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 년 동안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상담한 목회자의 성 추문 관련 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가해 목사들이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 일종의 유사한 패턴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추문이 불거지게 되면 사실 자체를 부인한다. 은밀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성적 문제의 특성상 이런 목사의 주장이 먹혀들어 가 끝까지 진실 공방으로 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증인이나 녹취 파일 등 부인할 수 없는 자료가 나올 경우엔 더 이상 우길 수가 없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피해 여성이 이단이라며 마녀사냥 식 덮어씌우기를 시작한다.

사실 성 문제가 아닌 경우에도 이런 마녀사냥식 덮어씌우기 사례는 적지 않다. '2009년 교회문제상담소 상담 통계'에 따르면, 문제 제기를 하는 성도들을 이단으로 몰아간 경우가 전체 상담의 18%였다. 만약 목사의 개인 비리나 부정에 관한 사건으로 국한한다면 그 수치가 훨씬 더 높을 것이고, 목사의 성 문제의 경우는 90% 이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에서 목회하던 ㅂ목사의 경우가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는 여러 명의 여성도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일삼아 왔다. 모든 피해자들은 자신이 당한 끔찍한 일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며 속앓이를 하였고, 이로 인해 목사의 추행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피해자가 친구에게 이야기함으로 이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목사는 부인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속속 나오면서, 더 이상 목사는 아니라고 우길 수가 없게 되었다. 결국 목사는 피해자들을 '신천지 이단'이라고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성 추문 관련 상담 사례의 경우, 피해자나 성도들의 반응에서도 동일한 패턴을 찾아볼 수 있다. 처음 목사가 성관계를 요구하거나 추행할 때, 전혀 원치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하게 당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아버지처럼 따랐던 목사의 권위에 눌렸기 때문이거나,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그 상황에 충격을 받아 판단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장을 벗어난 피해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충격과 고통이 더 심해진다. 목사의 성추행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여성에 대한 성적인 학대일 뿐 아니라, 목사의 영적인 권위로 짓누른 영적 학대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고통과 혼란스러움을 감당하지 못한 피해자들은 주변 지인에게 털어놓게 된다. 이야기를 들은 지인들은 피해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과 정의감으로 목사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따지게 된다. 그러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목사들은 '그런 적 없다'며 잡아뗀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지'라며 순진한 생각을 하던 피해자나 성도들이 가장 분노하게 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이다.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문제를 무조건 덮으려고만 하는 목사의 뻔뻔한 태도로 인해 그에 대한 일말의 기대심마저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목회자의 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공론화가 되는 경우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질 줄 몰랐으며, 이런 상황을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저 목사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었고, 그분이 진정으로 회개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했다.

목사의 이런 부정직한 태도는 결과적으로 성적인 문제를 넘어서(실수라고 생각했던 경우), 목사로서의 기본적인 자질 문제로 확대된다. ㅊ목사의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외도한 것이 들통 난 ㅊ목사는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거짓말을 일삼고, 최초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도를 모함했다. 결국 ㅊ목사는 성 추문이 촉발되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 당회원들과 교인들이 ㅊ목사를 끝내 포기하게 된 것은 그가 외도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후 그가 보였던 거짓되고 가증스러운 태도 때문이었다.

mc몽과 신정환. 시청자들이 그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생니를 뽑았다거나, 거액이 걸린 도박을 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시청자들이 그들을 버린 이유는 범죄 이후 반성하지 않는 그들의 뻔뻔한 태도 때문 아닐까.

사실 피해자와 성도들이 비분강개하는 이유도 목사가 성추행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필자가 교회 문제 상담을 하며 느꼈던 것은 성도들이 목사의 성 문제에 있어서 이상하리 만큼 관대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체로 "목사도 남잔데 한번쯤 실수할 수도 있지"라며 가해 목사에 대한 정죄를 자제한다. ㅂ목사, ㅊ목사는 수습 과정에서 이미 드러난 성추행 보다 더 추한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진정성까지도 의심을 하게 만든 것이다.

