요... 내가 낸 숙제에 대한 해석 또한 억지해석이요 틀렸소이다. 성경 해석의 가장 중요한 점은 예수님이 바로 앞에서 듣는 이들에게 하신 말씀을 성서를 뒤져 다른 사람에게 한 말씀으로 해석하려는 것이외다. 예수님이 수수께기 하는 분이오?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시는 분이요 민중의 언어로 쉬운 비유로 천국복음을 전한 분이외다. 답을 알려 주는 대신에 아래글의 2.1에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는 본을 보인 것으로 대신하리이다.

          그대가 외치는 속세를 떠난 초인의 삶만이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초인이 아닌 도피자들의 자기 합리화일뿐이오..

          초인은 눈물골짜기를 도피하는자가 아니라 주께 힘을 얻고 주와 동행하며 삶의 질곡을 지나는 가운데 하나님을 산사에서 외치거나 교회 건물 속에서 증거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증거하는 자이외다. 그는 죄많은 세상을 등지는 자가 아니라 그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하며 화목케 하는 자로, 굽어진 것을 바로 세우는 자로, 상한 심령을 위로하는 자로 살아가는 자 이외다.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자는 복이 있도다
          저희는 눈물골짜기를 통해할 때에 그 곳ㅇ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시 84:6,7)

          자신이 받은 은사를 따라 천국을 위하여 고자가 되었다 할 지라도 누구나 나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그 올무를 다른 이에게 씌우려 하는 순간 쉽고 가벼운 주의 멍에를 바꾸어 무거운 멍에를 지우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예수님이 저주하신 바리새인의 전철을 되풀이 하는 것이외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 (마23:13,15)

          천국 문앞에서서 무소유 무결혼의 티겟을 보여달라는 자여, 주께서 그 몸을 찢으시고 핏값으로 이루신 일을 무너뜨리는 자여,

          초인은 내가 발견한 하나님이 전부다라고도 말하지 않소이다. 오히려 각인이 진실되이 하나님을 찾도록하죠...

          성도들의 믿음을 주관하려 하지 말라는 것은 오직 사랑과 섬김의 본이 되라는 가르침은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이 그들의 서신서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이외다.

          산사의 도인은 자신이 찾은 도를 다른 사람에게 전이하지도 않고 그것이 무어라 표현하지도 않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욱 그러하니...
          아무리 균형있게 표현하더라도 대게의 경우 그것은 제한적이고 개개인에게 다양하게 생명으로 역사하실 성령의 사역을 방해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에 그대가 인정하는 사도요한도요한일서 2장에서 적 그리스도를 경계하는 가운데 다른 어떤 논리보다 그들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에 의탁하고 있음을 볼 수 있소이다.

          주깨서 주시는 자유는 외부의 갈등의 환경을 떠나 살 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 있소이다. 주의 말씀이 2천년전에 멈추었소이까? 주께서는 할 말을 다 안하셨다 하셨고, 성령을 통한 각인에게 역사하시고 교훈하시겠다 하시었소.

          나를 자기 욕심을 합리화하기위해 잔머리 굴리는 자, 가라지로 속단하는 모습에서 님의 편협하고 위험한 인간이해를 봅니다. 이보시오 아무나 그리 판단하니 그대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억압할지 참으로 걱정됩니다.

          나더러 복음에서 너무 멀리 있다하시오? 맞을 수 있소이다. 하나님 앞에서 나의 삶은 언제나 부끄럽고 그의 영광의 자유를 사모하며 나아갈 길은 아직도 멉니다.

          그러나 그길은 구원을 얻기 위해 나홀로 고행하여야 하는 위태로운 길이 아니라 이미 핏값으로 나를 사시고 용서하신 주의 은총으로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늘 언제나 다시 일어나 주의 인도하심가운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생명의 길이외다.

          내 단언하건데 속세를 떠나는 초인은 초보이외다. 초인은 속세가운데 하루의 노동과 쉼가운데 감사와 기쁨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작은 실천으로라도 행동으로 옮기며 사는 이로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초인은 무엇을 버림으로 자기 의를 세우는 자가 아니라 일상가운데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고 궁구하며 처한 곳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그가 주실 영광을 소망하는 자오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세상속으로 보내시며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시었소.

