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권이면 전문가

대학교수들에게 누군가 물어보았다. 전공 분야에서 학부 졸업장에 해당하는 지식을 쌓으려면 도대체 몇 권을 읽어야 하느냐고. 돌아온 대답은 100권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대학 4년 동안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이른 새벽 도서관 자리 찜하고, 밤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한 것이나 그 분야의 책 백 권을 읽는 것이나 결과나 실력 면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대학원, 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전공 관련 도서를 지금껏 읽은 책이 몇 권이냐고 교수가 물었다. 그러면서 100권을 읽은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 보라고 했는데 손을 든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걸 보자 교수는 대뜸 나무란다. 박사 학위를 받으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데 어떻게 100권도 못 읽고 전문가 행세를 하려고 하느냐고 말이다.

한 분야, 한 주제에 백 권의 책을 독서하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사전에서는 전문가를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 비전문가의 정의는 이렇다. '일정한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갖추지 못한 사람.' 이제 전문가를 이렇게 정의하라. '그 분야의 책 백 권을 읽은 사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백 권이면 전문가다.

독서는 가장 저렴하다

독서는 전문가 되는 데 가장 저렴하고도 가장 확실하고도 가장 빠르다. 나는 여기에서 가장 저렴하다는 데 먼저 악센트를 팍팍 준다. 뭐니 뭐니 해도 돈 이야기는 민감하니 계산부터 해 보자. 영어 학원이나 자격증 학원을 다닌다고 하자. 저마다 가격이 달라 천편일률적으로 학원비를 계산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적게 잡아도 대략 한 달에 20만 원 정도 지출할 것이다. 1년이면 240만 원이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는 조건에서 그렇다. 영어의 경우, 그렇게 해도 시작할 때와 마칠 때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이만저만 속상한 게 아니다.

그러면 240만 원이면 책을 몇 권 살 수 있을까? 요즘 워낙 책을 읽지 않고, 종이 값도 꽤나 올랐고, 물가도 팍팍 뛰는 통에 책값이 전과 같지 않다. 몇 년 전에 비해 10~20% 올랐다. 그래도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1권에 1만 원이라고 하자. 240만 원이면 책을 만 원짜리 책을 240권을 살 수 있다. 무려 240권! 조금 비싼 책도 있고, 헐한 책도 있으니 얼추 200권, 보통 150권은 너끈히 살 만한 돈이다.

대학 등록금도 아니고 일 년치 영어학원비(아마 자격증은 그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로 구입한 책을 일 년이면 대체 몇 권이나 읽을 수 있을까? 작게 잡아도 50권, 조금 많이 잡으면 100권은 읽을 수 있다. 그러니까 1주일에 한 권이면 일 년 50권이고, 두 권 읽는다고 하면 일 년에 100권이나 읽을 수 있다. 하루 한 시간 통학하고 출퇴근한다고 보면, 그 시간만 독서를 해도 1권은 읽을 수 있고, 집에 가서 매일 한 시간만 책을 펼치면 2권은 간단히 읽을 수 있다.

그러면 사고서도 못 읽는 책이 50~100권 정도인데, 학원비에 비해 그리 아깝지 않다. 왜 그런가? 일단, 학원 다닌다고 점수와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것이 아니듯 돈 주고 샀다고 다 읽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학원비의 절반만 독서에 투자하면 100권을 사고 읽을 수 있으니 손해가 아니며, 되레 이문이 남는 장사다. 또한 열심히 학원 다녀서 얻는 결과와 일 년 백 권 독서한 결과를 계량화할 수 없지만, 내심 생각해 보면 어느 게 더 많이 얻는 길인지는 물으나 마나다.

학원 다니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 부지런히 다녀라. 대신, 일 년 정도 독서에 전념해 보라. 20세기 최고의 신화 해설자로 알려진 조지프 캠벨 이야기를 할까 한다.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할 당시 미국의 대공황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시골로 들어가 몇 년 동안 푹 파묻혀 원 없이 책만 파고 들었다. 그렇게 읽은 책이 그가 대학교수가 되고, 세계적인 신화학자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빨리 못 쫓아간다고 마음 졸이지 말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눈 딱 감고 책 100권만 읽으라. 그것도 1년만.

백 권이면 대학 졸업장 하나 더 딴다

대학 4년 동안 전공과 부전공, 교양 등을 합해서 120에서 140학점을 이수한다. 과목 수로는 대략 60개 안팎이다. 이 중 전공은 25개 남짓 된다. 수업과 중간, 기말 시험을 제외하고 보면 통상 한 과목당 리포트는 2~3권 정도다. 수업을 1권으로 치고, 두 번의 시험을 2권으로 잡으면 한 과목당 5권을 읽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125권이다.