필자는 이번 ㅈ목사의 성추행 사건의 전말을 지켜보며 매우 크게 실망하였다. '한국교회의 차세대를 이끌 명 설교자 ㅈ목사'의 성추행 자체에 대한 실망이야 말할 것도 없다. 우선 직무를 유기하는 ㅅ교회 당회의 결정이 그렇다. 그 교회의 장로들이 사적으로야 목사님을 이해할 수도 있겠고 존경하던 목사에게 선대하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한다. 교회의 분란을 피하고 싶은 인간적인 생각 또한 이해된다.

그러나 '당회원'이 누구인가. 당회원은 일개 청년 리더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교회의 질서와 정의를 세워야 하는 공적 직무와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다. 과연 그들이 사건을 면밀히 살펴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것인지. 만약 그랬다면 주위에서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이들의 '심각한 수준'의 인식과는 왜 다른 판단을 한 것인지. 그리고 그런 사실을 토대로 정말 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ㅈ목사를 위하는 판단을 한 것인지 의문이다. 만약 이런 해결 방식이 교회를 위한다거나 목사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착각이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ㅅ교회 당회원들은 왜 교인들로부터 부여 받은 권한을 가지고 자신들이 선심을 쓰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선심이며 무엇을 위한 선심인가.

<뉴스앤조이>의 보도대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이들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했을 정도라면, ㅈ목사는 스스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할 것이다. 최초 ㅈ목사 스스로 사임을 할 정도의 사안이었다면(그것이 단순한 쇼가 아니었다면), 왜 지금에 와서 '교회의 결정'에 따른다며 자신에게 너무나 관대한 처분을 내리고 있는가. 자신의 범죄로 인해서 갑작스레 떠나게 된 안식년을 "미자립 교회를 찾아서 그들 교회에 영적, 물질적 공급을 해 주는 '저수지 교회'가 되겠다"며 미화하는 태도는 또 무엇인가. 이런 반성 없는 태도는 ㅈ목사에 대한 실망을 더욱 커지게 한다. 만약 그런 상태로 설교와 목회를 계속하게 될 때, 그의 설교를 들을 젊은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ㅈ목사 자신을 위해서도 이런 식의 해결은 너무나 위험하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그는 누구보다도 파렴치한 성범죄에 청부 살인까지 저지른 잔혹한 인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나단 선지자의 경고를 듣고 그 자리에 납작 엎드렸다. 하나님은 그런 그의 태도를 인정하셨다. 안타까운 것은 ㅈ목사의 주변에 나단 선지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단의 역할을 해야 할 당회는 선지자적 사명을 내팽개치고 있다. ㅈ목사는 외부에서 들리는 수많은 나단의 외침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외침들이 자신을 음해하거나 교회를 흔들려는 사탄의 계략으로 여겨진다면, 다음의 말씀은 어떠하신지.

"죄를 지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어리석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죄를 지으면, 생각하기 싫어진다. 왜? 자꾸 생각하면 죄책감이 들고, 죄의식으로 인해서 괴롭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깊이 생각하기를 싫어한다…. 다윗은 밧세바와 범죄한 이후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려고 회피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단 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은 그의 생각을 자극시키신다. 그리고 회개케 하신다. 이것이 복이다. 왜 정결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 그래야 치열하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이 자유로울 만큼 깨끗한 인생을 살아야 지성과 영성의 발전이 있다. 죄는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 반면에 회개는 우리의 진로를 더 빠르고 강력하게 만든다." 

이 글은 바로 ㅈ목사 본인이 지난 2007년에 죄에 빠져 회개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쓴 칼럼이다.

목사의 성추행이 '실수'인 것을 입증할 방법은, 그 사건이 드러난 이후 얼마나 정직하고 겸손하게 수습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부디 ㅈ목사가 이 일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입증할 기회를 놓치는 치명적 실수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정운형 / 교회개혁실천연대 부설 교회문제상담소 협동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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