          속세를 떠나 평안을 구하는 자여, 삶의 질곡을 도피한 자가 어찌 뱀같이 지혜로울 필요가 있겠소이까?
          어찌 죄의 유혹에 노출될 것을 염려하겠소이까?

          그러나 예수님은 유언과 같이 다음과 같이 기도하셨소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요17장)

          님이 주장하시는 길은 내겐 오히려 쉽고 가벼운 짐이외다. 나도 그러한 길을 가 보았기에 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소이다.

          이 땅은 하나님께 속한 나라가 아니니 사단에게 내어주고 속세를 떠나라는 것이 예수의 가르침입니까?
          예수님은 그 짧은 주 기도문에서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이다“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쳤소이다.

          편협한 논리에 갖혀 성령의 음성도 못듣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헛되다 하는 자여 그대가 발견한 하나님은 그토록 무책임하시고 앞 뒤가 없는 분이더이까? 아님 그대가 그러하여 하나님을 잘 못 보고 있는 것이오이까? 그대는 아래의 본인이 쓴 글의 2번, 3번 항목을 다시 읽을 필요가 있소이다.

          바울의 가르침은 그대와 대치되는 것도 아니요 그대의 편협된 주장마저 품는 것이외다. 바울의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대치되는 것이아니라 온전히 일치하는 것이외다.

          하나님이 이방의 사도로 세우신 바울의 헌신이 없이 어찌 로마와 유럽이 그리도 빨리 변화되었겠으며 어찌 그대가 지금 예수의 복음이라도 들을 기회가 있었겠소이까?

          바울을 부인하고 히트치는 가르침으로 떠들썩하게 싶소?

          허탄한 사람아,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매고 섣부른 깨달음으로 분란만 일으키지 말고
          세상속으로 나아와 그 치열하고 척박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의 진리를
          추구하시오.

          3일길을 40년 광야길로 내어 이끄신 하나님은 “세상사는 날 동안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라 하시었소...

          ps : 앞으로 그대에게 답하지 않으리이다.
               결국 듣지 않을 자여,
               자신의 삶의 실천적 열매없이 공허히 외치는 자여
               스스로 무리에서 나뉘는 자여
               스스로 하나됨을 부인하고 무지의 칼을 뽑아든자여...

               그러한 이를 경계하는 말씀이 또한 허다하니
               스스로 삼갈지어다.   삭제

          • 신화의 제단 2002-05-30 16:37:32

            님의 진지하고 열심있는 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임을 아시는 줄 압니다. 이런 토론을 통해서 인간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얼마나 자기에 집착하는가를 바라보니 정말 겁이 납니다. 인간의 죄가 그만큼 뿌리가 깊고 깊은 것이지요. 이미 우리에게는 무엇을 소유하나 안 하나, 결혼을 하나 안 하나 죄인임에 분명한데, 그래서 자기를 믿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신 주님을 믿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큰 비밀인지 아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그럼...   삭제

            • dntdma 2002-05-30 12:34:02

              궁금님은
              제자들에게 회계가 왜 있었는가와
              주님이 먹기를 탐하시는자로 비난 받는것에
              대해서 무소유를 의심 하십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천국소유를 위한 개인적 무소유는 개인적으로 출가하여 주의 공동체 를 구성 하는 것입니다(마12;47-50 새가족 형성 참조)

              따라서 공동체에는 그 살림을 맡을 회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오순절이후 에도 일곱집사 제도가 생긴것은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다음, 예수님이 잔치에 참여하여 죄인들과 (소외된자들) 어울려 같이 식사하는것을 보고 바리새파가 비난 한것인데 ,  주님이나 제자들도 이세상을 살아가려면 먹어야 삽니다

              다만 전도여행을 통하여 영접해 주는자의 식량을 얻어 먹는점이 (탁발) 특색이 있을뿐 입니다

              광야의 수도사나 수도원에서는 자급자족으로 해결한 일들이 많고,  그이전의 세례요한이나 에세네 파들, 엘리사, 엘리야 파의 생활을 참조 하길 바랍니다