여기서 수업과 시험을 과목당 3권으로 쳐서 나온 것이므로, 그걸 빼고 독서 보고서가 3권이라면 75권이다. 잡지나 빌리거나 사고서 마저 읽지 못한 책까지 합하면 100권 가량 된다. 동일한 방식으로 교양 과목을 계산하면 대학 내내 읽은 200에서 250권 정도다. 계산을 위해 200권으로 잡으면 일주일에 한 권이면 4년, 두 권이면 2년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자 여기서 툭 터 놓고 솔직하게 돈과 시간 이야기를 해 보자. 시간부터 보면, 4년 동안 다니면서 습득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을 2년 만에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돈은 약삭빠르게 계산이 될 것이다. 한 학기 등록금에 8을 곱하면 된다. 수천만 원이 넘는 큰돈이다. 2년 동안 200권의 책이면 기껏해야 3백만 원, 많아도 4백만 원을 넘지 않는다. 1/10 수준이다. 이건 엄청난 횡재다. 그만큼 독서는 저렴하면서도 가장 확실하게 우리 실력을 쌓게 해 준다.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잘 다니던 대학 그만두라는 말이 아니다. 그 많은 돈 내고 다니면서 책도 안 읽고 다니는 것은 엄청난 낭비라는 말이다. 이제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독서에 매진하라는 말이다. 어영부영 다니다가 졸업해서 뒤늦게 후회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결단코 늦지 않았으니 당장 100권을 목표로 주야장창 책 읽기를 몰두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졸업장에 준하는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백 권을 읽는 법

지금껏 말한 것에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넘어간 것이 있으니 한 분야의 경계이다. 이 말은 참 애매모호하기 그지없다. 내 전공이 신학이니 그쪽 동네 이야기를 해야겠다. 신학만 해도 갈래가 많다. 성서 신학, 이론 신학, 역사 신학, 실천 신학 등등. 한 주제는 어디서 어디까지를 말한 것인가? 신학 100권인가, 구약 100권인가, 모세오경 100권인가, 아니면 창세기 100권인가?

자, 이렇게 생각해 보면 된다. 신학부라면 전공과 교양에서 각각 100권씩을 읽는다. 석사 과정에서 구약 100권을 독파하고, 박사 과정에서 논문을 쓰는 창세기를 100권의 책을 소화한다. 모세오경은 앞의 구약 100권에서 일부, 창세기에서 일부를 포함하면 될 것이다. 신약 전공자라면 석사 학위를 받을 때 바울 서신을 100권, 박사 학위에서 로마서 관련 도서를 100권을 읽는 것으로 목표로 삼으면 되겠다. 박사 학위 졸업 논문 쓰는 데는 책과 아티클과 에세이를 포함해서 약 300권이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순서로 읽을 것인가? 정답은 없다. 읽고 싶은 대로, 내키는 대로 시작하라. 첫 번째 시작한 책이 실마리가 되어 계속해서 다음 읽을 책을 일러 줄 것이다. 책이 길이라면, 그 길은 그 길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모든 길은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러나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교수나 선배 등에게 물어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분야의 역사를 훑어 보는 것이다. 신학 공부하기 전에 신학사, 교회사 등에서 시작하면 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역사부터 읽으라.

그리고 그냥 100권 읽는다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말해 주고 싶다. 처음에는 닥치는 대로 읽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간 읽은 책을 차곡차곡 정리하게 되고, 또 해야만 한다. 좋은 정보와 순간순간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메모하고, 노트해 두라. 관련 신문 기사는 스크랩해 두고 잡지나 저널에서 쓸 만한 자료가 있으면 바로 즉시 복사해 두어야 한다. 곧 바로 하지 않으면 금방 까먹는다. 책 못지않게 고급이고, 책 이상으로 유용한 것이 메모와 스크랩해 놓은 자료이다.

한 분야, 한 주제 책 백 권이면 전문가 수준의 실력이다. 시간은 2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다른 것과 비교했을 때, 소용되는 경비도 아주 저렴하다. 그런데도 산출되는 결과는 다른 어떤 것에 뒤지지 않고 오히려 앞선다. 다시 정리해 보도록 하자. 책 백 권 읽기. 힘들지 않다. 어렵지 않다. 재미있다. 비용도 적게 든다. 시쳇말로 가격 착하다.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는다. 결과는 확실하다.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라. 그렇지 않다면 백 권 읽기를 곧장 시작해 봄이 어떨까. 딱 백 권이다.

김기현 / 부산수정로침례교회 목사·<글쓰는 그리스도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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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 묵상집 <날마다 주님과 함께>(SFC) 9, 10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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