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다. 개요 작성하는 방법을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일러 주는 것 못지않게 실제 작업하는 전 과정을 보여주는 게 낫다. 주의할 점은 다른 이들도 반드시 이렇게 하지는 않으며, 또한 이것이 최고요, 최선의 방법이라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내게 맞는 방법이니 하나의 샘플로 참조하면 좋겠다. 때문에 자신이 하고 있는 방식이, 자기 몸에 맞는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것을 빨리 찾는 게 상책이다.

생각하라

첫 번째는 발상의 단계이다. 발상(發想)이란 말 그대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다. 이 단계에서는 무수한 생각이 나타났다가 그냥 사라지기도 한다. 그냥 '이걸 써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발상이고 아이디어이다. 머리에서 이리저리 떠도는 생각의 단편들이 발상에서는 소중하다. 그리고 그것을 글쓰기 노트에 간단히 메모해 둔다. 이것은 본격적인 개요로 보기 어렵고 초보적인 아이디어를 찾고 구하는 작업이다.

지금 <청소년 매일 성경>에 '성경 독서법'이란 글을 연재하고 있다. 전통적인 성경 읽기와 달리 렉시오 디비나와 동양의 경전 읽기 방식을 차용하여 성경을 읽자는 것이 큰 주제이다. 예를 들어 소리 내서 읽어라, 반복해서 읽어라, 천천히 읽어라, 암송하도록 읽어라, 통째로 읽어라, 함께 모여 읽어라 등이다. 이번에는 '기록하며 읽어라'를 쓸 차례였다. 주제 문장은 "묵상을 글로 쓰라"이다. 쓴 것만 남는다. 은혜도 기록하면 남는다. 더 나아가 곱이 된다.

성경을 글로 쓰는 방식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본문 필사이고, 다른 하나는 묵상을 필기하는 것이다. 앞의 것은 베껴 쓰기이고, 뒤의 것은 묵상 일기이다. 그래서 두 가지를 하나로 묶어서 전반부는 필사하라, 후반부는 필기하라로 글의 얼개를 짰다. 30매 분량이었고, 필사보다는 필기, 곧 일기를 강조할 것이므로 필사보다는 필기를 두 배 정도 예상했다.

그러던 것이 자료를 모아 보니 양이 생각보다 많아 일기 쓰기와 베껴 쓰기는 각각 독립적인 글로 만들어도 될 것 같았고, 베껴 쓰기 또한 새롭게 조명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래서 둘로 나누었다. 그래서 주제문이 '묵상을 글로 쓰라'에서 '성경 일기를 쓰라'로 바뀌었고, 다음 글의 주제 문장은 '성경을 베껴 쓰라'가 되었다. 이렇듯 발상 또는 아이디어는 찾은 자료에 의해서 생겨나기도 하고, 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포기되기도 한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발상을 주제 문장으로 써 보라는 것이다. 마구 떠오르는 생각을 그때그때 글로 적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정돈된다. 자신이 무엇을, 왜 쓰는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으면 글은 흐르기는커녕 마구 흐트러진다. 성경 일기를 쓰라는 글이 그랬다. 나도 모르게 일기 쓰기의 장점과 유익을 자꾸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본래의 논지에서 한참 벗어난다. 해서 주제 문장을 개요 노트 군데군데, 그리고 컴퓨터 곳곳에 써 두었다. 주제 문장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지금 일기 쓰기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야. 성경을 읽는 방식으로서의 일기를 말하고 있는 거야. 그걸 잊지 마!" 나는 그 말에 순종했다.

마구 쓰라

"글을 좀 써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이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료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글쓰기의 전략>의 저자 정희모의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을 달리 말한다. 글은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나온다. 부지런히 자료를 모으면 모을 수록 글은 풍성해지고 탄탄해진다. 앞서 자료가 많으니 한 개의 글로 계획하던 것이 둘이 되었다. 흔히 글은 영감으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경우는 열에 하나가 될까 말까이다. 대개 데이터가 넉넉하면 글도 푸지게 잘 써지는 법이다.

나는 떠오르는 생각이나 자료들을 개요 노트에 두서없이 마구 쓴다. 그 일부만 여기에 옮긴다. '기록하며 읽어라'의 경우, 약 9쪽에 빼곡히 썼다.

• 문제 상황 : QT를 하고도 남은 것이 없음. 일기·숙제 싫은 초등학생들 이야기. 매일 쓰지 않는 것에 죄책감 갖지 마라.
• 맥도널드, p. 251 → 일기 쓰기 가장 중요한 결심. 맥도널드, p. 243 → q(소문자 q는 인용하라는 뜻의 quote의 약자로 나만의 표기법이다.)
• 윤태규 → 일기 쓴다면 → 모든 그리스도인이 QT일기 쓴다면
• 의도치 않는 부수입 - ①문장력 ②사고력 ③맞춤법·문법
• 어순 고치려 하지 말고 그냥 써라.