              궁금님의 의아해 하듯이 제자들에게는 공동체 삶을 위한 회계가 있었으며 다만 개인적으로 돈을 소유하는 것을 금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제자들은 여전히 먹고 삽니다

              그러므로 개인적 무소유와 공동체의 관리를 혼동치 말기 바랍니다

              회계가 있다는것이 곧 무소유자들의 공동체를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지상 공동체를 증거하는게 아닙니까?   삭제

              • 궁금 2002-05-30 11:45:22

                근데요, 예수님도 제자들 가운데 돈 맡은 사람을 두셨는데요?
                그렇다면 예수님도 무소유자가 아니셨나요?
                유다에게 돈을 맡기셨으니깐, 유다만 소유자가 되고 예수님과 다른 제자들은 무소유자가 되는 건가요?

                그리고 예수님도 많은 잔치에 참석하시기도 하셨는데요.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비난했는데, 예수님은 거의 드시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냥 그렇게 말한 건가요?
                  삭제

                • dntdma 2002-05-30 10:54:52

                  위험한 주장이라고 하십니까?

                  당연히 그런 생각을 갖겠지요, 본래 복음서의 하나님나라 복음은 이세상에 대한 도전적인 사상으로서
                  세상 사람이나 가라지 입장에서 보면 매우 위험 합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기독교내에 두길이 열려 있습니다
                  넓은길과 좁은길, 전자는 가라지의 길이며 세속신앙의 길이고, 후자는 알곡의 길이고 비세속인의 길입니다

                  바울편지를 잣대로 해서 복음서를 보면 아무리 궁리하고 잔머리를 굴려도 복음서는 가리워지기 마련 입니다

                  하루 네시간 아니라 24시간을 풀가동해서 성서를 보더라도 바울기준으로 복음서를 보면 아무런 진리를 볼수가 없게 장치되어 잇는것입니다

                  바울이 이단이라는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성서 내용이 증거하나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함은 길이 다르고 숙명적으로 질 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길이 다르고 질이 다르니 서로 다른 길로 갈수 밖에 없습니다

                  일일이 대꾸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님이 말하는 숙제나 간단히 언급하지요

                  1, 니고데모에게 금욕을 언급치 않았다고 햇는데
                  ?  성령(신) 으로 거듭나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갑니까?(요3;5)  이는 공관복음서의 신국소유 사상과 같은 금욕을 말합니다(눅6;20)

                  2, 베드로가 아내를 동행한것은 세속적 부인으로 동행한것이 아니고 , 성도로서 자매로서 동행함을 말한것입니다 (마12;47-50 참조)

                  3, 요한에게 마리아 를 네 모친이라 한것도 마12;47-50에 있는바와 같이 , 새로운 영적 공동체로서 새가족을 말하는 의미 입니다

                  4, 부자 청년에게 만 출가 하라 했다고요??
                  마28;19,20에 모든족속을 제자화 하라고 합니다
                  제자되는 조건은 모든것을 버려야 성립됩니다
                  (눅14;26-33) 이구절에 두개의 비유까지 넣어 설명하면서 강력하게 무소유 이유를 설명 합니다

                  5, 안오성 씨가 천국을 소유치 않고도 (눅6;20)구원을 이룰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울주의 의 이신득의 에 깊이 길들여저서 중독 되었기 때문입니다 좀더 바울에 대해 깊이 관심갖기 바랍니다

                  ** 주의 제자들은 당연히 무소유 자들입니다(마19;27, )  제자의 조건이 그러 하니까요(눅14;26-33)  베드로의 경우 , 그는 돈이 없었읍니다(행3;6)  디다케 를 보아도 돈을 소지해선 안되며 돈을 받아서도 안된다고 명시 되어 있습니다

                  이상 마치며, 안오성씨는 너무 멀리 주의 복음서와
                  떨어저 있는 사람임을 실감 합니다   삭제

                  • 안오성 2002-05-30 02:01:31

                    1. 일반적 반론

                    dntdma 씨!

                    님의 근거가 빈약하고도 위험한 주장들에 대해
                    솔직히 답하는 것이 시간 허비이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먼저 가짐을 밝혀둡니다.

