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희들은 세상 속에서 살다가 오늘도 하나님의 집을 찾아 나왔습니다.  변화산에서 신비의 체험을 하고 내려온 제자들이 아닙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고 내려온 모세와 같은 사람도 아닙니다.
  
새삼스러운 말씀 같지만, 이런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께서는 저희들을 과대평가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희들에게 너무나 큰 것을 기대하고 계신 듯 합니다.  저희들은 지친 몸을 이끌고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또 하루를 살아갈 작은 쉼이 필요합니다. 목사님의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그립습니다.

목사님의 바람처럼 저희들도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몸바쳐 헌신하고 싶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목사님처럼 성경보고, 기도하고, 목장에서 양들과 뒹굴며 거룩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중세 수도사처럼 세상을 등지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는 저희들을 얽어매고 있는 현실의 사슬이 너무나 가혹합니다.

저희들은 참으로 험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백수(百獸)의 왕자가 사자라고 하나 우리 앞에는 사자보다 더 무서운 인간들이 입을 벌리고 삼킬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흔히 간사함의 대명사로 여우를 일컫습니다.  그러나 틈만 나면 속이고 걸고 넘어지는 인간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이들은 모두 다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의 동반자입니다.  오늘도 이들과 뒹굴며 살다가 하나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서 잠시나마 마음놓고 쉬고 싶어서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인간의 행(幸), 불행(不幸)은 내 잘잘못이나 의지와는 무관한 것 같습니다.  어느날 눈을 떠보니 불행의 나락(奈落)에서 허우적거리는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없어진 재물이나, 일어버린 명예나 건강이 아닙니다.  모두가 떠나버리고 나 혼자 남아 있는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집에 나와 엎드리기만 하면 이렇게 눈물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이런 저희들을 보시고 "그것이 무슨 믿음이냐?"고 나무라지는 마십시오.  오늘도 목사님을 통해 주실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이렇게 목을 길게 늘이고 앉아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욥의 고통이 저희들에게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은 그 수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미국의 9.11 테러 사건으로 한 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 천, 수 만의 생명을 어찌 욥의 열 자녀의 죽음과 비견하여 말할 수 있겠습니까?   예전에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병이나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고통을 어떻게 욥의 헌데와 비교할 수가 있겠습니까?

목사님, 저희들은 이런 아픔을 가슴에 안고 하나님의 집을 찾았습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없이는 잠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저희들을 독려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쏟아 순종하지 못합니다.  진실하고 거룩하게 살라시는 목사님의 마음을 왜 모르겠습니까?  저희들도 다윗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거는 이런 기대가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위선을 부추겨 바리새인 흉내를 내게도 합니다.  누군가 웃자고 지어낸 말인 줄 압니다만 "그곳(교회)에 가면 그 남자는 그 남자가 아니고, 그 여자는 그 여자가 아니다"는 말,  그냥 넘기기엔 우리의 모습을 너무나 실감나게 꼬집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활하신 후 디베랴 호수로 고기 잡으러 간 베드로를 찾으신 예수님의 모습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나무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세상 속으로 숨고 싶은 베드로의 마음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또 그의 가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작은 사랑의 불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관심과 위로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소망의 불씨를 지펴줄 부드러운 목사님의 손길입니다.  다시 세상 속으로 나가기 전에 지친 몸을 추스를 수 있는 작은 격려입니다.  부자가 아브라함에게 구했던 손끝의 물 한 방울 같은 작은 자비를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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