읽고 체크할 자료라는 붉은 글씨 아래에는 이런 것도 있다.

1. 맥도널드의 <내면세계...>.
2. <아티스트 웨이>.
3. <글 쓰는 그리스도인>, 나우웬의 <제네시 일기>와 클럭의 일기에 관한 책.
4. <뉴스앤조이>에서 성경 일기를 쓰는 교회 찾을 것.
5. SU저널에 QT 일기 쓰는 교회.

이것들은 글쓰기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정보가 많아 반드시 읽고 유용한 자료를 찾아내야 하겠다 싶어 메모해 둔 것이다. 이런 자료를 뒤적이다 보면 좋은 통찰과 글의 구성과 흐름이 연결된다. 지금 이 단계에서는 나중에 사용하지 못하더라도 마구 적는 것이 중요하다.

분류하라

이렇게 마구 적다 보면 어느새 정보들이 나름 분류가 된다. 즉 서두를 시작하기에 좋은 것, 본론에 소제목을 몇 개로 만들 것인지, 결말을 어떻게 마칠 것인지가 차츰 정리된다. 어떤 점에서 분류하기가 본격적인 개요 작성이라 할 수 있다. 마구 모아 놓은 정보를 어떻게 조직하느냐가 다름 아닌 개요이다.

이번에는 개요가 4번의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1. 여는 말(2~3문단), 2. 필사하라(10매 - 좀 더 줄일 것), 3. 필기하라(20매), 4. 닫는 말(1~2문단)이었다. 2와 3에서 10매와 20매는 최대로 더 줄여 잡아야 한다. 그러던 것이 갈라지면서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2. 하나님 알기 → 8~10매, 3. 나 알기 → 8~10매이었다.

정보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좀 더 세분하고 구체적이 되었다.

I. 여는 말 : 제목(?)
ㄱ. 일기․숙제 싫은 초등 ㄴ. 한·중·일 고교 교실 비교 ㄷ. 문제 상황
II. 하나님 알기와 나 알기(10매)
1. 하나님 알기 : 일기를 쓰게 되면 본문을 깊이 묵상하게 됨. 쓰기 위해서라도 본문을 세밀하게 관찰하게 됨.
2. 나 알기 : 나를 발견. 나를 토로하고, 새 관점을 갖는다 etc. 맥도널드. p. 243을 q.
III. 방법
1. 규칙 없다. 솔직하게 기록
2. 양을 채우라
3. 쓸 것 없으면 ㉠ 베끼기, ㉡ 암송할 구절 반복 쓰기.
IV. 지속
㉠ 다양한 방법과 꾸미기 ㉡ 소그룹이 함께 하기 ㉢ 매일 쓰지 않은 죄책감 가질 필요 x ㉣ 의도하지 않은 부수입 : ㉠ 사고력 ㉡ 문장력 ㉢ 발표력
V. 닫는 말
1. 윤태규의 말 : 일기 쓴다면
2. 기독교인이 성경 읽고 일기 쓴다면.

위의 것이 너무 자세하여 글을 쓸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된다. 그래서 간략하게 요점만 적었다. 이것이 마지막 개요이다. 글을 쓸 때는 간단한 메모를 보고 쓰고, 내용은 앞의 개요를 참조한다. 그중 하나만 보면 'III. 방법. 1. 나답게 2. 솔직하게 3. 다양하게 4. 꾸준하게'이다.

그러나 막상 이렇게 열심히 개요를 꾸며 놓고도 정작 쓴 것은 다르다. 우선 III의 제목이 방법에서 '어떻게 하지요?'로 바뀌었다. 그리고 3. 다양하게까지만 이 소제목에 포함시키고, 네 번째인 꾸준하게는 독자적인 소제목을 잡아서 그곳에 집어넣었다. 'IV. 지속'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부수입은 '하면 뭐가 좋나요?'라는 소제목 하에 포함시켰고, 한·중·일 고등학교 교실 풍경은 여는 말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순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발상, 자료, 구성 이 세 가지는 개요 작성에서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첫째는 없다. 상호 순환적이다. 대개 발상이 먼저다. 그러나 자료를 많이 수집하고 정리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생길 수도 있다. 그리고 구성을 하다 보니 서 말 같은 자료를 꿸 수 있는 실을 얻을 수도 있다. 자료를 모은 다음 갈래를 나누고, 주제에 맞게 분류하는 작업은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처럼 계속 이어진다.

사도 요한은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요2 1: 4)라고 말하였다. 나는 그 말을 패러디하여 말한다면, "나는 글쓰기 수련생들 중에 사부인 내게 받은 가르침대로 개요를 작성하는 자를 보면 심히 기쁘다." 이것이 오늘의 마지막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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