                    또 한가지, 님의 무소유 신앙은 그 자체를 님 개인에게 적용하고
                    그 모습으로 진실되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하나님과 사람앞에 더욱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자라간다면
                    뭇사람의 지지와 커다란 도전을 줄 터이나...

                    그것을 일반화하여 타인을 정죄하고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그의 대속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값없이 주시는 구원에 무소유의 조건을 단다면 이는 심각한 오류라 생각될 뿐 아니라,

                    바울을 이단이라함은 근거도 없고 대꾸할 가치도 없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도 님과 혹 님의 글로 시험에 들 사람을 위해
                    부분적으로나마 다루고자 합니다.

                    님의 치우친 주장의 기저에는
                    세속화되고 기복 신앙으로 변질되어

                    천국에 대한 소망을 잃고 사랑의 수고를 게을리 하며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 밖에 그날이 도적과 같이 임함"을 맞이하게 될

                    왜곡된 신앙 현실에 대한 탄식에 근거하고 있다면 그 탄식은
                    저도 공유하는 것이로되,

                    저는 님의 그러한 치우친 주장이 바른 도전으로 작용하여
                    지체들의 믿음의 진보를 가져오게 하기 보다
                    오히려 그 치우침으로 인하여 님의 주장속에 있는
                    바른 문제의식 마저 함께 매도당하고 퇴색할까 염려됩니다.

                    바울은 이방을 위해 세운 주의 큰 일꾼답게
                    무소유를 몸소 실천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엄정한 금욕의 외양을 나타내었지만
                    그의 그 금욕은 금욕이 아닌
                    사랑을 구하며 성령을 따라 선택한
                    자유한 자의 삶의 표현이었지 결코 금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부요에 처할 줄도 궁핍에 처할 줄도 알았으며
                    지금으로하면 미국시민권 소지로 이중국적, 혹은 대미 사대주의로 비난 받을 수도 있는
                    로마의 시민권을 당당히 소유하며 복음의 진보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가 배설물로 여긴 그의 학문적 성취에 근거한 그의 논리적 인식능력과
                    균현감있는 대화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되심을 많이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힘써 증거하는데 훌륭한 도구로 사용이 됩니다.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그렇지 못한 많은 이들에 대해 무소유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금욕적 행위로써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이들을 심히 경계하였으며,
                    부하고 이 세상에서 안락한 삶을 추구하는 이도 품고 섬기며
                    복음을 깨달아 구원에 이르도록 도왔음을 먼저 밝혀둡니다.

                    단지 그들에게 일반론으로 도전한 것은

                    "부자되기를 애쓰지 말며 있는 바로 족한 줄로 알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사 후히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

                    고 하였던 겁니다.

                    님이 그토록 비난하는 바울은 자신의 편지가 갖는 권위 (주의 은사로 위임된 권위에 의해)
                    받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그 자신이 행위규범을 도전할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주신 자유를 허물고
                    율법주의적이 되는 오류를 피하고

                    각인이 외형적 규범보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앞에 바르게 서도록 안내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레 도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결혼에 관해서는 님과 같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 그러나 이 말을 함은 권도요 명령은 아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고전7:6,7)라고 한 겁니다.



                    2. 바울과 예수님이 일관되이 주장한
                       믿음으로 얻는 구원과 구원에 따른 책임...

                    2.1

                    예수님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바울이 그러하였듯이...

                    예수님은 사람의 근원적 문제를 죄의 문제로 보았습니다.
                    바울도 그랬죠.

                    그리하여 예수님은 그들이 와서 억지로 왕삼으려는 것을 뿌리치시고 (요6:15)
                    세상죄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길을 택하시고
                    자신을 왕 삼으려던 이들에게 조종을 받으며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순간마져 비애와 후회와 절망과 고통의 절규를 하시기 보다
                    찬연한 승리의 선언을 하십니다.

                    창세 때 아담부부에게 예언하신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사단의 머리를 깨뜨리는 그 선언을...

                    "다 이루었다."
                    (= 다 갚았다 = 죄 값을 다 치루었다. =
                      죄값을 치르지 못해 사망 권세 아래 놓인 우리를 그의 핏값으로 사셨다.)

                    예수님은 그가 공생애 주에 하신 말씀을 십자가에서 이루신 것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그는 우리를 죄의 종된자 율법아래 가두인 자로 말씀하셨고,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는 바울의 로마서에서 다음과 같이 잘 대꾸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죄와 사망의 법이 무엇입니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는 권능은 율법이니라"
                      
                    무슨 뜻입니까?

                    죄로 인하여 사망이 들어왔고
                    율법으로 인하여 우리가 죄인됨을 확증하여 준다는 것 아닙니까?

                    율법은 그리스도의 은총외에는 우리가 바랄 것이 없음을 알게 해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요 몽학선생인 것이외다.

                    또한 율법은 우리가 지켜야할 최소한의 바른 삶의 척도를 제시해주어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그 이상의 수준으로 살아야 합니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5:20)

                    무슨 뜻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율법보다 나은 의는 어찌 가능합니까?

                    이 말씀은 단지 십자가의 공로로 얻는 의를 말하며
                    믿는 이들이 가져야 할 엄중한 책임 (변화된 삶의 책임) 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까?

                    아니지요...

                    그렇다면 온전히 모든 율법대로 살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이상을 행해야 구원을 얻는 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지요...

                    그런 뜻이었다면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은 무엇이며
                    "이 떡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라"는 말씀은 무엇이며
                    "나의 줄 떡은 세상을 위한 내 살과 피로라"는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그 말씀의 전후를 읽어 보십시요.

                    예수님은 율법이 말하는(최소한으로 주어진) 것을 외형적으로 행하는 것으로
                    자신이 의인이라 착각하지 말것을 경계하신 것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은 외형뿐 아니라, 마음과 동기에서 진실되고 깨끗해야 함을 알리신 겁니다.

                    "사람의 행위가 자기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16:2)

                    그렇다면 예수님은 단지 더 높은 수준의 율법을 제시하여
                    "그래도 너희가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겠는가"라는 몽학선생의 멧시지를 전달하려 이 말씀을 하신 겁니까?

                    이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예수님은 말씀 그대로
                    진정 우리가 그런 수준의 삶을 살기를 원하며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여자를 성적 도구로 인식하지 말고 인격적으로 바라 볼 것이며 (마5:27-30)

                    성욕의 노예가 될 것이 아니라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가 될 것이며 (마5:27-30)

                    언어의 폭력으로, 용서치 않는 마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알고
                    온유와 화평을 구하는 자가 될 것이며 (마5:21-22)

                    세상에서 이웃과 가까운 이들과 다투고, 상처주고, 속이고는
                    뻔뻔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지 말고
                    먼저 이웃과 화목을 구하는 삶을 산후에
                    예배로 나아와 주와 화목을 구하라고 교훈 하신 것이며 (마5:23-26)

                    ...... 등등입니다.

                    예수님은 분명 더 높은 수준의 몽학선생으로 산상수훈을 하신 것이 아니라
                    진정 우리가 그런 수준으로 살아내기를 도전하신 겁니다.

                    그럼 어찌 이런 의를 이룰 수 있습니까?
                    애통하는 마음과 주의 용서의 은총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이 일곱번에 일흔번씩 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까닭은

                    우리가 약하여 범한 죄 또 짓는 존재임을 아신다는 것과

                    용서의 치유만이 우리 욱신의 죄성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하여
                    다시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게 할 생명의 법임을 아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우린 주의 대속의 은총을 육신의 기회를 삼지 않고

                    예수님이 제시하신 높은 수준의 의를 이루기 위해
                    열어주신 생명의 길로 들어서서 죄책감에 짓눌리지 않고
                    참 생명의 길을 걷는 기회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주께서 그 몸을 찟으사 둘로 갈르신 성소의 휘장을
                    다시 꼬매는 어리석을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으며
                    누구나 레위인 없이 그 앞에 나아가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화는 우리의 반복된 자기 암시와 결연한 의지/결단으로서가 아닌,
                    영화로우신 생수의 근원되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를 가까이 할 때
                    포도나무에 열매 맺히듯 자연스러운 겁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치치 아니하시리이다.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내속에 지혜를 알게 하시리이다." (시51:6,17)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지니라" (요4:23-24)

                    "이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5:20-21)


                    2.2


                      한번은 이런 사건도 있었죠...
                      오병이어의 기적후에 많은 무리가 그에게 나아오자
                      예수님이 하신 말씀,

                      "너희가 나를 찾음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요6:25-51)

                       이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은 우리의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자신을 내어 주신 십자가의 공로로
                       받을 수 있는 것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2.3

                    2.1과 2.2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를 따르는 자에게 원하시는 삶은
                    세속을 도피함도, 사회구원을 위해 사회운동에 치우침도 아닌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박창수님과 대천덕 신부님의 최근 기사(http://www.newsnjoy.co.kr/rnews/pastorate-1.asp?cnewsDay=20020501&cnewsID=3)
                    나 거기에 밝힌 저의 의견처럼 지금은 책임있는 다수가 된 교회가 힘써야 할 아주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가슴 속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은 이들이 세상속으로
                    나아가 빛과 소금이 되길 원하십니다.

                    가진 것을 버리고 무소유로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바르게 사용함으로 또한 드러내길 원하십니다.

                    속세를 떠남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들과 동일한 눈물 골짜기를 가슴 속에 시온의 대로를 갖고
                    주께 힘을 얻어 승리하며 지남으로 주의 영광을 나타내길 원하십니다.



                    3. 바울을 이단이라 함의 어리석음.

                    dntdma님, 바울이 이단이라면 하나님은 없습니다.
                    왜냐구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속이고

                    dntdma님처럼 역사상 걸출한 몇을 제외하고는 분변치 못할 누룩을 온세계에
                    수십세기에 걸쳐 퍼뜨린 그를 헤롯을 치사 벌레먹어 죽게 하시듯 죽이지 아니하시고

                    아니면 어떠한 모양으로든 그의 길을 막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가 그런 사도적 권위를 갖고 일하게 하신 분이니까요...

                    세상의 지혜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몇 사람을 평생 속일 수 있으나
                    모든 이를 평생 속일 순 없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실 진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시며 이루신 그 일을
                    헛되게 할 염병으로 작용할 바울을 어찌 그냥 내버려 두셨단 말입니까?

                    예수님은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우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셨소이다.

                    dntdma 님이야 말로 예수의 도를 무겁고 힘든 것으로 하여
                    자신만 지지 못할 뿐 아니라 예수를 진실히 따르고자 하는
                    다른 이들 마져 억압하는 것임을 왜 모릅니까?


                    4. 예수님이 전한 여러 모양의 복음의 본질과 공통점.

                    예수님이 부자 청년외에 또 누구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물질을 다 버리라
                    하시며 천국복음을 전하였습니까?

                    dntdma 님, 성경에서 예수님은 여러 모양으로 복음을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지혜에 초월한 예수님께서 각인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예수님이 갈파하셨기 때문입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 주제는 숙제로 남깁니다.

                    예수님은 그를 밤에 찾아온 니고데모에 영생에 이르는 길, 거듭남을 말씀하시며
                    왜 금혼과 탈세속을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천국의 열쇠를 맡은 베드로는 왜 아내를 데리고 다녔고

                    예수님은 그 긴박하고 중요한 순간에 "보라 네 어머니라"하며 제자요한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의탁합니다...   삭제

                    • rlaeorbs 2002-05-29 23:52:15

                      6일 힘써 일하다보면,
                      상처입죠.
                      그래서 하루의 안식은 필요한 겁니다.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6일 비굴하게 살죠.
                      그래서 하루의 당당함이 필요한 겁니다.

                      7일중 하루의 안식은, 하나님과의 만남이죠.
                      하나님과의 만남은, 나와 하나님과의 사이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와 하나님뿐이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선,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선, 에덴 밖의 일은 잊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6일 동안 겪었던, 그래서 내 가슴에 남아 있는 잔상으로 인해,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잔상이 하나님을 가리는 거죠.

                      위로가 필요하다면, 관심이 필요하다면,
                      당신에겐 아직 세상 속의 잔상이 남아 있는거 아닙니까?
                      그래서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목사님의 위로나, 관심이 필요한거구요.
                      당신과 하나님 사이에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게 하십시오.

                      난 눈물나게 읽었습니다.
                      나는 세상 속에서 귀하와 같이 갈등하며 공동체를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위로가 귀하께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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